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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3. 국/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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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설렁탕

쇠머리·쇠족·쇠고기·뼈·내장 등을 모두 함께 넣고 장시간 백숙으로 푹 고아서 만든 곰국으로 국물이 뽀얗고 맛이 농후하다 하여 설농탕(雪濃湯)이라고 한다.

설렁탕의 유래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먼저 설렁탕은 조선시대에 왕이 선농단으로 거동하여 생쌀과 생기장, 소·돼지를 놓고 큰 제전을 올린다. 그런 다음에 친경(親耕 : 임금이 친히 전답을 가는 의식)을 하던 행사를 한다.

행사가 끝나면 미리 준비해둔 가마솥에 쌀과 기장으로 밥을 하고, 소로는 국을 끓여 구경꾼 가운데 60세 이상의 노인을 불러 먹였던 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조선요리학 朝鮮料理學』에서도 세종이 선농단에서 친경을 할 때에 갑자기 심한 비가 내려서 촌보를 옮기지 못할 형편이 되었다. 그리고 배고픔을 못 견디어 친경 때에 쓰던 소를 잡아 맹물에 넣고 끓여서 먹었다. 이것이 설렁탕이 되었다고 그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또 하나의 설은 몽고의 고기를 맹물에 끓이는 조리법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몽어유해 蒙語類解』에는 고기 삶은 물인 공탕(空湯)을 몽고어로는 슈루라고 한다고 되어 있고, 『방언집석 方言輯釋』에서는 공탕을 한나라에서는 콩탕, 청나라에서는 실러, 몽고에서는 슐루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실러·슐루가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설렁탕 맛있는 한식이야기

설렁탕은 서울의 명물음식으로서 일찍부터 대중음식으로 시판되었다. 설렁탕집에는 항상 2, 3개의 큰 무쇠솥에 설렁탕이 끓고 있었다. 그 옆에는 설렁탕을 골 때에 넣었던 여러 부위의 편육을 부위별로 썰어서 채반에 담아놓았다.

손님이 설렁탕을 청하면 뚝배기에 밥을 담고 뜨거운 국물로 토렴하여 밥을 데운다. 그 다음에 국수 한 사리를 얹고 채반에 놓여 있는 고기를 손님의 요구에 따라 집어넣고 뜨끈뜨끈한 국물을 듬뿍 부어 내주었다. 그러면 곱게 썬 파와 소금·고춧가루·후춧가루 등을 식성에 따라 넣어 먹었다. 지금도 설렁탕은 대중음식으로 애용되고 있다.

괄세못할 京城설넝탕 『 牛耳生 』 …… 별건곤 1929 12.1일자에는 『珍品·名品·天下名食 八道名食物禮讚, 진품명품천하명식 팔도명식물례찬』 中 에서

말만 들어도 위선 구수-한 냄새가 코로 물신물신 들어오고 터분한 속이 확 풀니는 것갓다. 멋을 몰으는 사람들은 설넝탕을 누린 냄새가 나느니 쇠똥냄새가 나느니 집이 더러우니 그릇이 不快하니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65〉 설넝탕에 맛을 드리지 못한 가련한 친구다. 만일 설넝탕에서 소위 누린 냄새라는 것을 빼이고 툭백이대신으로 鍮器나 사器에 담어서 파양념대신 달은 양념을 넛코 소곰과 거쳥 고추가루 대신 가는 고추가루와 진간장을 쳐서 시험삼어 한번 먹어보아라. 우리가 보통 맛보는 설넝탕의 맛은 파리죡통만큼도 못 어더볼 것이다.

그져 덥혀노코 설넝탕의 맛은 그 누린 냄새--실상 구수-한 냄새와 툭벡이와 소곰을 갖추어야만 제맛이 난다. 설넝탕을 일반 하층계급에서 만히 먹는 것은 사실이나 제아모리 졈잔을 뻬는 친고라도 죠선사람으로서는 서울에 사는이상 설넝탕의 설녕설녕한 맛을 괄세하지 못한다. 갑시 헐코 배가 불으고 보가 되고 술속이 풀니고 사먹기가 簡便하고 貴賤 누구할 것 업시 두로 입에 맛고...

이외에 더 업허 먹을 것이 또 어데 잇으랴. 설넝탕은 물론 四時에 다 먹지만 겨울에 겨울에도 밤--자졍이 지난 뒤에 부르르 덜니는 억개를 웅숭커리고 설넝탕ㅅ집을 차져가면 위선 짐이 물신물신 나오는 드수한 기운과 구수한 냄새가 먼져 회를 동하게 한다. 그것이 달은 음식집이라면 제 소위 졈잔하다는 사람은 압뒤를 좀 살펴보느라고 머뭇거리기도 하겟지만 설넝탕집에 들어가는 사람은 절대로 解放的이다. 그대로 척 들어서서 『밥한그릇쥬』하고는 목노 걸상에 걸어안즈면 一分이 다 못되여 기름ㅅ기가 둥둥 뜬 툭벡이 하나와 깍둑이 졉시가 압해 노여진다. 파양념과 고추가루를 듭신 만히 쳐서 소곰으로 간을 맛츄어가지고 훌훌 국물을 마셔가며 먹는 맛이란 도모지 무엇이라고 形言할 수가 업스며 무엇에다 비할 수가 업다. 그야말로 고량진미를 가득히 늘어노코도 입맛이 업서 졋갈로 끼지럭 끼지럭하는 친고도 설넝탕만은 그러케 괄세하지 못한다.

