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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한식 디저트의 창발적 정신

한식 디저트의 창발적 정신

♣ 디저트는 감정의 값이다

디저트는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중에 아름다운 것이며,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에 좋은 것이고, 유쾌한 것과 불쾌한 것 중에 유쾌한 것이다. 삶에서 발견하는 위안이다. 루브르미술관에 전시된 ‘모나리자’를 보면서도 이런 위안을 느낄 수 있겠지만 디저트숍에 걸어 들어가 한입 먹는 디저트가 더욱 강렬하다.

디저트 한입을 먹는 순간은 직접 참여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 주니 손님이 디저트에 지불하는 것은 감정값이다. 따라서 파티시에는 예술가에 비견된다. 살면서 가장 좋은 감정과 순간의 느낌을 살려 완전한 맛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디저트가 탄생한다.

한식 디저트

그들은 예술가의 훈련처럼 동시대 사람들과의 친밀함을 계발하고 맛에 대한 고유 수용 감각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디저트가 먹는 이의 몸을 통하여 흐르는 것을 관찰하여 접촉하는 순간 유쾌하고 무덤덤한 가운데 여운이 길게 남도록 타임라인을 구성해야 한다.

위대한 파티시에들은 자신의 디저트에 불을 붙이지는 않는다. 디저트의 오감의 수용 가능치를 극대화 함으로써 쾌락을 유발하도록 조절한다. 그들은 디저트를 설계할 때 인간의 오감 중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잡아두기에 짧은 시간 안에 집중도 높은 기쁨을 전달해낸다.

♣ 공감과 공유의 언어

프랑스 파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는 아름다운 파티세리가 한 몫 한다. 서울의 도시 풍경에도 멋진 디저트 전문점이 하나 둘 터를 잡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한식 디저트의 부활이다. 한식 디저트 셰프들은 ‘공감’ 이라는 아주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며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단순히 유럽식 디저트 문화를 이식하여 괴리와 단절을 부축이기 보다 한식 디저트의 강점을 충분히 이해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살리고 손님의 존재감조차 빛나게 했다. 그들 덕분에 10대와 20대의 전유물이던 디저트 문화가 5~60대 혹은 70대 이상으로 폭이 넓어졌다.

설봄(Seolbom)의 구름떡과 흑임자인절미
▲ 설봄(Seolbom)의 구름떡과 흑임자인절미

세대를 아우르는 공통된 언어를 찾았기 때문이다. 세대를 이어 내려온 맛에는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을 만큼 본능적이었다. 중장년층만 좋아할 것이라는 한식 디저트가 10대와 20대를 더욱 열광시켰다.

한식 디저트를 즐긴다는 것은 달콤한 한 조각에 과거의 행복과 만나는 것이었다. 수 백 년, 수 십 년, 혹은 며칠 전이 될 수도 있다. 놀랍게도 행복의 원형에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서 많이 변화하거나 진화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디저트를 먹는 짧은 시간에 이 모든 것을 경험하게 된다.

한식 디저트라 해서 유럽식 디저트와 등 돌린 세계라 여기면 오산이다. 프랑스의 보르도 지역의 전통 과자인 까눌레와 개성 지방 귀족이 즐기던 전통 병품(餠品) ‘개성주악’을 보면 놀랍도록 비슷하다.

개성주악은 찹쌀 반죽을 막걸리로 발효시켜 동그랗게 빚어낸 후 숙성하여 기름에 튀겨낸 과자이다. 집청하여 (한과를 만들 때 바탕에 꿀, 엿 혹은 조청을 바르는 것, Syruping) 달콤한 맛을 코팅한다. 한입 깨어 무는 순간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까눌레 반죽 숙성에 쓰이는 럼과 막걸리의 술향이 오버랩되며, 밀납 코팅과 집청의 바삭한 달콤함이 공통적이다. 속이 떡 지지 않고 기공이 있어 폭신한 식감이 들어야 이 둘 모두 잘 만들어 졌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서로 닮아있다.

프랑스 클래식 까눌레 by 로브니 (Laubenuit)
▲ 프랑스 클래식 까눌레 by 로브니 (Laubenuit)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술향이 오버랩되며, 바삭한 달콤함,기공이 있어 폭신한 식감도 서로 닮아있다.”

개성주악 by 김씨부인(Kimssibooin)
▲ 개성주악 by 김씨부인(Kimssibooin)

♣ 함축에 의한 공감각적 증폭

그러나 주악이 까눌레일 수 없는 아주 다른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함축’이다. 재료는 버터나 계란, 설탕을 쓰지 않기에 담백하고 외관상으로는 화려한 장식 없이 심플하다. 이는 한국의 자연 풍경과 동양적 감수성 때문이다.

서양의 디저트가 맛을 쌓아 올리고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는 외연이라면 한식 디저트는 겉은 심플하되 안으로 내포한다. 녹이고 감싸 안아 수렵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단순한 선과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해 보이는 떡을 입에 넣었을 때 그 보이지 않던 맛이 3차원 적으로 증폭되는 경험이 살아나니 이는 서양식 디저트가 갖지 못하는 신비로운 매직이다. 매화에 앉은 참새를 닮았다 하는 매작과(梅雀菓), 대추로 만든 알 같다는 조란 (棗卵) 등은 한편이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김씨부인(Kimssibooin) 디저트의 동양적 감수성
▲ 김씨부인(Kimssibooin) 디저트의 동양적 감수성

♣ 한식디저트에 축적된 지혜

밀가루, 유지방, 계란, 설탕, 이스트 없이 디저트를 만들 수 있을까? 서양의 파티시에 에게는 난감한 문제를 한식 디저트 셰프들은 당황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우유나 버터가 없거나 있어도 너무 귀한 시절이 길었다. 풍미를 살리기 위해 동물성 유지 대신 식물의 씨앗이나 콩, 계절 과일이나 약재에서 찾아내었다. 달콤함을 위해 정제한 설탕 대신 채취한 꿀이나 곡물을 가마솥에 졸인 조청을 썼다.

