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책을 세 권이나 냈지만, 나는 음식평론가란 직함으로 불리길 꺼린다. 음식문화를 내 직업의 영역으로 삼고 있지 않으며, 당연히 그 영역에 대해 내가 하는 말이, 전문가의 권위 있는 이야기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런 비전문가에게 주간지나 일간지에서 덜컥 고정지면을 맡긴 건, 연구와 평론을 해온 버릇으로 특정 대상에 대해 논리적으로 조근조근 설명하길 좋아해서였을 것이다. 하나 더 꼽으라면, 음식에 대한 집착이 다소 유별나 보였기 때문일 수 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20대 중반부터 김장을 하고, 30대 초반부터는 장을 담그고, 종종 생멸치나 황석어 싱싱한 게 보이면 젓갈을 담그는 것, 외식보다 집 밥을 즐기면서도 집에 전기밥솥이 없으며, 마트에서 ‘1+1’ 상품은 휙 지나가면서 가공식품 포장지 뒷면에 깨알처럼 인쇄된 원재료와 식품첨가물 목록을 꼼꼼히 읽는 것, 이런 것들 말이다.
먹는 것에 대한 남다른 집착이 있는 사람인 건 어느 정도 맞다. 이런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적인 식재료다. 쌀과 소금, 장, 젓갈, 그리고 싱싱한 야채 같은 것들 말이다. 그중 핵심 중의 핵심인 식재료를 꼽으라면 쌀과 소금을 꼽아야 할 것이다.
사실 곡물과 소금은 어떤 문화권의 음식에서든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인간의 몸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곡물은 열량을 채우는 탄수화물을 공급하며, 소금은 체액을 정상화하는 기본적 식품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라면 물을 꼽아야 할 것이다. 곡물과 소금, 물, 이 세 가지만 있어도 사람은 상당 기간 생명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
♣ 소금에 대한 논쟁,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맛
소금을 이야기하는 건 아직도 좀 조심스럽다. 천일염 생산자와 유명 음식평론가 사이에서 꽤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대립된 전문가들의 의견에 비전문가인 내가 시시비비를 논할 능력은 없고, 그저 경험과 상식에서 몇 마디를 얹을 수 있을 뿐이다.
천일염이 그리 깨끗하지 못하므로 정제염(천일염을 정제하여 소금 성분만 추출한 소금으로, 설탕처럼 입자가 작고 곱다)을 먹는 게 옳다는 주장에 대해, 나는 절반은 수긍하지만 절반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우리나라 연안의 바닷물이 그리 깨끗지 않은데, 그 물을 말려 만든 천일염 역시 그리 깨끗하지 않다는 주장을 부정하긴 쉽지 않다. 실제로 천일염을 물에 녹이면 적잖은 불순물들이 있으니 말이다. 미네랄 때문에 천일염을 고집한다면, 그냥 다른 식품으로 미네랄을 보충하는 게 낫다는 말도 옳다.
문제는 불순물이 제거된 정제염으로 음식을 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엄청나게 짠, 오로지 짠맛만 있는 정제염으로 음식을 해보면, 음식의 간을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음식을 할 때 나는 소금보다는 간장을 많이 쓰는 사람인데도, 어쩔 수 없이 소금으로만 간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곰탕, 콩나물국, 콩국수, 계란찜, 조개탕 같은 맑은 맛의 음식들이다. 간장보다는 소금으로 깔끔하게 맛을 내야 한다. 그런데 정제염을 쓰면 천일염을 쓸 때에 비해 짠맛만 동동 뜬다고나 할까. 소금을 넣음으로써 재료의 여러 맛이 어우러지는 효과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간이 맞지 않는 것 같아 소금을 자꾸 더 넣게 되거나, 화학조미료의 강한 감칠맛으로 맛을 어우러지게 하고 싶어진다. 나는 영양소 때문이 아니라 맛 때문에 천일염을 포기하기 힘들다.
♣ 토판염과 장판염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깨끗하고 좋은 천일염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토판염 土版鹽’이다. 토판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동안 먹던 소금이 ‘장판염 壯版鹽’임을 깨닫게 됐다.
20세기 중반에 비닐이 대량생산되면서 염전에서도 갯벌 위에 검은 비닐을 깔고 그 위에서 소금을 만드는 방식이 일반화됐다. 염전에서 소금을 긁을 때 밑바닥 흙이 뒤섞이지 않으니 깨끗한 소금을 생산하기가 쉬워졌다.
그런데 문제는 장판 밑의 흙은 공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천일염 문제를 제기한 평론가가 지적한 염전의 악취는, 장판 밑에서 공기가 통하지 않아 생기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펄펄 끓는 한여름에 검은 비닐에서 유해 물질이 나오지 않을지, 여러 해 쓴 비닐이 부스러져 섞이지나 않을지, 당연히 의심스럽다.
십수 년 전 몇몇 염전에서 과감히 비닐을 걷고 흙판에서 소금을 만드는 옛날 방식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토판염이 부활한 것이다. 신안에 가서 맛을 본 토판염은 확실히 장판염에 비해 오묘하게 맛있었다. 음식 맛을 내기가 더 쉬워진 것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표면의 소금만 살짝 걷어내야 하니 숙련된 노동력이 필요하고 품도 많이 든다. 그래도 일단 입맛을 올려놓으니 후퇴하기 쉽지 않다. 김치 절이는 데엔 일반 장판염을 쓴다 해도, 소비량이 그리 많지 않은 조리용 소금은 토판염을 사서 쓰는 수밖에. 까다로운 입맛이 ‘웬수’다.
