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밥 먹었어?”로 안부를 묻고, 인사를 전합니다.
밥이란 먹는 것 전체를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쌀을 의미하기도 하죠.
❞식사와 쌀을 같은 말로 부를 만큼 쌀은 우리 식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습니다. 한국인에게 있어 쌀은 늘 집에 있어야 하는 생필품 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습니다.
저도 얼마 전 집에서 쓸 쌀을 사기 위해 인터넷에 ‘쌀’이라고 검색해보았다가 추청, 신동진, 백진주, 삼광 등 수많은 이름들이 쓰인 화면을 바라보고서야 제가 쌀에 대해 생각보다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한국에서 쌀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시대 때부터라고 알려져 있지만, 재래벼는 오늘날 우리가 먹는 벼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한국인들은 병충해에 강한 쌀을 생산하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수많은 품종의 쌀들을 개발해왔습니다.
하지만 쌀 품종 개량은 최근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더 건강하고 맛있는 쌀을 만들기 위해 곳곳에서 신품종의 쌀들이 등장하고 있죠. 각 쌀들의 특징은 무엇인지, 어떤 맛이 나는지 궁금해하다 보니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맛있는 밥은 어떤 쌀로 지어지는지 자연스레 궁금해졌습니다.
온지음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 1스타
온지음에서는 세 가지 품종의 쌀을 사용해 밥을 짓습니다. 미호와 십리향, 백옥향이 그 주인공입니다. "식감과 향이라는 두 가지 부분에 초점을 맞춰 쌀을 골랐습니다."
호는 찹쌀과 멥쌀의 중간 성질을 지닌 품종의 쌀로 전라남도 함평에서 자랍니다. 십리향은 고소한 향에 집중한 품종으로 최근에 새로 개발되었고, 백옥향은 쌀알이 굵고 윤기가 나는 것이 특징인 쌀입니다.
이 중에서도 미호와 십리향은 소식재배를 통해 생산되는데, 일반 농법보다 적은 양의 모를 심어 쌀 품종이 가진 특징을 최대로 끌어올립니다. "소식재배의 가장 큰 장점은 밥 맛이 좋아진다는 점입니다. 윤기와 밥 알갱이의 힘이 달라지거든요."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 가장 신경쓰는 점은 바로 쌀 씻기입니다. 온지음에서는 채반에 쌀을 놓고 맑은 물이 나올 때 까지 몇 번이고 쌀의 전분기를 씻어냅니다. "쌀이 잘 씻어져야지만 밥을 지었을 때 쌀알 가장자리에 끈적임이 없어서 국과 반찬에 곁들였을 때 잘 어울립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늘 온지음의 비법입니다.
무니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 1스타
무니에서는 한국의 토착품종인 삼광을 사용합니다. 삼광은 신동진 쌀 다음으로 많이 재배되는 재래 품종의 쌀로 밥 맛이 좋기로 유명한 품종인데, 무니에서는 그 중에서도 진주에서 생산된 삼광을 직접 받아 사용합니다. "삼광은 솥밥에 특화된 품종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로 저희 음식과 잘 어울리는 쌀입니다.
맛도 좋지만 쌀이 퍼지지 않고 쌀알 자체의 탄력이 좋거든요." 특히 무니에서 사용하는 쌀의 생산자가 사용하는 특별한 도정기술 덕분에 대부분의 쌀이 마르는 8월이 넘어가도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 때문에 레스토랑에서 사용하기에도 적합합니다.
김동욱 셰프는 "밥은 그 자체로도 좋지만, 잘 어울리는 재료를 더했을 때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죠" 라며 제철의 식재료를 더하는 것을 추천했습니다. 봄에는 죽순이나 봄나물을, 가을에는 연어알, 겨울에는 대게 등 여러가지 재료들이 쌀과 어우러졌을 때, 밥은 또 새로운 모양으로 변합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재료에 따라 물의 양을 달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수분기가 많은 식재료를 넣으면 물의 양을 줄이고, 수분기가 적은 식재료를 넣으면 물의 양을 늘리는 식으로 물의 양을 조절해야 일정한 식감의 밥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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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수의 코스에는 밥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연한 흰색 김이 일렁이는 작은 무쇠솥 속에는 계절에 맞는 재료와 함께 지어진 밥이 들어있죠. 모수에서는 백세미, 조선향미, 수향미 등 3가지 쌀을 블렌딩해 사용하는데 쌀의 종류는 계절이나 코스에 맞게 조금씩 달라집니다.
"우리에게는 쌀이 흔하고 일상적인 것이지만 외국 손님들에게는 밥이야말로 한식을 이해하는 첫 번째 관문이 되기 때문에, 맛이나 향 등 에 특징이 있는 쌀을 사용해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식감 또한 중요한데, 쌀알을 씹었을 때 식감이 부드러우면서도 너무 무르지는 않아야 합니다.
모수의 안성재 셰프가 이야기하는 맛있는 밥의 비법은 '시즈닝' 입니다. "한국에서는 밥을 지을 때 물 이외에 다른 것을 넣지 않는 편이지만 사실 다른 재료들의 맛과 향이 더해지면 더욱 맛있는 밥을 완성할 수 있어요."
브로콜리를 구운 후 올려서 밥을 지으면 구워진 은은한 훈연 향이 밥에 배어들어 밥 자체의 맛이 좋아지고, 보리차나 옥수수차를 우려낸 물로 밥을 지으면 고소한 향이 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밥은 고기와 먹을때 더욱 잘 어울리죠.
"원하는 밥의 맛이나 방향이 있을때는 밥에 어떤 재료를, 어떻게 더해야 그 맛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