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치의 발효 과정
김치는 멸균하지 않은 배추, 고추, 마늘, 젓갈 등 다양한 원·부재료를 사용하여 제조된다. 김치의 발효는 배추와 무의 세포 속에 있는 효소가 작용하면서 시작되는데, 이때 효소작용으로 생긴 당분이나 아미노산이 재료로부터 기인하는 다양한 미생물의 먹이가 되고, 이 미생물의 상호작용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효가 시작된다.
발효 초기에는 김치 내 소금 농도의 영향으로 호기성 혹은 혐기성의 내염성 균들이 주로 생육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 발효과정에 의하여 젖산 등 유기산이 생성되고 탄산가스가 생성되는 등 발효 환경이 낮은 pH 및 혐기적 조건으로 바뀐다.
이에 따라 내산성・혐기성 세균들이 김치 발효를 지배하게 된다. 그러므로 발효 단계별 김치의 미생물 균총(microflora)은 계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유산균이 빨리 증식하게 되는데, 유산균이 만들어내는 산으로 인해 다른 미생물은 점차 죽고 염분을 견딘 내염성 유산균만 살아남게 된다.
현재까지 보고된 김치 발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유산균으로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속, 류코노스톡(Leuconostoc)속 와이셀라(Weissella)속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이외에도 김치로부터 분리 동정된 미생물들은 유산균들을 포함하여 200여 종 이상으로 매우 다양하다.
김치는 같은 레시피로 제조되어도 제조 시마다 맛이 다른데, 이는 원부재의 종류, 제조시기, 발효 조건(염도, 혐기조건, 발효 온도, 발효 기간) 등에 따라 김치 발효에 직접 관여하는 유산균이 달라지고, 유산균의 종류에 따라 발효 대사산물(당, 아미노산, 유기산, 향기성분 등)의 차이가 나타난다.
이는 김치의 맛과 상관성을 갖고 있다. 즉 발효과정에 따른 미생물 군의 천이(sucession) 양상과 군집 발달은 김치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가 된다.
김치를 제조하는 계절 중 겨울철 김치가 시원하고 깊은 맛을 내는 이유는 저온에서 숙성시켰을 때 유산균 중 이종발효유산균(heterofermentative lactic acid bacteria)인 류코노스톡속 유산균이 많기 때문이라 보고된 바 있다.
류코노스톡속 유산균은 발효 초기부터 생육을 시작하여 이산화탄소, 젖산, 초산, 에탄올 및 기타 휘발성 대사산물을 생산하여 김치를 복합적이며 독특한 풍미를 지닌 상태로 발효시킨다. 또한 생산된 이산화탄소로 하여금 김치 내부를 혐기적 조건으로 유지시켜 호기성 세균의 번식을 강력히 억제시킴으로써 정상적인 김치 발효가 되게 한다.
발효 중기에 이르면 이 류코노스톡속 유산균 수가 급격히 감소되며 동종유산발효균(homofermentative lactic acid bacteria)인 락토바실러스속 유산균이 왕성히 증식하게 되면서 김치는 매우 시어지게 된다.
대부분의 락토바실러스속 유산균은 젖산을 다량으로 생성하고 pH 3.0의 산성 환경에서도 생육이 가능하기 때문에, 김치의 발효 말기에는 상대적으로 산에 약한 류코노스톡속 유산균의 생육은 감소한다.
따라서 김치의 발효 말기부터는 상대적으로 산에 약한 균주인 류코노스톡속 유산균의 생육은 감소되면서 신맛 원인균이 많이 증식된다. 이에 따라 김치의 시원하고 깊은 맛이 사라지게 된다. 이와 더불어 산막효모의 증식으로 인해 김치는 군덕내(이취)가 나고 연부(물러짐)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 김치 발효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
김치 속의 미생물들은 발효 환경의 지배를 받으면서 증식하거나 소멸하게 된다. 따라서 환경요인에 의해 미생물 군집의 크기, 속 및 종의 다양성이 변동하고 미생물 수 역시 동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김치 속의 미생물 생육을 제한하는 환경요인에는 물리적·화학적 요인이 있다. 물리적 요인은 온도·산소·산화환원전위·압력 등이며, 화학적 요인은 소금의 농도·원료(특히 향신료)의 종류와 배합비율·유기산(특히 젖산)의 농도·박테리오신 등이다.
이 가운데 중요한 환경요인은 온도·소금농도·주원부재료의 종류와 배합비 등 세 가지이며, 동일한 원료 배합에서는 온도와 소금 농도가 가장 중요한 환경요인이다.
♣ 겨울철 김치가 맛있는 이유
김치의 맛은 원·부재료, 발효 조건, 김치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에 달려있다. 원·부재료의 생산지역과 계절 등의 성장환경은 풍미, 질감과 같은 관능적 특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이는 다른 계절에 생산된 채소는 물, 무기물 및 기타 영양 화합물의 함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이 가장 많이 섭취하는 배추김치의 주원료인 배추는 재배되는 계절에 따라 풍미, 식감뿐만 아니라 품질 유지기한까지도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과 겨울에 수확되는 배추 품종은 육즙이 많고 부드러우며, 단백질, 지질, 유기산의 함량이 더 많아 겨울 동안 먹는 데에는 좋지만, 봄철에 먹기 위해서는 조직이 단단하고 수분이 적은 품종이 오히려 연부나 산패를 억제하여 저장성이 좋다고 보고되어 있다.
배추김치를 오래 저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금을 사용하였으며, 김치에서 소금은 삼투 압작용으로 수분은 줄이고 배추 조직을 부드럽게 하는 작용과 동시에 유해한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고 김치 발효를 억제할 수 있다.
계절에 따른 배추 원료와 염분은 김치내 미생물 군집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지만 이러한 변화가 김치 발효 중 미생물 군집에 주요한 변수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에 세계김치연구소는 원부재료, 레시피, 제조 방법이 동일한 전국의 김치업체 22곳에서 제조한 배추김치 66종(김치 시료 198개)을 수집하여 지역, 계절(봄: 3~5월, 여름: 6-8월, 가을 9~11월, 겨울 12~2월, 여름철 김치는 유통과정 중 발효진행으로 제외), 염도, 발효 정도에 따른 미생물 군집 특성과 다양성 간의 상관관계를 구명하였다.
연구 결과, 같은 업체에서 제조된 김치라도 계절에 따라 김치 염도가 달랐다. 김치 염도가 가장 높은 계절은 가을이며, 가장 낮은 계절은 겨울이었다. 이는 주재료인 배추가 생산된 계절에 따라 품질 차이 및 유통 온도에 영향을 받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가을철에 생산된 김치는 여름~가을에 수확된 배추를 사용하여 제조되며 겨울철 수확된 배추에 비해 수분 함량이 높고, 또한 상품 김치의 유통환경의 기온이 높기 때문에 겨울철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함량의 소금을 첨가하여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여 김치 발효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김치 염도 차이에 따라 주요 발효 유산균의 종류와 점유 비율도 달라졌다. 김치 발효를 주도하는 3대 유산균은 류코노스톡, 와이셀라, 락토바실러스이다. 이번 연구에서 와이셀라와 락토바실러스 유산균은 겨울보다 봄·가을에, 류코노스톡 유산균은 봄·가을 보다 겨울에 더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그림 5).
와이셀라 유산균과 락토바실러스 유산균은 김치의 신맛을 강하게 하고, 류코노스톡 유산균은 김치에 적당한 신맛과 시원한 단맛, 톡 쏘는 청량감을 주는데, 이는 “봄·여름 김치 보다 겨울철 김치의 맛이 더 뛰어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