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은 ‘반찬 문화’가 특징이다. 밥과 국을 중심으로 여러 반찬을 곁들여 먹는 것이다. 그런데 반찬이라고 해서 다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김치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정은 남다르다. 김치가 없으면 아무리 많은 반찬이 있어도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왜일까? 사람의 정성에 시간이 더해져서 만들어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발효음식인 김치 그리고 김장 문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 김치와 발효의 유구한 역사
발효란 곰팡이, 효모, 세균 등 미생물의 작용으로 원래 물질이 분해되어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이러한 발효는 인류의 보편적인 음식 문화로 식품을 오래 두고 먹기 위한 방편이다. 치즈, 와인, 요구르트 등이 모두 그러하다.
우리나라는 발효 식품에 꽤 조예가 깊다.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장류를 비롯해 김치, 젓갈, 식초, 막걸리 등 한국인이 애호하는 발효 식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이 가운데 김치는 한국인들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반찬으로 손꼽힌다.
사람은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풍부한 채소의 섭취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채소는 곡물과 달리 저장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소금에 절이거나 건조를 통한 저장 방식이 있긴 하지만, 본래의 맛을 잃거나 영양분의 손실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 대를 이어 개발된 것이 발효를 통한 김치 담그기인 것이다.
냉장고도 비닐하우스도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채소를 겨우내 싱싱한 상태로 저장해 섭취할 수 있도록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보통 김치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추정한다. 우리 선조들이 고대부터 채소를 즐겨 먹었고 소금을 만들어 사용했으며, 젓갈과 장 등 다른 발효식품의 역사가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상고시대의 김치는 순무·가지·죽순 등을 소금이나 장류에 절인 채소절임, 즉 지금의 장아찌와 유사한 형태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후 김치의 형태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치며 장아찌류와 동치미 및 나박김치류로 분화·발달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오이·부추·미나리·갓·죽순 등 김치에 들어가는 채소류가 다양해지는 동시에, 파·마늘 등이 가미된 양념형 김치가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저장의 지혜 한국식 발효
김치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고추, 배추, 젓갈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조선시대 중기 이후이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은 임진왜란(1592~1598년) 때이며, 19세기 말에는 통배추가 재배되면서 지금과 같이 김치의 대표적인 주재료로 자리를 잡았다.
김치 하면 떠올리게 되는 배추김치의 맛과 형태가 형성된 것이 불과 약 100년 전의 일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김치의 발달 과정에서 발효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1차로 배추와 무 등 김치의 주재료를 소금에 절여 생채소의 아삭한 조직감을 유지한 채 유해 미생물을 제어하고 젖산발효를 유도한다.
이후 젓갈과 향신 양념을 더해 재료 자체의 2차 발효를 유도하는 것인데, 이때 식물성 재료와 동물성 재료가 섞여 발효된다. 이를 통해 김치는 장기 보존이라는 목적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맛과 향을 더하고 나아가 새로운 영양분과 기능성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화합과 나눔의 김장 문화
김치와 함께 주목해야 하는 것은 김치를 담그는 과정인 김장문화이다. 예로부터 김장김치는 ‘겨울의 반 양식’이라 하여 지역을 가리지 않고 어느 가정에서나 필수적으로 담갔다.
다른 문화권에도 김치와 유사하게 절임 채소를 만들고 먹지만, 우리나라처럼 다수의 국민이 겨울이 다가오기 직전 음식을 만들어 저장하는 풍속은 찾아보기 어렵다. 설날, 추석 등 큰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듯, 김장철이 되면 가족들이나 이웃끼리 모여 노동력과 그 결과물을 나누는 것이다.
이렇듯 김장문화는 사람들이 어울려 화합, 협동,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김장철이 되면 사회 곳곳에서 불우이웃 돕기의 일환으로 김장을 하여 나누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 덕분에 우리의 김장문화는 2013년 제8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위원회에서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오랜 세월 여러 세대를 걸쳐 내려오면서 이웃 간 나눔을 실천하고 또한 공동체 연대감을 형성, 개인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증대시켰다는 것이 등재 이유였다.
한편, 김장문화는 다른 유산들과는 다르게 전 국민이 전수자로, 온 나라가 김장문화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또 김장의 재료와 방법 등에서 지역에 따라, 가정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를 보이며 김장문화가 이어져 온다는 것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 200가지에 달하는 김치의 종류
실제로 김치는 그 이름이 등록된 것만 약 200가지에 달한다고 한다. 먼저 지역별로 살펴보면 비교적 추운 북한 지역인 함경도나 평안도는 싱겁고 담백한 맛으로 국물이 많고 채소의 신선미를 그대로 살리는 반면, 더운 남쪽 지방은 짠맛과 매운맛을 강조하고 국물을 적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보자. 수도인 서울은 궁중에서 먹던 김치를 중심으로 발달했고, 경기도는 모양이 화려하고 재료가 풍성한 것이 특징이다.
또 충청도는 충남 지역의 해산물과 충북 지역의 채소가 어우러지며 소박한 맛을 내고, 전라도는 풍부한 산물로 김치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젓갈과 고추 양념을 많이 사용한다. 섬이기에 식재료가 귀한 제주도는 되도록 양념을 적게 사용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며, 전복 등 상대적으로 풍부한 해산물을 첨가하는 김치가 발달했다.
높은 산과 바다를 품은 강원도는 산간지방과 해안지방으로 나뉘어 각각의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십분 활용하며, 경상도는 맵고 얼얼하며 간이 짠 김치를 많이 해먹는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여 제철 채소를 이용해 여러 가지 종류의 김치를 담가 먹었다. 김장철에 담근 배추김치, 백김치, 동치미, 무김치 등을 먹으며 추운 겨울을 보냈고, 봄이 찾아와 채소들이 자라나기 시작하면 햇배추김치, 미나리김치, 갓김치, 얼갈이김치 등을 담갔다.
더운 여름에는 상하지 않도록 바로 먹을 수 있는 열무김치, 오이김치, 부추김치 등이 주류를 이루며, 가을에는 총각김치, 가지김치, 굴깍두기 등으로 식탁을 채웠다.
담그는 방법에 따라서도 김치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 통배추김치, 총각김치 등 주재료에 부재료를 섞어 만든 ‘통김치’, 동치미나 나박김치처럼 국물을 함께 먹기 위한 ‘물김치’가 있다.
‘깍두기’는 무나 오이 등의 재료를 깍둑썰기하여 양념에 버무린 것이고, 오이나 가지 등에 칼집을 넣어 소를 채운 김치는 ‘소박이’라 한다. 다양한 과실과 해산물 등을 넣고 잎이 넓은 채소로 보자기처럼 싸서 담그는 ‘보김치(보쌈김치)’ 그리고 배추와 무를 썰어 절인 후에 여러 가지 양념과 굴, 낙지, 조개젓국 등을 넣고 버무리는 ‘섞박지’는 고급스러운 맛을 자랑한다.
한국인을 비롯해 김치 맛을 아는 이라면 벌써 입안에 침이 고였을 터. 이번 김장철에는 사 먹는 김치도 좋지만, 가족들끼리 또는 이웃끼리 오순도순 모여 김장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