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는 대부분 알지만 ‘식해’는 조금 낯설다. 한글도 한자도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고, 한 글자 차이지만 그 뜻은 한참 멀다. 한자로 ‘혜’는 식초를, ‘해’는 젓갈을 가리킨다. 그러면 굳이 식해라고, 젓갈과 구분해 이름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 식해란 밥을 넣은 젓갈
젓갈과 식해는 무엇이 다를까. 역시 힌트는 이름에 있다. 식해라는 이름은 '밥'을 품고 있지 않나. ‘해’는 젓갈을 뜻한다고 했으니 식해는 바로 ‘밥을 넣은 젓갈’이다. 젓갈을 만드는 데 왜 굳이 밥을 넣었을까. 그 답은 식해의 고향에서 찾을 수 있다.
식해는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 등 동해안 지역에서 주로 밥반찬으로 먹었다. 서해와 달리 동해는 소금이 귀했다. 그래서 소금을 덜 넣은 젓갈, 식해가 탄생한 것이다.
식해의 재료는 매우 다양해서 가자미, 명태, 갈치, 광어, 노가리, 대구, 도다리, 도루묵, 멸치 등 생선과 고둥, 낙지, 대합, 문어, 오징어 같은 연체류 그리고 명태 아가미, 명태 창자, 명란 등 알과 내장, 아가미로도 만들었다. 식해는 주재료와 무, 고춧가루, 소금을 섞고 쌀밥과 엿기름을 넣어 만든다.
밥의 종류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데 함경도에선 특히 조밥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찰밥, 차조밥, 메조밥 등 다양한 종류의 밥을 넣었다. 이때 밥은 질지 않게 말려서 넣었다. 김장철엔 김장하면서 식해를 함께 담기도 했고, 동해안 지방에서는 김치에 식해를 넣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아예 김치 대용으로 먹기도 했다.
우리나라 문헌에 식해가 등장한 것은 조선시대 중엽이다. 1450년 쓰인 <산가요록>에는 ‘어해, 양해, 저피식해, 길경식해, 생치식해, 원미식해’ 등이 적혀 있다.
이 중 ‘어해’에 대해서는 ‘물고기를 소금에 절이고, 항아리 안에 먼저 멥쌀밥을 넣은 다음 물고기를 사이사이에 놓고 손으로 꼭꼭 눌러 담는다’라고 만드는 방법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이때부터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전부터 식해를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얀마, 타이, 라오스와 같이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에선 식해와 비슷한 음식을 찾아볼 수 있다. 생선과 소금이 귀한 열대 지역에서 생선에 최소한의 소금과 쌀을 넣어 발효시켜 먹었던 것이다.
♣ 밥이 사라진 뒤 남은 오묘한 맛
발효와 숙성 과정을 충분히 거친 젓갈은 비린내, 유황, 암모니아 냄새 같은 고약한 향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류 단백질이 펩타이드나 리신, 글루탐산, 글리신, 알라니, 루이신 등의 아미노산으로 분해돼 소화 흡수가 잘된다. 젓갈의 감칠맛과 고소한 맛의 비밀은 베타인, TMAO, 핵산 덕분이다. 이렇듯 잘 담은 젓갈은 특유의 맛과 향이 살아 있다.
식해는 종류에 따라 밥 알갱이가 완전히 삭아 없어지거나 남아 있는 경우도 있는데, 밥 알갱이가 안 보이는 식해는 사실 젓갈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종류에 따라 겉모양이 비슷하다 해도 식해와 젓갈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맛이다.
식해의 맛은 젓갈과는 다르다. 식해는 짭짤한 젓갈과 달리, 달고 신 맛이 있다. 젓갈류에 비해 염도는 낮지만 젖산 발효로 pH가 낮아져 부패균의 증식이 억제되고 독특한 향과 맛이 생성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엿기름과 섞인 밥이 당화 및 발효를 일으켜 시간이 지나면 약간의 단맛과 신맛을 내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맵고 시고 짭짤하고 은근히 단맛이 도는 식해는 다른 음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별미가 분명하다.
밥과 채소를 즐겨 먹은 우리 조상들은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을 젓갈이나 식해로 보충했다. 육류보다는 구하기 쉬운 어패류를 이용한 것이다. 만드는 법은 비교적 쉽지만, 식해는 양질의 아미노산, 나트륨, 칼슘, 철분, 인 등의 무기질과 수용성 비타민 등 영양이 풍부하고, 소화에도 도움을 주었다.
종묘제례 제사상에 올랐을 만큼 그 옛날 식해는 귀한 음식이었다. 오늘날 젓갈처럼 쉽게 접할 수는 없지만, 행여 식해를 맛볼 기회가 생긴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