♣ 감칠맛과 독특한 풍미를 더한 조미료, 간장
내가 과감하게 소금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어차피 소비하는 양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음식할 때 소금보다는 간장을 더 많이 쓰는 편이다. 앞서 나열한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 음식은 간장으로 간을 한다.
겨우 서른밖에 안 되는 나이에, 얼마든지 갖다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 손으로 담그겠다고 우긴 것도, 점점 늙어가는 엄마가 언제까지 내게 간장을 대줄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엄마도 나도,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엄마로부터 ‘간장 독립 선언’을 해야겠다 싶었다.
여기에서 ‘간장’이라 함은 일반 마트에서 파는 공장제 간장이 아닌 재래식 메주로 만든 ‘조선간장’, ‘집간장’, ‘국간장’을 뜻한다. (공장제 간장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간장이 들어와서 정착한 것이므로 오랫동안 ‘왜간장’이라 불렸고, 집에서 메주로 담그는 재래식 간장은 ‘조선간장’이라고 불렀다.)
불고기나 생선조림처럼 공장제 간장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온갖 국과 나물에는 소금을 쓰지 않고 조선간장을 넣는다. 어찌 보면 짠맛을 내기 위한 조미료로는 소금보다 더 많이 쓰는 재료가 간장이다.
소금이 오로지 짠맛만 내기 위한 거라면, 간장은 콩 단백질을 발효할 때 나온 감칠맛과 독특한 풍미를 더한 조미료다. 감칠맛으로서는 해산물을 소금에 넣어 발효시킨 젓갈이 더 윗길이겠지만, 아무래도 젓갈은 ‘어魚 간장’처럼 깔끔하게 만든다 해도 비린 맛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바다 냄새를 풍기는 미역국이나 북엇국에는 액젓으로 그럭저럭 대체한다 해도, 쇠고기뭇국이나 온갖 나물에까지 액젓을 쓰기는 힘들다.
♣ 미묘하게 다양한 맛, 재래식 간장
서른이 넘자마자 음력 정월 어느 날, 엄마한테 메주 한 덩이를 빼앗다시피 가져다 아주 작은 항아리에다 소금물을 붓고 메주를 띄웠다. 4월 초에 메주를 건져 간장을 달이고, 건진 메주는 다른 항아리에 으깨 넣어 두 겨울을 묵혔다.
그게 내가 만든 첫 간장과 된장이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메주만 있다면, 정말 쉽고 간단한 것이 간장과 된장 만들기임을 알았다.
벌써 30년 전 일이고, 이제는 그때와 달리 조선간장을 담가 파는 소규모 업체들이 전국에 수없이 많다. 대형 마트가 아닌 생협이나 인터넷 등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공장제 간장과 달리 이런 재래식 간장은 업체마다 다 맛이 다르다는 거다. 맛있게 담그는 노하우 역시 조금씩 다르다. 소금의 양, 발효시키는 장소와 기간 등, 각각의 소규모 업체의 맛을 책임지는 ‘엄마’들의 노하우와 손맛이 그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런 분들을 다 모아놓아 토론을 시키면 옥신각신하겠지만, 꼭 어느 것 하나가 옳다고 할 수 없다. 표준화되지 않은 ‘울 엄마표 장’이 전국에 수없이 많다는 건 문화에서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 쌀이 부드러우니 구태여 압력솥을 쓸 필요가 없다
어떤 쌀을 사 먹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런데 내 대답은 의외로 평범하다. 그냥 귀농한 지인이 농사지은 유기농 현미를 사먹는다. 그 친구가 없었다 해도, 그냥 생협에서 유기농 현미를 선택했을 것이다. 내가 짓는 밥의 독특함은 쌀의 선택이 아닌 그 외의 부분에서 좌우된다.
하나는 도정, 다른 하나는 솥이다. 나는 현미를 사다가 집에서 도정한다. 소형 가정용 도정기를 쓴 지 20년쯤 됐다. 밥 지을 분량만큼 조금씩 도정해서 바로 조리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늦여름에도 햅쌀이라 다를 바 없이 밥의 향취가 생생하다.
이런 극성스러운 짓을 하게 된 건, 현미와 백미 사이에서 오락가락한 결과였다. 남편은 건강을 이유로 현미를 고집했는데, 위장이 약한 나는 현미밥이 좀 부담스러웠다. 오래 불려서 압력솥에 짓는 방식이어도 거친 겉껍질이 거슬려서 얼마간 현미를 먹다가도 자꾸 백미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러다 가정용 도정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구입하게 됐다. 도정기가 있으니 1분도미부터 9분도미까지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쌀눈이 살아있는 건강한 쌀이라고 파는 제품이 대개 5분도미인데, 그냥 겉껍질만 살짝 벗겨낸 2, 3분미 정도만으로도 현미와는 비교할 수 없게 확연히 부드러운 밥이 지어졌다. 영양 많은 쌀눈과 현미의 구수한 향취는 상당히 많이 남아있으니, 현미와 백미의 장점을 다 취하는 셈이다.
쌀이 부드러우니 구태여 압력솥을 쓸 필요가 없다. 압력솥에서는 찰기가 강해지는데, 찰진 정도가 좀 과해 밥이 질겨진다. 그렇다고 냄비 밥이나 다름없는 일반 전기밥솥에 밥을 지으면 지나치게 푸슬거린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무쇠솥이다.
온갖 전기밥솥들이 다 ‘가마솥 밥맛’을 내세우는 건 괜히 그런 게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묵직한 솥뚜껑의 무게가 만들어내는 적절한 압력이다.
냄비처럼 가볍지 않고 압력솥처럼 과하지 않은 적절한 찰기가 생긴다. 어느 이벤트 장터에서 산 3,4인분짜리 앙증맞은 무쇠솥은, 내 부엌에서 가장 중요한 조리기구다. 밥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