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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한식 세계화 이끄는 유현수 셰프

♣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유현수 오너셰프

맛은 기억을 새긴다. 혀끝을 물들인 미묘한 자극은 순간의 즐거움을 넘어 시간과 공간까지 마음 깊숙한 곳에 아로새긴다. 시선을 사로잡는 플레이팅, 코에 배어든 향기, 입안 전체로 느껴지는 식감 역시 마찬가지다. 그때의 감정, 함께한 사람, 오갔던 이야기 등 참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한다. 음식이 가진 힘이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을 찾으면 우리 전통 한식으로 이런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두레유’를 이끄는 유현수 오너셰프(40)다. 유현수 셰프는 국내 외식업계에 한식 파인다이닝을 선보인 선구자다.

셰프라고 하면 모두 프렌치·이탈리안 등 양식을 떠올리던 때지만 그의 선택은 한식이었다. 강원도 산골에서 자라며 맛본 할머니의 음식이 자연스럽게 그를 한식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의 요리에는 치열했던 삶의 기억이 배어 있다.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요리에 대한 열정 하나로 스물셋 젊은 나이에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한식에 뛰어들었다. 학교보다는 전국 각지의 유명 한식집 주방을 종횡무진하며 실력을 쌓았다. 영어도 익숙지 않으면서 무작정 이력서부터 넣어 해외 유명 레스토랑에 입성하기도 했다.

‘미식의 성서’ 미쉐린가이드 2스타 레스토랑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쿠아‘에서 일할 땐 1년6개월 만에 메인요리 셰프로 올라설 만큼 땀 흘리며 살았다.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누구나 한식으로 느끼지만,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유현수만의 한식’으로 많은 이에게 울림을 주고, 우리 한식을 더욱 발전시키고 싶단다.

그래서 잊힌 옛 조리법을 연구하고, 새로운 식재료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정답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더 가슴 뛰는 도전이다. 한식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유현수’ 오너셰프
▲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유현수’ 오너셰프

Q. 요즘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난 3월부터 가나아트센터 1층에 두레유 2호점을 열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두레유가 테이블이 7개밖에 없다보니 더 많은 분과 만나기 위해 새로운 창구를 마련했어요. 두레유 1호점이 파인다이닝 코스요리에 주안점을 뒀다면, 이곳은 단품과 신메뉴를 늘려 좀 더 캐주얼한 한식을 선보입니다.

일부러 1호점 가까운 곳에 냈어요. 지점이라기보다는 같은 동네에서 조금 다른 콘셉트로 선택의 폭을 늘리는 개념이죠. 얼마 전엔 제주도에서 열린 푸드 페스티벌에도 참석했습니다.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도 어느새 1년째 하고 있네요. 갈수록 몸이 바빠지는데, 그만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Q. 요리를 시작한 계기는.

▷스물한 살쯤 요리를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자신의 길을 택할 땐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관심에서 시작하지 않나요.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이 음악가가 되고,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작가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어릴 때부터 맛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요리가 내 안에 잠재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유현수의 맛은 어디서 기원했나요.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먹었던 음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리사의 덕목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맛에 대한 기억이에요. 어린 시절 강원도 원주에서 할머니와 함께 지냈는데 주방이 제 놀이터였어요.

할머니가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글 때마다 옆에서 돕고 맛을 보곤 했죠. 일본은 요리를 전수할 때 어릴 때부터 미각 훈련을 시키면서 맛에 대한 기억을 남깁니다. 저는 할머니 밑에서 자연스럽게 훈련을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할머니의 음식은 자연 그대로의 맛이었어요. 합성 조미료나 과도한 양념이 아니라 식재료 본연의 맛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죠. 음식 솜씨가 굉장히 좋으셨는데 그 특유의 손맛을 내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산과 들로 둘러싸인 곳이라 자연에서 찾은 여러 가지 식재료를 맛볼 수도 있었고요. 자란 환경 자체가 셰프가 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던 거죠. 부모님이 음식점을 운영했던 것도 주방을 즐겁게 드나들 수 있었던 이유예요. 맛의 경험이라는 면에선 축복 받고 살았다고 생각해요.

Q. 그래서 한식을 택했나요.

▷처음부터 거창하게 셰프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니었어요. 그냥 ‘요리가 좋다.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었는데 내가 가장 잘 알고 표현할 수 있는 음식이 한식이었습니다.

물론 양식도 잘할 수 있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 세계 어디나 자국의 음식, 이른바 ‘소울푸드’가 있잖아요. 서양 사람들이 치즈 맛에 익숙하듯, 저는 어릴 때부터 장맛을 느끼며 자랐으니까요. 어떤 요리보다도 한식을 가장 섬세하게 다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Q. 지금은 사라진 옛 요리를 되살리는 데도 힘쓰고 있다던데요.

