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지류인 강경천에 둘러싸인 충남 논산 강경과 서해에서 낙조가 가장 아름다운 전북 부안 곰소, 언뜻 닮지 않는 듯 보이는 두 곳에는 거부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젓갈이다.
이 시간, 서해에서 가져온 갖은 수산물을 특유의 비법과 노하우로 숙성해 어느 곳보다 맛깔스럽고 담백하며 곰삭은 맛을 내는 곳. 풍경에 취하고, 젓갈의 맛과 향에 취하는 곳. 충남 강경과 전북 부안으로 떠난다.
♣ 재래식 천일염과 바다의 맛 전북 부안 곰소
부안 곰소. 지명만으로도 단번에 젓갈이 떠오르는 고장이다. 곰소항에 가까워지니 짭짤한 바다 냄새가 훅 밀려온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젓갈 파는 가게들이 이어진다. 안내 표지판이 없어도 ‘곰소젓갈단지’에 다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는 곰소항 근해에서 잡은 어패류를 곰소에서 나는 천일염에 절여 만든 젓갈 가게들이 모여 있다. 어리굴젓, 명란젓, 창난젓, 갈치속젓, 토하젓, 낙지젓, 청어알젓 등 종류가 얼추 수십 가지는 되는 듯하다.
신선한 재료와 질 좋은 소금의 합작품이니 맛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가게마다 시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짭짤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식욕을 돋워 굳이 지인에게 맛집을 추천받지 않아도 될 뻔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 식당에서 젓갈정식을 주문하니 젓갈 14가지가 작은 접시에 담겨 나온다. 특별한 반찬 없이 김치와 깻잎장아찌만 추가로 나왔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젓갈은 처음이어서 조금씩 맛만 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죄책감을 느낄 새도 없이 두 번째 공깃밥까지 후루룩 넘기고 말았다. 간장게장이 밥도둑인 줄 알았더니 곰소 젓갈은 더하다. 부안의 대표 먹거리인 뽀얀 국물의 백합탕을 곁들이니 부안을 다시 찾을 이유가 더해졌다. 곰소 젓갈이 맛있는 이유는 당연히 신선한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곰소는 예부터 질 좋은 소금 생산지로 이름나 이곳의 소금은 왕의 상에 오른 특산물이었다. 소금은 소(牛)나 금(金)처럼 귀한 물건, 또는 작은 금(小金)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한자인 염(鹽)이라는 단어도 소금에 대한 국가의 지배를 뜻한다니, 예부터 소금이 인간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물 좋고 볕이 좋은 곰소의 천일염은 천연 미네랄이 풍부하고 염화마그네슘이 적어 국내 최고로 평가받는다.
곰소항 근처 곳곳에는 염전이 자리한다. 소화도 시킬 겸 찾은 염전에서는 막바지 소금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소금은 3월부터 10월경까지 만드는데 직접 작업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더라도 전통 방식으로 소금밭을 만들어놓은 풍경은 부안 여행의 낭만을 더한다.
♣ 짭조름한 젓갈과 풍요로운 인심 충북 논산 강경
어떤 이는 강경하면 김주영의 대하 장편소설 <객주>의 무대를 떠올린다. 실제로 옛날 서해로부터 금강의 지류인 강경천을 따라 수많은 상인이 내륙으로 향하기 위해 배를 댄 이곳 강경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평양시장, 대구시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시장의 하나가 바로 강경시장이었다니 상업이 얼마나 번창한 곳이었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수운이 발달한 강경은 수산물 거래가 활발해 1930년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상인들로 최대 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한참 국도를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강경대교가 눈앞에 놓이고, 강경대교를 넘으면 그야말로 사방은 젓갈의 천지다. 대로변에 한 집 건너 한 집이 거대한 젓갈 가게일 정도다.
강경이 젓갈로 유명해진 것은 역시 서남해에서 잡아들인 각종 생선을 오래 보관하기 위한 염장법과 가공법이 일찍부터 발달한 것에 기인한다.
거기에 바닷물을 끓여 만드는 전통 소금인 자염을 사용하고, 발효 과정에서 인공적인 방법 대신 폐광 등 토굴을 이용해 적정한 온도에서 자연 숙성하는 것도 젓갈 맛을 일품으로 만드는 비결이다.
종류를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젓갈을 취향에 따라 저렴하게 고른 후에는 강경의 또 다른 풍광을 찾아볼 일이다. 이제는 잘 닦여 지역민의 대표 산책로가 된 포구를는 직접 걷는 것도 좋지만 강경에서는 1900년대 초반에 지은 일제 강점기의 옛 건물도 꼭 감상해보길 권한다.
1920년에 개교한 강경상고의 옛 교장 관사는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고, 낡은 흑백사진에서나 볼 법한 남일당 한약방의 풍경은 마치 근대에서 그대로 멈춰버린 듯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