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 우리나라 식생활에서 기본 중 기본이다. 장 담그는 일은 옛날부터 한 해의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고, 우리 식탁에 장이 빠지는 일은 없었다. 속담을 통해 맵거나 짭조름한 특유의 감칠맛으로 오래도록 우리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장에 대해 살펴보자.
♣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고?
장은 오랜 기간 우리 민족의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조미료로 사랑받아왔다. 장맛이 곧 음식 맛을 좌우했기에, 선조들은 장을 정성 들여 담갔다. 장맛은 집집마다 다르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삶은 콩 덩이(메주)에 어떤 미생물의 포자가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곰팡이의 포자가 많이 떨어져야만 좋은 메주가 될 수 있으나, 일반 가정에서 이런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현상이 아이러니하게도 집마다 독특한 장맛을 빚어내는 결과로 이어진다.
식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올 정도로 선조들이 장을 사랑했던 덕분인지, 관련 속담이 무척 많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은 우리 풍습과 관련이 깊다. 선조들은 장 담그기를 집안의 큰 행사로 여길 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다.
장을 담글 때는 외부인의 출입을 삼갈 정도였다고 하니 말이다. <삼국사기>에는 이 속담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김유신 장군이 전쟁 때문에 오랫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하던 차에, 우연히 집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전장으로 향하던 중 장군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으니 집에는 들르지 못하고, 가족이 잘 지내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마침내 좋은 묘책을 떠올렸다. 바로 부하를 보내 집의 간장을 한 사발 떠 오라고 지시한 것이다.
집의 간장을 맛본 장군은 예전과 똑같은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안심하고 전쟁터로 나갔다고 한다. 이는 집안이 평온하면 장맛이 좋겠지만,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다면 장맛도 변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속담이다. 유사한 속담으로 ‘장맛을 보면 그 집안을 알 수 있다’와 ‘집안의 일은 장맛으로 안다’ 등이 있다.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 못 담글까’ 역시 널리 알려진 속담이다. 최근에는 보기 힘들지만 구더기는 과거에 흔히 볼 수 있는 유충이었다. 장독 관리를 조금이라도 허투루 하면 장에 구더기가 들끓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식생활에 꼭 필요한 장을 담그지 않을 수는 없듯, 방해되는 것이 있더라도 마땅히 할 일은 해야 한다는 뜻을 담은 속담이다. 유사한 속담으로 ‘쉬파리 무서워 장 못 만들까’, ‘가시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등이 있다.
♣ 선조들의 실생활과 생각을 담다
맏동서가 죽으면 고추장 단지는 내 것이고, 시어머니가 죽으면 아랫목이 내 차지’라는 다소 살벌한(?) 느낌의 속담은 구전민요 <밀양아리랑>의 한 구절에서 비롯됐다.
“시누부 죽으라고 축원을 했더니 고추장 단지가 내 차지”라는 구절이 그것. ‘시누부’는 시누이의 경상남도 방언으로, 민요의 화자는 누군가가 죽기를 바랄 만큼 고추장 단지를 원한다. 위 속담은 그렇듯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 되길 원하는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고 있다.
‘못난 며느리가 사흘에 고추장 한 단지를 먹어버린다’는 그렇지 않아도 미운데 미운 짓만 골라 하는 경우를 이른다.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가 그 귀하디귀한 고추장을 다 먹었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까. 그 밖에 ‘방앗간에서 자는 놈이 고추장 타령한다’는 처지에 맞지 않게 음식을 탓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고, ‘보리밥에는 고추장이 제격이다’는 일이 격에 맞게 되어가는 경우를 뜻한다.
된장 관련된 속담 중에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양반은 세 끼만 굶으면 된장 맛 보잔다’가 있다. 평상시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은 참을성이 없어 배가 고프면 아무것이나 고맙게 먹는다는 뜻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 계급을 바라보는 서민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된장과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는 예로부터 푹푹 삭혀 오래된 것일수록 장맛이 좋다고 하듯, 이웃이나 친구도 오래 사귀어 희로애락을 함께한 사람일수록 더 우애가 좋다는 뜻을 담고 있다.
‘된장에 풋고추 박히듯’은 풋고추를 된장에 주로 찍어 먹듯 어떠한 자리를 떠나지 않고 꼭 틀어박혀 있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개에게 된장 덩어리 지키게 하는 격’은 개가 된장 덩어리를 고깃덩어리로 착각해 덤벼들 듯 믿지 못할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일을 망치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간장 관련해서도 몇몇 속담이 전해진다. 대표적으로 ‘움 안에 간장’은 외양(움막)은 보기에 좋지 않지만 내용(간장)은 훌륭하다는 뜻이다. 간장을 중요시했던 선조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사또 밥상에 간장 종지 같다’는 밥상 한가운데 간장 종지가 놓인 것처럼, 변변치 않은 사람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을 담은 속담이다. 이건 아마도 간장을 ‘고급 반찬’이라기보다는, 극히 기본이 되는 조미료로 여겼기에 나온 속담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유사한 뜻으로 ‘호장’이라는 한자어가 있다. ‘단지 안에 든 간장처럼 보잘것없고 맛없는 반찬’을 뜻하는데, 이 역시 간장을 폄하했다기보다 선조들이 간장을 기본 중 기본으로 여긴 데서 나온 말이다.
고추장과 된장, 간장 등의 장은 앞서 언급했듯 우리 주방과 밥상에서 기본 중 기본이라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난 자리는 티가 난다는 말처럼, 항상 함께하던 장이 빠지고 나면 우리 밥상은 그 특유의 맛과 향을 잃는다. 그만큼 장이 오랜 기간 우리를 지탱하는 기본이었다는 뜻이다. 그 누구든, 어디든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