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는 오랜 기간 이 땅에서 재배되어 왔고 비교적 재배가 용이하여 월동용 김치 원료로 많이 이용되던 것이다. 따라서 그 제법도 다양하고 여러 형태로 응용되어 왔다.
월동용으로 무짠지 형태의 김치에 대해 구체적인 기술이 되어있는 것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이 처음이며 동치미도 조선 초기 문헌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산림경제
蘿葍菹(나복저) - 무, 소금물, 당귀, 파
蘿葍黃芽菹(나복황아저) - 무싹, 무 소금물
蔓菁菹 (만청저;무짠지형) - 무, 소금물, 어린 파
蘿葍冬沉菹(나복동침저;동치미형) - 무, 소금물, 생강, 파, 거목, 천초
蘿葍鹹菹(나복함저;총각김치형) - 무,고춧잎,고추,청각,오이,호박,박줄거리,미나리,동아,천초,부추,가지,마늘즙,소금물
♣ 주찬
鹹菹(함저; 깍두기형) - 절인 무, 생강, 초피, 복합양념, 소금물
童沉菹(동침저;동치미) - 무, 소금물, 오이, 가지, 초피, 고추껍질
♣ 규합총서
凍沉菹法(동침저법;동침이) - 꼬리달린 무, 배, 유자, 소금물(꿀,석류,잣)
동지(동치미형 짠지) - 무, 소금물
♣ 시의전서
젓무(깍두기형) - 무, 배추, 오이지, 새우젓, 오이소박이, 고춧가루
얼젓국지(깍두기형) - 배추, 무, 양념, 젓국
冬沉伊(동침이;동치미) - 무,오이,배,유자,파,생강,고추,소금물(먹을 때 설탕과 석류, 잣 첨가)
무 김치류는 오랜 기간 만들어져 오며 이미 제법이 고착되어왔다. 그러나 조선 후기부터 출현하여 20세기 전반 김치류 중 가장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으면서 김치 대명사의 하나로 자리 잡은 ‘깍두기’는 명칭이 언제부터 어떠한 형태로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유행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깍두기라는 명칭이 처음 소개된 것은 조리서나 농서가 아닌 고전소설 ‘춘향전’에서 이다.
무의 재배가 연중 가능하다는 점과 다른 침장류에 비해 노력이 많이 들지 않으며 김치원료 채소의 부스러기로도 만들 수 있다는 점, 판소리계 고전소설 속에는 등장하는 명칭이 당대 이후 20세기에 이르도록 ‘깍두기’라는 이름으로는 문헌기록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 등 여타 정황으로 미루어 하층민이 이용하던 김치로 여겨진다.
1940년 홍선표라는 사람이 쓴 「조선요리학」에 깍두기의 유래를 언급한 사실이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 구전(口傳)에 불과할 뿐이므로 정설(定說)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깍두기는 2백여년전 정조때 정조의 사위되는 영명위홍현주의 부인이 임금님에게 여러가지 음식을 새로히 만들어들일 때 처음으로 무를 쓰러 깍두기를 만들어 들였드니 대단히 칭찬하시고 잡수신일로부터 여염가까지 전파하였따는 것인대 그때 일흠을 각독기라 하였고 민간에 전파하기는 그때 대신중에 일흠은 기록된 곳이 없지만은 공주에 낙향하야 깍두기를 맨들어 먹었든 까닭으로 깍두기가 공주에서부터 민간으로는 시작된 관계로 오날까지 공주깍두기라고 유명한 것이다.”
