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그녀를 위해 채식을 한다. 세계적 한식 다이닝을 꿈꾸며
❞그녀는 참 돼지갈비를 좋아했다. 유치원 다니는 6살 꼬마가 어른들보다 더 많이 먹었단다. 지금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돼지갈비를 좋아했던 그녀는 중학생 시절 우연히 공장식 축산을 다룬 영상을 보게 된다.
참 불편했다. 그러나 솔직히 그녀는 돼지의 고통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돼지갈비를 먹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그럼에도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껴 고기를 끊었다.
그러나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보다도, “너, 이제 고기 안 먹는다며?” 퉁명스럽게 묻는 이들의 시선이 그녀를 더 힘들게 했다.
질문은 그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고기를 안 먹는다는 그녀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타인의 시선이 불편했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이 무서웠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채식은 완벽하게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래야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먹거리가 삶을 혼란스럽게 만들 무렵, 그녀는 밀가루와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유학 생활에 접어든다. 무심코 먹었던 고기가 무엇인지 알게 됐기 때문일까.
그렇게 고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고기를 먹기만 하면 탈이 났다. 1주일 동안 화장실을 못 가는 나날도 있었다. 고기를 먹는 것을 몸과 마음이 차차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는 살기 위해 고기를 줄이기 시작했다.
♣ 그녀의 욕망, 맛있는 채식
채식을 지향하는 자들은 윤리적인 이유를 들기도 한다. ‘감자튀김이 닭튀김보다 탄소 배출이 적다’,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 또한 인간과 사회 사이의 불화를 인정하고 어떻게 타협해 나갈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한다. 그러나 그녀가 채식을 지향하는 이유가 윤리성이 주된 배경은 아니다. 온전히 그녀를 위해서이다.
그녀는 채식을 하면 속이 편하다. 그녀는 셰프로서 채소만이 지닌 복잡한 아름다움을 매력적으로 여긴다. 그녀는 채소를 욕망한다.
그녀는 감자튀김을 좋아하지만 그건 감자튀김이 윤리적인 음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탄수화물과 지방이 결합된 채소 특유의 식감을 사랑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래서 그녀에겐 “왜 닭튀김을 먹지 않나요”란 질문보다 “왜 감자튀김을 좋아하세요?” 질문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그 질문은 그녀를 더 잘 알 수 있는 질문이고 그녀를 말해준다. 그녀는 ‘과연 그 고기가 그녀를 위한 고기인가’ 질문한다. 그녀는 인간이 환경에 피해를 주는 주체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성으로 채식을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채식은 그녀를 희생하여 그녀가 아닌 환경, 동물을 돌보는 행위가 아니다.
그녀는 환경과 동물을 고려한다. 그녀는 고려하고 있는 대상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좋아서 채식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환경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은 그녀와 연결되어 있는 반려동물, 가족, 지구를 위한 고민으로 뻗어나간다.
이 과정 또한 그녀는 원하고, 욕망한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악과 순진무구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폭력은 숙명이다.” 그녀는 인간은 모순을 견디면서 사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온전히 선하기만 한 선택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래서 비건을 “완전 채식주의자”로 번역한 것이 옳은 일이었는지 고민한다. 그녀는 ‘완전’하다는 개념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보카도, 플라스틱, 식물제초제로 죽는 동물들, 소똥으로 만드는 채소, 오랑우탄을 착취하는 팜유, 원숭이 노동으로 수확하는 코코넛. 이것은 비건도 비건이 아닌 것도 아니고 그녀는 그 경계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기중심적이다. 그녀는 이기적이다. 그녀는 비윤리적인 선택도 한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부족함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그녀는 개선될 여지를 내포하고, 좌충우돌하는 삶을 더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 힘들어서, 불평하고, 완벽하지 않아서, 자기 비하하고, 회피하고, 불만족스럽고, 사람들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느라 삶의 에너지를 짓누르는 힘이 싫다.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이 싫다. 그녀는 당위, 이상, 가치를 지니고도 두려워하는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질적 행동 주체에 대한 관심 말이다.
♣ 오감을 자극하는 일상 트렌드
그녀는 타인의 시선과 별개로, ‘행복한’ 선택의 결정권은 선택하는 주체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채식이 ‘엄격함’이 아닌 ‘갓 튀겨져 나온 뜨끈뜨끈하고 바삭한 감자튀김’이라면 어떨까.