전통한식 디저트

베지테리언 인구가 증가하는 요즘, 동물성 재료를 대체할 다양한 실마리를 한식 디저트가 풀어줄 것이다. 정제된 설탕의 단순당 대신 조청의 복합당을 이용한다. 동물성 유지 대신 식물성 지방, 씨앗과 견과류, 이스트 발효 대신 막걸리 등의 곡물 효모에 의한 발효 등이 특징이다.

글루텐프리라는 이슈도 해당이 된다. 쌀가루, 찹쌀가루를 활용한 디저트 개발이 이미 본격화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식 디저트에는 약재가 가미된다. 도라지, 홍삼, 잣, 대추 등 이들이 갖는 치유적 효능이 더해지니 이로움이 더욱 빛을 발한다.

♣ 도전정신과 탁월한 감각의 한국의 젊은 파티시에들

인절미, 두텁떡, 구름떡, 쑥떡, 호박설기, 팥빙수 등이 젊은 파티시에를 만나 새로운 디저트로 변신하고 있다.

쑥호박케이크

시루에 곱게 쪄나오는 설기에 호박고지와 쑥향이 고슬고슬 묻어 나는 전통 떡을 기억할 것이다. 서울 이수역의 <카페오우아>에서는 이를 케이크로 재해석 했다. 고슬고슬 먹기 편한 케이크 시트 사이에 단호박을 레이어드 하고 담백한 크림 위로는 쑥 크럼블을 만들어서 바삭한 쌉싸름함을 연출했다.

오우아(Ohwoah)의 쑥호박케이크
▲ 오우아(Ohwoah)의 쑥호박케이크

팥빙수와 팥빙수 크루아상

팥빙수는 시원한 우유빙질이 팥으로 어우러져 강력한 쾌락을 선사한다. 크루아상에 시원한 생크림을 올렸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조합을 팥과 콩고물을 넣음으로써 디저트로 완성되었다. 파이 스타일로 바삭하게 구운 크루아상에 콩고물을 살짝 뿌리니 기가막힌 조합이다. 강화도의 카페 <마호가니>에서는 크루아상이 단번에 여름의 디저트로 변신했다.

마호가니(Mahogany)의 팥빙수크루아상
▲ 마호가니(Mahogany)의 팥빙수크루아상

쑥떡과 쑥크림 타르트

쌉싸름한 쑥의 향기는 크림과 어우러 질 때 멋스럽다. 쑥의 푸르름과 쌉사름한 매력을 크림으로 담아 담백하고 고급스러운 타르트로 변신, 인천의 <바림케이크>에서 창작되었다.

바림케이크(Barim Cake)의 쑥호박타르트
▲ 바림케이크(Barim Cake)의 쑥호박타르트

흑임자 구름떡과 흑임자 타르트

갓볶은 흑임자의 고소함은 방앗간에 가본 사람이면 잊지 못한다. 흑임자는 유지의 고소함과 함께 식물의 씨앗에서 갖는 알싸한 아로마가 있다.

이는 생크림과도 잘 녹아들 수 있는데 특유의 쌉싸름함이 생크림의 단조로운 풍미에 고급감을 가져다 준다. 한남동 디저트카페 <마농트로포>의 블랙타르트는 특히 흑임자의 검은빛과 생크림의 우유빛이 어우러져 라떼처럼 우아하다.

찰떡과 아이스크림

찰떡을 잘 빚어 콩고물을 묻혀 먹는 것이 전통적인 인절미였으나 최근에는 아이스크림이나 티라미수 등으로 재해석되었다. 찹쌀은 그 자체로 특별한 맛을 지니진 않지만 무엇이든 탄력적으로 감싸 안는 장점이 있다.

쭉 늘였을 때 터져 나오는 크림의 질감은 보는 사람들의 식욕을 드라마틱하게 자극한다. 특히 얼렸다가 반쯤 해동하는 과정에서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오고 가는 절정을 맛보게 된다. 녹아 내리는 아이스크림 속에서 젤리처럼 살아나 입체적인 식감을 창조한다.

카페파스쿠치(Caffe Pascucci)의 쑥인절미 그라니따
▲ 카페파스쿠치(Caffe Pascucci)의 쑥인절미 그라니따

♣ 디저트의 새로운 장르

인공적인(Artificial) 것 보다는 자연적인(Natural) 것을 추구하고 육식과잉(Carnism)의 시대에서 채식주의(Vegetarianism)로 변모하는 요즘, 세계적인 전환기에 풍요로운 경험치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식 디저트이다.

덜 달고 덜 느끼하고 덜 화려하지만 더욱 오래가는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마법이 한식 디저트의 곳곳에서 빛난다. 이제 세계는 한식 디저트의 감각적인 반란에 주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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