1800년대 말 시의전서에서에서야 ‘젓무’라는 이름으로 제법이 소개되고 있으니 오히려 민간에 널리 퍼져 있던 깍두기를 반가에 시집갔던 숙선옹주가 거꾸로 궁중 문화에 맞게 변형시켜 궐내에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 깍두기는 비주류 김치로 양반들은 입도 대지 않았다는 일설도 있으며 20세기 전후 제법에 나타난 일반적인 깍두기(혹은 젓무) 크기가 손가락 한 마디(약 2.5cm) 혹은 두 마디(약4.5cm)인 것에 비해 궁중의 깍두기는 아주 작은 크기로 네모반듯하게 썰어 이름을 ‘송송이’ 라 부르고 있어 그 모양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홍선표가 그의 저서인 「조선요리학」에서 공주깍두기를 유명한 음식으로 꼽은 것과는 달리 깍두기는 20세기 전반 장김치와 함께 서울지방의 대표 김치로 꼽히고 있다.
유래야 어찌되었든 문자화된 조리서에서는 제법을 찾을 수 없으나 상당히 오랜 기간 민간에 퍼져있던 김치로 보인다. 단지 반가문화에 맞게 미적인 요소를 감안해 무를 일정한 모양으로 썰어 담그는 형태로 제법이 정리되어 1800년대 말 조리서인 「시의전서」에서 ‘젓무’ 라는 명칭으로 소개되는 것이 문헌상으로는 처음인 것이다.
‘얼젓국지’와 ‘젓무’는 젓갈과 젓국을 이용하는 대신 간국을 첨가하지 않는다. 무의 가공형태가 깍두기형인데 이 ‘젓무’의 특징은 주재료를 골패모양 혹은 네모로 썰고 젓을 이용한다는 의미로 ‘젓무’로 칭한 것으로 보인다.
깍두기라는 명칭은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부터 등장하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무려 7종이나 소개 되며 ‘깍두기’를 [무젓 젓무 紅菹]라고 병기하여 놓음으로써 깍두기의 반가 명칭이 ‘젓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1941년 「춘추」라는 잡지를 통해 조자호가 ‘젓무’는 깍두기의 별칭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특히 서울지방에서 많은 공을 들여 담는 김치라고 소개하고 있다.
젓의 종류에 따라 새우젓무(새우젓깍두기), 자젓젓무(곤쟁이젓깍두기 등으로 세분화되기도 하고 무를 써는 방법에 따라 무청깍두기,잔깍두기,두쪽깍두기,통깍두기로 나뉘기도 한다.
즉 이 당시에는 깍두기가 무 써는 모양 보다는 소금을 주로 한 짠지와 대비하여 양념과 젓으로 담는 무김치 침채법을 통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며 따라서 무의 양념법, 침채법 등을 달리한 김치로써 ‘깍두기’라는 명칭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제법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세기 초반 이후부터는 ‘젓무’라는 이름은 거의 사라지고 ‘깍둑이’라고 불리며 성행하였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널리 애용되는 무김치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만약 이 깍두기가 하층민이 만들어 먹던 것을 시초로 하여 궁중에서도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1800년대 말에 들어 반가 조리법에도 내용이 소개되고 것이라면 쌈김치가 궁중에서 시작해 민가로 퍼져나간 것과는 대조적으로 하층에서 상층으로 역전파 된 음식으로써 20세기를 전후한 시점에서 계급 넘나들며 전파된 식문화의 사례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날 무김치의 대표주자로 하나를 더 꼽자면 ‘총각김치’가 있다. 총각김치 역시 비슷한 제법은 「산림경제」에서 보이지만 공식적으로 ‘총각김치’라는 명칭은 나타나지 않다가 1959년에 이르러서 다른 김치 제법을 소개하며 잠깐 이름이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이 기사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총각김치 역시 이 전부터 김장철 흔히 담가왔던 김치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총각김치용으로 사용되는 ‘알타리무’라는 것은 원래 북지(몽고,만주,화북,한국 등지)에서 많이 나는 작은 무 계통으로 전분이 많고 크기가 작으며 가을무와 달리 잔뿌리가 적고 저장성이 약한 극 조생종 무이다.
근대에 재배되었던 누루배기, 서울봄무, 쥐꼬리무 등이 이 계통에 속하며 봄, 가을 재배나 열무용으로만 이용되다가 7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확대 생산되고 품종이 많이 개량되었다고 한다.