이만하면 서울의 명물이 될 수가 잇스며 따러서 朝鮮의 명물이 될 수가 잇다. 이것은 죰 군말이지만 日本사람으로 漫畵를 그리는 岡本인가하는 친구가 朝鮮설넝탕을 漫畵로 표현하엿는데 그것이 奇想天外의 것이다. 통으로 소 한마리를 솟해 너코 삼는 光景이 그것이다. 이것을 그 친구의 惡意업는 작난이라고 보면 그만이겟지만 만일 죠곰이라도 못된 心術로 그리한 것이라면 대번 붓잡어다가 설넝탕의 맛을 알도록 얼마동안 敎練할 필요도 업지가 안타--필경은 설넝탕의 노예가 되여 朝鮮으로 이주하는 꼴을 죰 보게.

설렁탕에 관한 설명을 손정규의 『조선요리』(1940)에서 살펴보면 “설렁탕은 소고기의 잡육. 내장 등 소의 거의 모든 부분을 뼈가 붙어있는 그대로 넣고 하루쯤 곤 것인데, 서울 지방의 일품 요리로서 값싸고 자양분이 많다.”고 하였다.

설렁탕과 곰탕을 확연히 구분짓기는 곤란하지만 설렁탕은 본래 곰탕보다 뼈가 많이 들어 있어서 오랜 시간동안 걸쭉하게 끓이므로 골수가 녹아 국물이 뽀얗게 된다. 여기에 밥을 말아서 각자의 식성에 따라 소금과 고춧가루, 파를 넣어 먹는다.

개화기 서울 장안에는 한때 이름난 설렁탕집이 여러 곳 있었는데 전통적인 설렁탕집에서는 소를 한 마리 잡으면 소가죽과 오물을 뺀 거의 모든 부위, 즉 소뼈다귀· 내장· 소머리까지 큰 가마솥에 함께 넣고 새벽부터 다음날 밤 한 시까지 끓였다.

따라서 자정 무렵부터 밤 한 시까지는 국물이 바짝 졸은 제대로 된 진국이었기 때문에 이때쯤이면 단골손님들이 모여들었다 한다.

요즘 음식점에서 급하게 끓여내는 설렁탕과는 음식 때깔이며 맛의 차원이 달랐다. 『조선요리학(1940년)』에는 “설렁탕은 고기의 잡육, 내장 등 소의 거의 모든 부분을 뼈가 붙어있는 그대로 넣고 하루쯤 고아낸 것인데 서울 지방의 일품요리로서 값싸고 자양분이 많다”고 전하고 있다.

설렁탕의 기원이나 그 이름의 유래는 다음의 선농단(先農檀)에서의 친경행사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이래 농사신인 신농(神農)과 후직(后稷)을 모시는 선농제를 지내왔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때부터 왕은 세자를 비롯하여 정승판서 등 문부백관을 거느리고 생쌀·생기장과 소· 돼지를 통째로 잡아 제단에 희생의 제물로 올리고 제사를 지낸다. 성종실록에는 성종 6년에 원산대군과 재상 신숙주 등을 대동하고 선농단에 제사를 지낸 뒤, 백성을 위로해 함께 음복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신하가 임금에게 “살찐 희생의 소를 탕으로 해 널리 펴시니 사물이 성하게 일고 만복을 고루 펼치나이다."라는 시를 바쳤다고 한다. 그리고 왕은 바로 옆에 있는 적전(籍田)에 들어가 소를 끌며 손수 밭을 갈아엎는 친경(親耕)을 함으로써 천지신명께 풍년을 기원함과 동시에 백성들에게 농사의 본을 보인다.

친경이란 왕이 몸소 밭을 가는 일을 말한다. 왕 근처에는 일반 백성이 가까이 갈 수 없었지만 이날만큼은 왕이 쟁기를 세 번 민 다음 정승판서들도 쟁기를 밀어 농사의 시범을 보이는 모습을 근방의 농부들이 구경하도록 허락했던 것이다. 왕이 적전에서 친히 밭을 갈 때는 농부들 중에서 나이가 많고 복 있는 사람을 뽑아 동참하게 하였다.

선농단(先農檀) 선농제 맛있는 한식이야기
▲ 선농단(先農檀) 선농제

이 행사가 끝나면 소를 잡아 끓였는데 신에게 바친 신성한 희생 제물이므로 어느 한 군데도 버리지 말고 통째로 끓여야 한다.

이렇게 끓여낸 쇠고기 국을 왕을 비롯하여 선농단에 참례한 문무백관과 인근 마을 구경꾼 중 환갑이 지난 노인, 심부름하던 노비에 이르기까지 나누어 먹었다. 많은 사람에게 제사고기를 골고루 나누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쇠고기 국에 밥을 말아 많은 사람이 먹도록 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야사도 전해진다. 세종대왕이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친히 논을 경작하는 본을 보일 때였다. 갑자기 심한 비바람이 몰아쳐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임금의 배고픔을 달래느라 백성들이 농사짓던 소를 잡아 맹물을 넣고 끓였는데 이것이 설렁탕이 됐다고 한다.

이렇게 왕이 나서서 백성들에게 솔선수범하면서 다 같이 만들어 먹은 ‘소 한 마리’ 설렁탕은 선농제가 없어진 후에는 음식점에서 사골, 소머리, 내장, 도가니 등속과 잡 육을 끓이고 족은 쪄서 팔았는데 그 뒤 민간 사이에 퍼져 나가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하루 넘게 무쇠 솥에서 펄펄 끓여낸 설렁탕은 뽀얀 국물에 새콤한 깍두기나 방금 버무린 겉절이 하나면 아무리 매일 같이 일에 치이고 나른한 춘곤증에 입맛까지 없어도 속이 든든해지는 행복함을 선사하는 고마운 음식이다.

♣ 보약같은 뜨끈함! 서울 최고의 설렁탕 TOP5 | 생방송 투데이(Live Today) | SB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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