그래서 그녀는 채식을 어렵게 느끼고 지나치게 진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아무 말 안 하고 감자튀김을 한 그릇 대접하고 싶다. 그녀는 그렇게 누군가의 욕망을 자극하는 채소 요리의 관능에 사람들을 빠뜨리고 싶다.
그녀는 사람들이 느끼는 현실과 욕망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싶다. 임파서블버거, 비욘드 미트. 이런 비주얼의 음식이 동물을 살리고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고? 그녀는 이 기묘한 이야기들을 매력적으로 여긴다.
그녀는 과학과 기술이 윤리적인 가치를 견지하면서도 우리의 욕망과 본능을 충족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새로운 상상력과 함께 사람들이 더 많은 편견에 도전하길 원한다. 음식에 대한 시선이 소비로 인해 사유가 단절된 환경과 더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 한식의 새로운 가능성
아침을 우유보다 주스로 시작하고, 빵보다 블루베리스무디로 시작해 보자. 사실 생각해 보면 레스토랑 메뉴들도 육류 없는 메뉴가 절반 이상이다.
그 요리를 먹어도 좋다. 집에서는 멸치 대신 다시마와 버섯으로 간을 한 청국장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우리 조상들이 즐겨 했던 한식은 훌륭한 비건 식탁의 가능성이다. 변화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간헐적으로 하는 채식도 즐거운 선택이다.
한식에는 발효의 미학이 있다. 발효의 매력은 그녀가 미국에서 순식물성 요리를 공부할 때 많이 느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산타모니카(LA Santa Monica)에는 에레혼(Erewhon)이라는 오가닉 마켓이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된장, 간장들이 굉장히 다양하게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미국인들이 만든 한국 김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동양의 발효음식에 매료된 듯보였다. 그녀가 아쉬웠던 점은 그런 오리엔탈리즘이 대부분 일식을 표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식을 세련되게 표현한 레스토랑과 제품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일하고 싶어 미슐랭 레스토랑 뒷문을 100군데 넘도록 두드리는 동안에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일식과 프랑스 요리를 접목한 레스토랑은 정말 많았지만, 한식과 접목한 다이닝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그녀는 요리학교에서 그녀에게 친숙한 장들을 활용해 갈비소스를 만든 적이 있다. 친구들은 그들이 먹어보지 못한 맛이라 너무 신기해했다.
그녀는 한국의 장을 잘 활용한 요리를 한국적이면서도 동시에 외국인들에게도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맛을 표현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렇게 그녀의 한식, 사찰음식에 대한 애정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녀는 한식의 철학과 한국의 사찰음식에서 채식의 가능성을 엿본다. 한국의 나물은 100가지 이상이며, OECD 국가 중 채소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도 한국이다. 나물을 데치고 김치로 절여서 엄청난 양의 야채를 작은 부피로 만들어 효율적으로 섭취할 수 있었다.
그녀가 교류하는 홍천의 한 농부는 고춧잎을 말려서 한국의 장에 볶는다. 그녀의 동료들은 멸치볶음보다 맛있다며 열광했다. 그녀는 이렇게 신기하고 다양한 나물들을 잘 재해석한다면 매우 훌륭한 다이닝 문화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년식향에서는 한국의 갈비소스에 버섯을 구워 올리고, 당근을 특제 된장소스에 나물과 함께 버무려 피자를 만든다. 파슬리가 들어간 마늘빵 대신, 비름 나물을 볶아서 마늘과 함께 굽는다.
버터밀크는 막걸리로 만들고, 제철 자색 감자를 튀긴다. 이것이 진정한 한식인가? 질문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한식의 미학과 철학이 글로벌 미식문화에서 높은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이미 프랑스와 미국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그 가능성을 엿봤다.
그녀는 오늘도 꿈을 꾼다. 한국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나물들을 활용한 피자와 파스타. 언뜻 ‘무국적’으로 보이지만 한식에 기반한 이 다이닝을 온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먹어주기를.
그녀는 자신을 위해 채식을 하고 사람들에게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감자튀김을 권한다. 오늘도 새로운 상상과 함께 꿈을 꾸는 그녀, 안백린 셰프가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