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훨씬 이전부터 생산해 1950년대 명맥이 끊겨버린 유서 깊은 전통 소금.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천일염 제조법이 들어왔고,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염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자연 그대로의 개펄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1998년 태안문화원에서 조금 때 물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태안의 ‘낭금 갯벌’을 발굴했고, 오랜 노력 끝에 3개년 복원 프로젝트로 태안 자염을 원형 그대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 WHAT IS IT?
소금의 주원료는 암염이나 해수로, 우리나라에선 대개 바닷물을 활용해 자염과 천일염을 생산해왔다. 그중 자염은 바닷물의 염도를 개펄에서 최대치로 끌어올린 뒤 함수(鹹水)를 모아 끓여 석출하는 것으로, 불을 쓰는 가공의 특성을 살려 화염(火鹽), 전오염(煎熬鹽)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공정의 핵심은 조금(조수가 가장 낮은 시기) 때 ‘진흙 개펄’이 아닌 ‘모래 개펄’ 흙을 개펄 위에서 말려 사용하는 것. 충분히 건조시켜야 소금이 축적되고, 육지에서 말리면 중금속이 함께 추출될 수 있다.
자염의 기원을 정확히 찾을 수는 없지만, 인조 16년에 편찬된 탁지지(度支志, 조선 호조의 옛 사례를 모은 책)를 비롯해 조선 초기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학계에선 고려시대나 그 이전부터 생산된 전통 소금으로 추정한다.
♣ WHERE TO MAKE
예로부터 충청남도 태안은 국내 4대 소금 생산지 중 하나로, 봄과 가을 즉 볕이 좋은 계절이면 소금가마(염벗)에서 피어오르는 뽀얀 연기와 간장 달이는 듯한 냄새로 늘 풍요로웠다.
태안 소금의 명성은 자염에서 시작됐는데, 일제강점기 일본 정부가 부족한 전쟁 물자인 소금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대만의 천일염 제조법을 들여오면서 자염의 명맥은 서서히 끊겨버렸다.
이후 1960~70년대 대규모 간척 사업이 진행되며 태안을 비롯해 전국의 개펄은 염전(천일염)으로 바뀌었고, 당시 부실 공사로 제방이 터진 태안군 근흥면의 ‘낭금갯벌’만 개펄 자체로 남았다.
1998년 사라져가던 ‘태안 자염’을 태안문화원이 나서 3개년 복원 프로젝트로 낭금갯벌에서 재현했고, 2002년부터 공식적인 생산을 시작해 2013년 남양주에서 열린 ‘슬로푸드 국제 대회’에서 <맛의 방주>에 등재시켰다.
♣ HOW TO EAT
천일염·가공염과 쓰임새는 같지만 맛의 캐릭터가 남다른 것이 특징. 개펄 흙을 쓰기 때문에 그곳에서 생활하며 먹고 먹히는 어패류와 갑각류 등의 유기물질이 스며 있어, 짠맛 이상으로 다채로운 풍미를 낸다.
특히 고운 입자에 자극적인 짠맛이 덜해 부드러운 여운을 남기며, 소금 특유의 쓴맛 없이 살짝 단맛이 감도는 끝맛을 선보인다.
2003년 충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천일염으로 무와 배추를 절여 김치를 담갔을 땐 싱싱한 식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는데, 자염의 경우 아삭한 식감은 물론 젖산균의 증식을 도와 두드러진 감칠맛을 드러냈다. 여기에 군덕내 현상이 적어 발효가 충분히 진행됐음에도 나쁜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 GOOD FOR HEALTH
개펄의 영양을 오롯이 담아 식품영양학적으로 가치가 높다. 특히 염분과 같이 흡착된 유기물질은 분해되면서 유리아미노산으로 변하는데, 구수한 감칠맛을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천일염(1000mg/kg)보다 10배 이상 높은 자염(13000mg/kg)의 칼슘 함량. 풍부한 칼슘이 김치를 담그거나 채소를 무칠 때 식물 세포 속 펙틴질과 결합, 조직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재료의 식감을 원형 그대로 지켜준다.
즉 맛있는 식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 한편 상대적으로 낮은 나트륨 함량은 자연스러운 짠맛을 낼 뿐 아니라 체내에 축적되지 않고 유익하게 쓰인다.
* 영농법인 농부와 소금가마 (태안자염) *
A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마금리 1331번지
T 041-672-3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