▷실전된 요리가 많아요. 분명 옛날에는 존재했던 음식인데, 이제는 고조리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음식이죠. 그런데 역사를 꾸준히 이어온 서양 음식은 조리서 자체가 굉장히 자세해서 복원하기 쉬운데, 한식은 명인들이 계승한 일부 음식을 빼면 듣도 보도 못한 것이 많습니다. 아무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복원을 해도 그게 맞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창의력을 발휘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설야멱’이란 요리가 그렇게 탄생했죠. 김홍도의 풍속화 중에 ‘설후야연’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눈이 내리는 밤에 화로에 둘러앉아 소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을 그렸죠. 그 시절 소는 농사에 필요한 핵심 자산이라 먹으려고 키우는 게 아니었어요. 잔치를 할 때 아니면 노쇠해서 자연사할 때야 먹었겠죠. 굉장히 질겼을 거예요. 요즘 같은 마블링은 상상도 할 수 없었겠죠. 이걸 고조리서상에 나오는 ‘설야멱적’이라는 요리와 매칭해보면 어떨까요.

김홍도 ‘설후야연’
▲ 김홍도 ‘설후야연’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화로에 굽고, 눈이 오는 날 눈밭에 고기를 묻어 식혔다가 다시 구워 먹는다. 이건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없던 조리 테크닉이에요.

구웠다 얼렸다를 반복하면 고기의 조직이 무너지고 육질이 부드러워진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깨닫고 하나의 요리로 만든 거죠. 저는 여기에 현대적인 기술을 적용했어요. 분자요리에 곧잘 사용하는 액화질소를 썼죠. 그릴에 고기를 굽고 액화질소에 담가 급랭했다가 다시 굽기를 반복합니다. 잊힌 한식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겁니다.

Q.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메뉴가 있나요.

▷저는 간장이 한식 최고의 요리라고 생각해요. 한식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죠. 두레유에선 7년 숙성한 씨간장을 애피타이저로 내놓습니다. 우리 전통 식문화를 살펴보면 반상에 간장 종지를 확인할 수 있어요. 집안의 큰 어른이 간장을 수저로 찍어 드시면 비로소 식사가 시작되는 거죠. 여러 이유가 있어요.

모든 음식의 기본인 장맛을 확인하는 동시에 식욕을 돋우고 소화가 잘되도록 몸을 일깨우는 과정이죠. 오랜 시간 간장을 담그고 있지만 늘 어렵고 새로워요. 간장 자체가 하나의 요리라고 생각하죠. 자연의 변화와 사람의 정성이 온전히 하나로 모여 만들어지는 음식입니다.

때로는 우리 조상들이 이런 조리 방법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경이롭기까지 해요. 간장의 맛을 보면 아주 오묘하죠. 먼저 향기로운 아로마가 피어오르고, 그냥 짠맛이 아니라 감칠맛이 느껴지는 여러 요소가 하나하나 혀끝을 스쳐 지나갑니다. 실제로 외국인 손님들이 씨간장 애피타이저를 더 좋아합니다. 더 맛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고요.

Q. 새로운 길을 택하고 어려움은 없었는지.

▷사실 어려움보다는 즐거웠던 기억이 더 강렬해요. 좋아하고 즐기는 분야가 일로 바뀌면 힘들고 싫어진다는데 저는 좀 달랐어요. 조리학원을 가서 배우기 시작하는데 그냥 빨려들더라고요. 잠자는 시간을 빼고 요리만 몇 날 며칠을 하는데도 재밌었어요. 완전히 몰입된다는 느낌, 어떤 전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건 그냥 천직이구나, 내가 가야 할 길이구나’ 싶었어요.

Q. 원래 디자이너가 되려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걸 워낙 좋아해서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괜찮은 디자인 회사에 입사도 했고요. 그래도 요리에 대한 미련이 크게 남았어요.

좋아하는 요리를 취미 영역에 남겨둘 것인지를 두고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2002년에 퇴사하고 도전에 나섰죠. 사실 디자이너 생활을 제대로 했다고 보긴 어려워요. 저는 아직도 요리와 디자인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이 시각적 예술이라면, 요리는 미각과 시각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예술이에요.

Q. 한식은 어떻게 배웠나요.

▷처음엔 한정식이나 한식으로 ‘맛집’ 소리를 듣는 곳을 닥치는 대로 찾아가 일했습니다. 학교에서 정형화한 교육을 받기보다는 진짜 주방을 알고 싶었어요.

재료를 다루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컸죠. 그래서 조리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전국 각지의 주방을 나만의 학교로 삼았습니다. 당시엔 한식 파인다이닝이란 게 없었으니 손맛 좋다는 분들을 스승으로 삼았죠.

