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에 흰 이슬이 맺히는 백로(白露)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秋分)에는 가을 채비에 돌입한다. 폭염과 태풍, 해일이라는 고난이 연이어 찾아와도 꿋꿋하게 제 몫을 해내는 절기. 가을걷이 일손은 더 분주해져도 마음만은 풍년 생각에 흥겨운, 감사의 계절이다.
♣ 세파를 견뎌낸 고마운 풍년, 9월의 절기
#백로(흰 이슬) #황금 나락 #가을걷이 #풍년기원
9월에 찾아오는 백로(白露)는 강인한 절기다. 가을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에 이슬이 맺히지만, 여린 뜻과 달리 강직하다.
태풍과 해일이 논밭을 휩쓸고 가면 채 여물지 못한 나락이 위태위태하고 얄궂은 서리마저 호시탐탐 노리지만, 세파를 견뎌낸 나락이 결실을 본다. 백로에 비가 오면 가을걷이가 ‘풍년’이라니, 잦은 비가 그저 반갑다.
#추분 #낮과 밤 #가을볕 #식재료 말리기
낮이 밤을 시샘하고, 밤이 낮을 시샘하기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계절의 분기점 추분(秋分)이 찾아온다.
땅속에 남은 여름의 기운 탓일까? 지열과 가을볕에 고추를 말려두고 쉴 틈 없이 다른 가을걷이에 나선다. 호박고지, 박고지, 깻잎, 고구마순도 거두어 말리기 바쁘다. 겨우내 두고두고 먹을, 가을걷이의 풍요로움에 흥이 절로 난다.
♣ 입맛 없을 땐! 9월의 식재료
백로와 추분은 여름이 가고 완연한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절기다. 무더위에 잃어버린 입맛과 지친 체력을 보충하는 9월의 먹거리는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이 더 그윽하게 배어 나와 입맛을 돋운다. 토란, 단감, 고구마, 표고버섯, 미역, 갈치까지, 식탁 위는 연일 풍년이다.
♣ 하나. 영양이 옹골차게 찬 ‘토란’
우리나라에 감자와 고구마가 들어오기 전까지 탄수화물과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토란(土卵)은 ‘땅에서 자라는 알(卵)’이라고 하여, 영양이 옹골차게 차 있는 가을의 보배로 손꼽힌다.
감자보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토란은 조림으로 알알이 먹어도 맛있지만, 찜이나 탕에 넣으면 국물에 깊은 맛이 더해진다. 토란 줄기는 섬유질이 풍부해 ‘알과 줄기까지’ 영양의 보고다.
♣ 둘. 달콤한 변신마저 반가운 ‘단감’
풍요의 상징인 감은 가을의 선물이다. 씹는 맛이 일품인 단감부터 당도 높은 홍시, 말랑말랑한 연시, 말린 곶감까지 다양한 맛을 선사한다.
우리나라 토종 품종들은 떫은 감이지만, 지금은 당도 높고 육질이 부드러운 ‘태추 단감’, 배처럼 아삭하고 과즙이 풍부한 ‘로망 단감’, 껍질이 부드러워 껍질째 먹는 ‘연수 단감’ 등 다양한 품종이 개발되고 있다.
♣ 셋. 든든하게 달콤한 ‘고구마’
가을이 제철인 고구마는 그 옛날 가난한 서민들에게 고마운 한 끼를 선사했다. 그리고 지금은 특유의 단맛으로 각종 요리와 디저트에서 빛을 발한다.
전통적인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부터 첫사랑 고구마.꿀고구마와 자색 고구마까지, 다양한 품종을 자랑하는 마성의 식재료다. 고구마는 줄기도 맛있어, 나물로도 선호한다.
♣ 넷. 땅에서 나는 고기 ‘표고버섯’
표고버섯은 향과 맛이 좋아 각종 요리에 빠지지 않는다.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표고버섯을 말리게 되면 아미노산이 생성돼 더 귀하게 취급받는 ‘땅에서 나는 고기’이다.
1등급 표고 재배는 원목과 톱밥을 이용해 재배되며 전남 장흥군에서는 대부분 원목 재배가, 충남 청양에서는 톱밥 재배로 이루어진다. 항암 효과가 있어 건강 증진 식품으로도 손꼽힌다.
♣ 다섯. 가을 바다의 보약 ‘미역’
‘바다의 채소’ 미역은 영양소가 풍부하고 독소 배출 효과가 있어 산모나 여성에게 좋은 식재료다. 특히 가을 미역은 ‘바다의 보약’으로 불린다.
기장 미역, 완도 미역, 진도 돌미역이 대표적이다. 기장 미역과 진도 돌미역은 오래 끓일수록 뽀얀 색과 맛이 뛰어나고, 두께가 얇아 쉽게 풀어지는 완도 미역은 금방 끓여내 먹을 수 있다.
♣ 여섯. 은백색의 멋과 맛 ‘갈치’
갈치는 생김새가 기다란 칼 모양을 하고 있어서 칼치라고도 부른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은백색의 멋있는 옷을 입었지만, 식탁 위에서 만나는 갈치는 더 맛(멋)있다.
제철은 7~10월로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가을 갈치는 싱싱하고 살이 유난히 부드러우며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구이, 튀김, 조림 등에 활용돼 다채로운 맛과 멋을 발산하는 바다의 식재료다.
올해도 풍년이오, 가을 식탁마저 풍요롭다. 9월이라 더 행복한 미식의 세계는 열 일 제쳐두고 버선발로 달려 나가 반길 수밖에…….
❞♣ 가을 보양 vs 가을 별미, 9월의 음식
전복죽 _ 기운찬 전복이로세
8~10월이 제철인 전복은 고단백 영양 만점 식재료로 죽을 쑤어 먹으면 병후 회복에 도움이 된다. 생전복에 붙은 파란 내장(개웃)을 터뜨려 죽에 같이 넣어 끓이면 영양과 향을 더해 가을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다.
당근이나 버섯류 등을 섞은 전복죽도 있지만, 전복 자체의 맛과 풍미를 느끼려면 전복과 쌀만 넣어서 끓이는 것이 좋다.
꽃게무침 _ 입맛 도는 꽃게 납시오
가을 별미로 즐길 수 있는 꽃게는 예부터 무침이나 절임, 탕 등의 요리에 다채롭게 활용된다. 특히 매콤하고 감칠맛이 있는 꽃게무침은 잃어버린 입맛을 되돌리는 ‘밥도둑’이기도 하다.
손질한 꽃게에 어슷하게 썬 붉은 고추와 풋고추, 곱게 간 양파와 배, 마늘, 생강, 진간장, 굵은 소금 등을 넣고 버무려서 썰어놓은 고추와 통깨를 고명으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