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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5. 발효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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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우리 술, 계절을 품다

우리 술, 계절을 품다

선조들의 낭만이 빚은 계절별 전통주

제철 음식에는 그 계절에만 취할 수 있는 맛과 영양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계절마다 마시는 ‘제철 술’이 있었다. 술 앞에 ‘제철’이란 말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지만, 선조들은 술을 빚는 과정에서도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했고 이러한 노력과 지혜 덕분에 계절의 향과 정취가 술잔에 담길 수 있었다.

♣ 배꽃 빛깔의 호사를 누리다 ‘이화주’

배꽃이 온 산을 새하얗게 뒤덮으면 양반가에서는 독특한 형태의 술을 빚어 마시며 여유롭게 봄을 즐겼다. 이 술의 이름은 ‘배꽃 필 무렵 빚는다’ 하여 이화주라 일컬으며, 실제로 꽃을 넣어 향을 입히는 가향주는 아니지만 뽀얀 빛깔과 달콤한 효모 향이 흡사 배꽃을 떠올리게 한다.

어여쁜 이름과 달리 이화주는 만드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고되다. 먼저 멥쌀을 씻어 담갔다가 가루 내어 누룩을 만들어 둔다. 역시 멥쌀가루로 도넛 모양의 구멍떡을 만들어 잘 삶아서 힘껏 치댄다.

이후 구멍떡을 식혀두었다가 체에 거른 쌀과 누룩을 섞어 2주 전후로 숙성시키면 풍부한 과실 향을 머금은 탁주가 빚어진다. 이화주는 물을 사용하지 않아 된죽과 같은 쫀득한 질감이 특징으로, 요구르트처럼 떠먹거나 찬물에 풀어서 마시기도 한다.

배꽃 빛깔의 호사를 누리다 ‘이화주’

알코올 도수가 낮아 나이가 많은 노인이나 아이들도 간식처럼 즐겼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흔히 맛볼 수 있는 술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다양한 잡곡으로 누룩을 만드는 것과 달리 멥쌀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대중이 즐기기보다 일부 부유층의 계절 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술 빚는 방법을 기록한 이화주의 주방문이 1450년경 문헌인 <산가요록>을 시작으로 다양한 문헌에서 등장하는 것만 봐도 이화주가 소수만 즐길 수 있었던 특별하고 귀한 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새콤달콤한 풍미에 부드러운 감칠맛이 어우러진 이화주는 봄철의 나른함을 깨우듯 입안을 향기롭게 채우는 디저트 같은 전통주다.

♣ 뜨거운 계절의 기세를 이기다 ‘과하주’

맹렬한 여름 더위는 금세 음식을 상하게 한다. 술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곡물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키는 곡주의 경우 맛과 향은 좋지만 알코올 도수가 낮아 상온에서 쉽게 변질한다.

이에 비해 소주와 같은 증류주는 오래 두고 마실 수 있지만 맛이 강하고 취하기 쉬워 자주 즐기기에 부담스럽다. 곡주의 맛과 증류주의 저장성을 모두 취할 방법은 없을까? 우리 조상들은 지혜를 발휘해 발효주와 소주의 단점을 극복한 술을 빚어냈다.

뜨거운 계절의 기세를 이기다 ‘과하주’

그 이름은 ‘여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술’을 뜻하는 과하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혼양주류’ 양조기술이 담겼다. 탁주와 청주의 발효 중간에 도수가 높은 증류식 소주를 넣어 재차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치면 그윽한 빛깔과 부드러운 맛, 뛰어난 향을 자랑하는 과하주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술 빚기는 누룩과 곡식을 주원료로 술 빚기가 이뤄지는 동양권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방법이다. 과하주는 조선 초기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여러 지방에서 빚었는데, 그중에서 경북 김천과 전북 전주 과하주가 유명하다.

♣ 그윽한 꽃 향과 약용을 취하다 ‘국화주’

국화는 전통주에 향을 더하는 대표적인 재료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국화의 그윽한 향을 술에 드리워 가을의 계절감을 누리는 풍류를 즐겼다.

국화주는 쌀과 누룩, 물을 섞어 빚은 곡주에 국화 향을 넣는 화향입주법의 국화주를 근간으로 하며, 술을 빚을 때 생화를 함께 넣어서 빚는 국화주, 다양한 약재를 달인 물을 함께 넣어 향기와 약효를 높인 국화주, 그리고 국화는 넣지 않으면서도 국화주와 같은 술 빛깔을 띠는 황금주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윽한 꽃 향과 약용을 취하다 ‘국화주’

국화주는 대표적인 절기주로도 꼽혔는데, 이는 중양절과 관계가 깊다. 과거에는 음력 9월 9월인 중양절이 큰 명절 중 하나였다. 이날은 연중 기운이 가장 왕성한 날이어서 높은 곳에 올라 태양을 가까이하면 한 해를 건강하게 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중양절 산에 오르는 풍습이 있었고, 이때 야산에 핀 감국(甘菊)을 따서 차나 술에 띄워 마시는 것이 익숙한 가을 풍경이었다. 국화주는 향기도 으뜸이거니와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지며, 청혈해독과 말초 혈관 확장의 효능이 있어 예부터 약용주로 사랑받아왔다.

♣ 겨울꽃의 강인한 생명력을 탐하다 ‘매화주’

매화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뚫고 피어나는 꽃으로 그 향기가 청아하고 기품이 있어 술은 물론 차의 재료로도 널리 애용되어왔다. 굳은 의지와 절개를 상징하기에 선비들에게 관상의 대상이 되는 대표 꽃이기도 했는데, 이에 선비들은 매화가 피는 때를 기다려 술자리를 갖기도 했을 터다.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상대와 술잔을 주고 받다가 하얀 매화 꽃잎을 따서 술잔에 띄워 놓으면, 술의 알코올이 증발하면서 매화 향기를 품게 돼 술맛은 더욱 향기로워진다.

겨울꽃의 강인한 생명력을 탐하다 ‘매화주’

매화는 남부지방에서는 3월 초, 중부지방에서는 3월 말쯤 꽃을 얻을 수 있는데, 꽃을 채취하고 가능한 한 빨리 술을 빚는 것이 좋다.

생 꽃잎은 술을 빚을 때 함께 섞어 빚고 마른 꽃잎은 베주머니에 담아 술이 다 되면 안쪽에 넣거나 술 위에 띄우고 뚜껑을 덮어 하루 이틀 뒤에 열면 매화향이 그윽하게 풍겨 나온다. 매화에도 매실의 구연산과 사과산을 함유하고 있어, 피로회복과 소화불량 등에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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