‘두레유’ 맛집엔BC 2인 코스
▲ ‘두레유’ 맛집엔BC 2인 코스

Q. 비밀 레시피를 전수해주는 곳은 없던가요.

▷요리뿐만 아니라 누구도 자기 노하우를 쉽게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누구도 주방에서 칸막이를 쳐놓고 요리할 순 없죠. 육수를 내고 나물을 무치고, 고기를 굽고 양념을 숙성하고. 어떤 맛을 내려면 어떤 방식으로 조리해야 하는지를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저는 특유의 레시피에 집착하지 않아요. 아직도 요리하는 사람들은 레시피에 대해 굉장한 고정관념이 있어요. 일종의 비법 같은 것으로 생각하죠. 물론 기본이고 중요한 건 맞아요.

하지만 핵심은 결국 어떤 메커니즘으로 맛을 내고 어떻게 조리하느냐입니다. 흔히 ‘손맛’이라고 하죠. 레시피가 만능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맛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사람마다 다 다르거든요. 레시피보다는 요리의 기본을 배웠어요.

Q. 2005년 해외 레스토랑으로 향했는데.

▷요리를 시작할 때 제 나름대로의 커리큘럼을 짰어요. 먼저 한식을 제대로 알자. 그다음 해외 레스토랑의 선진 시스템을 배우자. 조리 스킬이 아니라 주방을 체계적으로 운용하는 방법을 배우자는 생각을 했죠. 특히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응대하는 방식은 꼭 선진국에서 배워와야 한다고 봤어요.

Q. 말도 안 통하는 환경에서 고생이 많았겠네요.

▷운이 많이 따랐어요. 국내만 봐도 수많은 조리과 출신 학생들이 좋은 레스토랑에 대거 몰리죠. 외국도 마찬가지예요. 어마어마한 숫자의 지원자들이 유명 레스토랑, 유명 셰프 밑으로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쳐요. 제 경우엔 온라인으로 세계 곳곳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연락처를 확인해서 닥치는 대로 지원서를 넣었어요.

물론 대부분 회신이 없었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니 운이 따르더라고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미쉐린 2스타 프렌치 레스토랑 ‘아쿠아‘에서 연락이 왔어요. 곧장 미국으로 달려갔습니다. 영어로 의사소통도 버거운 상황이었지만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살 돈도 없어서 외곽에 집을 구했어요. 매일 기차로 1시간 이동해 자전거 타고 레스토랑에 출근하고, 다시 일 마치면 퇴근하고. 이런 생활을 1년 반 정도 반복했죠. 밥 먹는 시간 빼면 계속 일만 했어요. 고생이라면 고생이지만, 사실 참 즐거웠어요.

유현수 미쉐린 셰프, 제철 한식 쿠킹클래스
▲ 유현수 미쉐린 셰프, 제철 한식 쿠킹클래스

Q. 주방에서 빠르게 인정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1년6개월 만에 메인요리까지 잡았으니 굉장히 빨리 인정받긴 했죠. 재능보다는 노력의 힘이었어요. 함께 일하는 주방 인원이 50~60명 정도였는데 뭔가 보여주고 싶어서 남들보다 좀 더 빠르게, 정확히, 오랫동안 일하려 노력했습니다. 실력으로도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언어의 장벽도 무너졌죠.

주방에 처음 가면 하루 종일 파슬리 이파리를 따요. 데코레이션으로 쓰는 파슬리 이파리를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해요. 그다음 양파 까기, 샐러드 야채 손질 이런 것으로 넘어가죠. 손이 빠르고 센스 있어야 차츰 인정받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요.

주방은 치열한 전장이에요. 메인요리를 맡았을 땐 엄청나게 뜨거운 스토브 앞에 하루 종일 서서 요리를 했어요. 100명, 200명분의 요리를 계속해서 내야 하는데, 한 번만 실수해도 전체 사이클이 꼬이고 멈춰버려요. 엄청난 긴장감 속에서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죠.

총괄셰프가 쉴 새 없이 내리는 오더를 손을 움직이면서도 다 기억해야 합니다. ‘셰프님 아까 주문 뭐라고 하셨죠?’ 이런 건 용납이 안 돼요. 성취감은 엄청났죠.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최고의 셰프가 내 음식을 인정한다는 건 정말 엄청난 기쁨이었어요.

Q. 당시 동료들에게 한식을 적극 알리기도 했다던데.

▷당시 스태프 가운데 한국사람이 없었어요. 당연히 한식도 잘 몰랐죠. 그래서 동료들에게 한식을 만들어 줬어요. 그곳 음식을 직접 손댈 수는 없었지만, 스태프들이 돌아가면서 만드는 패밀리밀(직원 식사)을 할 때 한식을 선보였죠.