알타리 품종이 제대로 재배되기 전 이렇게 쓸모가 적은 작은 허드렛 무를 무청을 자르지 않은 채 김치로 담았던 것이 ‘알무김치’라는 것인데 그 모양 때문에 '총각김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허드렛무를 별도의 가공 없이 담근 김치라는 점에서 이 역시 하층민들이 주로 이용했던 김치로 보이며 20세기 전반까지 김장김치 명목에는 깍두기류 범주 안에 들어 있다가 1960년대에는 총각김치용으로 별도의 품종이 개발되면서 197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김장김치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설렁탕에 깍두기가 빠지면 한국식 표현으로 ‘앙꼬 없는 찐빵’이 될 정도로 한국의 국밥집이나 설렁탕 곰탕류의 음식점에서 반드시 곁들여지는 반찬이 되었다. 국밥에는 적당히 익은 깍두기를 국물까지 부어 넣고 휘휘 저어서 먹어야 제맛이다.
깍두기의 맛은 무맛이 좌우한다. 깍두기 무는 약간 맵고 달며 단단한 것이 좋다. 무청은 숨이 죽을 정도로 소금에 절이고 무는 깍둑썰기로 썬다. 무와 배추 속대를 살짝 절이고 술은 소금물에 씻어 물기를 빼, 나중에 물이 생기지 않도록 고춧가루에 잘 무쳐 놓는다.
미나리 쪽파 등은 무 길이와 비슷하게 썰고 새우젓은 적당히 다진다. 먼저 무와 배추속대를 고춧가루와 버무린 뒤 마늘, 파, 생강 등을 곱게 다져 넣고 새우적 소금 설탕을 넣어 간을 맞춘다.
굴은 마지막에 살살 버무려 넣고 항아리에 꼭꼭 눌러가며 담는다. 제주도와 서울 지역에서 많이 담가 먹는다. 한국의 설렁탕이 세계적인 탕요리로 급부상하면서 바늘에 실 가듯이 깍두기 또한 인기 메뉴로 떠올랐다.
예전엔 같은 김치라도 먹는 사람을 배려해 담그는 법을 달리했는데 경노효친 사상이 뿌리 깊었던 시절 젊은이와 달리 치아와 잇몸, 소화기능이 약한 노인들을 위해 무를 살짝 삶아 무르게 한 후 새우젓을 곱게 다져 고춧가루 등의 양념으로 쑥깍두기를 담갔다고 한다.
임산부를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성이 임신을 하면 아기를 출산할 때까지 몸가짐이나 행동, 그리고 언어나 음식 섭취에도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정깍두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음식의 질은 물론이며 그 모양과 색상까지 고려한 정깍두기는 무를 정사각형으로 썰어 담근 것으로 몸과 마음이 반듯한 아이를 출산하려는 기원이 담겨져 있다.
깍두기는 설렁탕집에서만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김치가 제공되는 경우 깍두기는 생략하는 것이 한국의 일반적인 상차림이다. 그러나 종종 “배추값이 금값”이 되는 해가 있다. 배추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해에는 일반 서민들은 김치 담그기가 무섭다는 말을 한다.
어찌 보면 밀가루음식이 보편화된 요즘에는 쌀값의 변동보다 배추값의 변동에 사람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듯하다. 배추값이 뛰는 경우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깍두기이다.
배추김치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만들 수 있는데다가 또한 배추김치처럼 여러 가지 속재료가 필요 없는 것이 깍두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 저렴한 가격의 반찬을 내놓는 분식집의 단골메뉴가 된 것이 깍두기가 아닐까. 돈까스집에도 부식으로 깍두기를 놓는다. 그만큼 깍두기는 김치의 훌륭한 대용품이다.
♣ 깍두기 담그는 법, 어렵지 않아요. [백종원의 요리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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