♣ 21세기 현대셰프가 재해석한 조선시대의 조리법!
서양식 조리법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들이 약 500여년 전부터 우리조상들도 이미 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예를들어 미지근한 물 속에서 오랫동안 재료를 익히는 방식인 ‘수비드(sous-vide)’라는 저온조리법과 고기에 훈연향을 입히는 과정, 그리고 우유를 이용해 유제품을 만드는 방법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요, 놀랍게도 이렇게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조리방식들을 조선시대 고조리서에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재미있는 기록들을 현대셰프들이 찾아 요리로 재해석했고 한식진흥원과 그 흥미로운 과정을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지난 11월 6일, 이른 아침 8시부터 늦은 새벽시간까지 이어졌던 촬영현장에서 콘텐츠 개발 담당자인 스와니예 성시우 수셰프님을 만나 영상에 등장하는 메뉴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여쭤보았습니다.
Q. 한식 읽기 좋은날 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한국 식재료를 가지고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컨템포러리 레스토랑 스와니예의 수셰프 성시우입니다. 이번 촬영에서 스와니예가 준비한 전체 메뉴의 관리 감독을 했습니다.
Q. 고조리서와 셰프의 만남, 어떤 점이 특별한지 알 수 있을까요?
이번 영상에 나오는 메뉴는 총 13가지로 가지찜, 다시마구이, 당근김치, 훈증 돼지고기, 당귀편, 전복김치, 호박찜, 배추만두, 미네굴국, 고기 굽는 법, 타락, 산삼병입니다. 모두 조선시대의 대표 고조리서인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임원십육지, 규합총서, 군학회등, 산가요록 등의 기록들을 보고 선조들의 조리법을 재구성하였죠.
가장 큰 특징은 이 음식들이 이미 500년 전에 존재했던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추상적인 방법이 아닌, 기록된 증거를 활용하였기 때문에 먹는 사람들도 식사를 하며 역사의 한 부분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Q. 그렇군요. 그런데 촬영에 사용된 조리법 중 서양식 조리법과 비슷한 전통 조리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것들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첫 번째로 저온조리법은 서양의 수비드와 비슷한 것인데요, 고조리서 ‘군학회등’에 나와 있습니다. 선조들이 고기를 조금 더 부드럽게 먹기 위해 쓰였던 방법으로 고기에 밀가루 반죽을 발라가며 천천히 굽습니다. 나중에 반죽을 제거하면 아주 부드러운 고기구이가 되죠.
두 번째로 면 요리법은 임원십육지 배추만두 편에 등장합니다. 메밀가루를 이용하여 메밀 만두피를 만들어 먹었던 기록이 있는데, 만두를 현대적인 파스타로 재해석하였습니다
세 번째, 서양의 부라타 치즈와 비슷한 질감을 가진 타락은 수운잡방에 등장합니다. ‘우유를 졸여 진하게 만든 후 탁주를 섞어 따뜻한 곳에 두어 만든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디저트를 만들었습니다
Q. 고조리서를 현대 조리법으로 바꾸는 작업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원문이 한자로 기록되어있다 보니 해석하는데 꽤 애를 먹었습니다. 번역본도 완벽한건 아니라서요. 옛 문헌을 최대한 존중하되, 과정이나 기술적인 부분은 현대 조리법을 이용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굴뚝에 고기를 매달아 훈연해야 하는 조리 방법을 대신하여 훈연 기계를 사용하였습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훈연’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발달된 조리 도구와 기술로 인해 시간 단축 및 더욱 정확한 레시피를 표현 할 수 있었습니다.
Q.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요리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군요. 그렇다면 13가지 메뉴 중에 몇 가지만 소개 부탁드립니다.
고조리서 레시피를 거의 100% 활용하여 만든 메뉴는 전복김치입니다. 가장 고전적인 메뉴이지만 생각보다 그 맛이 훌륭하여 현대적으로 바꿀 부분이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단순한 만두를 파스타 형식으로 표현한 배추만두는 가장 현대적인 메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호박찜은 기왓장이 겹쳐있는 모양에서 영감을 받아 한 장씩 요리사들이 직접 수를 놓아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가장 손이 많이 가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그 결과 한국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메뉴가 완성되었습니다.
‘고기 굽는 법’은 가장 기억에 남는 메뉴입니다. 처음에 군학회등에 기록 된 글을 보았을 때, 과연 맛이 있을지 의심을 하였지만 결과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메뉴 선정에 대한 확신이 여기서부터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Q. 셰프님의 메뉴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답변 잘 들었습니다. 혹시 촬영장에서 기억에 남는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촬영장에서 열심히 불장난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무주 훈증 돼지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연기를 표현해야 했습니다. 푸드스타일리스트님과 함께 한참 불을 피우기 위해 노력했는데 결국 잘 안되서 드라이아이스를 가져왔어요. 그 날 아주 연기는 실컷 마셨어요.
Q. 연기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네요. 마지막으로 촬영 소감 및 독자 여러분께 한마디 부탁드리고 인터뷰를 마치도록 할게요.
이번 촬영을 통해서 우리의 전통 한식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서양식이라고 여겨왔던 조리법은 이미 500년 전부터 우리 조상님들께서 음식을 만들어오던 방법이었습니다. 흔히 ‘선조들의 지혜’라고 하죠.
고조리서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이 말을 체감하게 되었고 한식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다시 한 번 가지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영상을 통해 선조들의 지혜를 함께 느끼시길 바랍니다. 또한 이로 인해 한식에 대한 인식이 더욱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출처 : 한식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