반응이 특히 좋았던 건 잡채와 불고기였어요. 김치도 생각보다 좋아하더라고요. 그때 한식의 가능성을 또 한번 느꼈어요.

Q. 해외 경험이 한식 파인다이닝을 시작한 계기가 됐나요.

▷한식뿐 아니라 모든 나라 음식에서 파인다이닝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스펙트럼이라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그간 한식은 일상식을 기본으로 한 밥집 위주 시장이었죠. 하지만 최고를 지향하는 정교한 요리도 있어야 음식 문화가 발전할 수 있어요. 길거리 음식이나 분식, 주점용 안주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Q. 유현수 한식의 지향점은 무엇입니까.

▷전통과 다양성입니다. 저는 무궁무진한 한식의 가능성을 확인해 보고 싶어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식이 전부가 아니에요.

옛 조리서상에만 존재하는 한식도 있고, 박물관을 가야 비로소 찾아볼 수 있는 한식도 있어요. 아예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그 이전의 한식도 있고요. 오랜 역사 속에서 지금 우리가 가진 한식과 과거에 존재했던 한식을 함께 이해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좀 더 전통에 가까운 음식을 풀어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단순히 서양요리를 카피해서 우리 식재료를 쓰는 ‘믹스매치’ 방식이 주류였어요.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핵심은 공감대입니다. 먹는 사람들이 한식이라는 틀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하겠죠. 전통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규정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는 것을 위주로 다양하게 변주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Q. 한식 세계화를 위해 시급하다고 생각한 것은.

▷가장 시급한 건 사람을 키우는 겁니다. 한식을 즐기는 사람을 늘리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한식을 만드는 사람을 길러내는 게 더 중요해요. 일단 콘텐츠가 풍부해야 하거든요. 한 나라의 음식이 발전하고 널리 알려지려면 그 음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야 해요.

그런 면에서 일본은 참 대단해요. 세계 어느 유명 레스토랑을 가든지 일본 스태프가 있어요.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배우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일식을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죠.

그렇게 외국 문물을 받아들여 풍성해진 일본 음식이 다시 세계인의 식탁에 오릅니다. 한식을 전승해온 명인·선배들이 많지만 그분들이 손을 뗄 수밖에 없는 때가 곧 옵니다. 노하우가 끊어지지 않으려면 젊은 인재들이 많이 유입돼야 해요.

Q. 요리 외에 개인적인 취미나 관심사가 있나요.

▷제가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요. 음악도 좋아하고 운동이나 바이크를 타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 모든 게 요리에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바이크를 타고 시골길을 갈 때도 불현듯 코끝을 스치는 냄새나 느낌을 받으면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기도 해요.

셰프가 레시피 책이나 연구자료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만 해도 많은 경험을 했거든요. 경험을 쌓고 10년,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구현할 수 있는 것. 거기서 탄생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있어요.

일종의 데이터베이스를 내 안에 쌓아가면서 불현듯 하나의 계기를 통해 세상에 나오는 거죠. 셰프 유현수가 아니라 인간 유현수의 삶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셰프로서의 나를 완성하는 느낌이죠.

Q.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끈기가 중요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두레유가 문을 연 지 2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아와 주방 문을 두드렸어요.

저는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뽑는 게 아니라 일단 일을 시켜보면서 사람을 봐요. 요리라는 게 사실 신체 건강하고 열정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잘하게 되고요. 실제로 지금 두레유 주방엔 요리를 아예 처음 해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어린 친구들과 일하면서 느낀 게, 좀 급하다고 해야 할까요. 뭐든 빨리 하려 해요. 지금 주어진 단계에서 충분히 배우는 게 아니라 빨리 넘기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모습이 있어요.

당장 TV 방송에서 셰프가 나와 만드는 음식을 보면 ‘나도 저 정도는 하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죠. 하지만 사람이 몸으로 하는 일을 잘하려면 늘 일정한 시간을 들여야만 해요.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두레유’
▲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두레유’

■ 유현수 두레유 오너셰프는

1978년생으로 강원도 원주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회사에 입사했지만, 2002년 요리에 대한 열정 하나로 셰프의 길에 도전했다. 2005년 유학길에 올라 미쉐린 2스타 프렌치 레스토랑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아쿠아‘를 비롯해 미국, 호주, 일본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선진 주방을 경험했다.

2011년 한국에 돌아와 서울 청담동 D6의 총괄셰프로 퓨전 한식을 선보였으며,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지내며 사찰음식도 섭렵했다.

런던올림픽이 열린 2012년에는 주영한국대사관의 총괄셰프를 역임하며 한식을 세계에 알렸다. 2014년에 신사동 ‘이십사절기’ 총괄셰프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한식 파인다이닝 문화를 선도하며 2016년 ‘미식의 성서’ 미쉐린가이드의 별을 따냈다.

* 출처 : MK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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