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상품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이다. 모순적인 표현이 가능한 이유가 있다.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상품에 가격표가 붙으면 사람들은 그에 대한 적정성을 평가한다. 납득하면 소비하고 그렇지 않으면 외면한다. 상품의 상대적인 가치가 수치를 통해 측정되는 것이다.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도 구매 행렬이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품절 사태가 빚어지고, 급기야 사람들은 웃돈을 쥐어줘서라도 소유하려 한다. 낯선 풍경이 아니다.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해당 상품에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게임이론을 만지작거리거나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렌의 저서 <유한계급론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1899)을 펼쳐 든다. 그런데 이런 구구절절한 분석 따위보다 간단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 ‘명품’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명품이 아니지만, 명품이기도 하다. 서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한 권의 책 이라는 측면에서 값비싼 명품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전 세계 주요 도시의 레스토랑을 직접 찾아가 맛보고 평가한 ‘미식의 기록’이다.
결코 책 한 권 값으로 살 수 없는 발견의 여정을 아낌없이 풀어놓은 것이다. 맛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지만, 요리에 담겨 있는 절대적인 정수를 끄집어내려 했다.
1900년 타이어 제조사를 운영하던 미쉐린 형제가 처음 시도한 이 작업이 118년째 지속되고 있고, 전 세계 미식가들의 지지 속에서 생명력을 확대시켰다. 미쉐린 가이드에 붙는 ‘명품 미식 평가서’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미쉐린 가이드가 이어가고 있는 전무후무한 역사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싹을 틔웠다. 2018년 10월,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9’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총 35개의 별을 26개의 레스토랑에 달아줬다. 셰프들의 가슴에 자리 잡은 별이 훈장처럼 빛났다.
이와 함께 61개의 빕 구르망, 104개의 더 플레이트를 320페이지에 켜켜이 담았다. 올해로 3년째 서울의 맛을 담아내면서 숙성된 향은 오래된 오크통에서 꺼낸 와인처럼 강렬했다. 서울 강남대로부터 신당동 골목길까지 샅샅이 훑으며 담아낸 식당의 얼굴들은 서울에서 수 십 년을 살아온 시민들에게도 새롭게 다가왔다.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됨으로써 동네 단골 식당이 특별한 공간으로 재 탄생하는 것이다. 단순히 책에 ‘좋은 재료를 엄선해 요리를 잘 해서 맛있다’고만 언급됐다면 이런 변화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미쉐린 가이드가 임명한 평가원들이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식당의 정수를 뽑아냈기에 가능한 일이다. 파급력은 국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미쉐린 가이드의 선택을 받은 서울의 다양한 요리들은 세계 미식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미쉐린 가이드가 어떤 평가 과정을 거쳐 출간되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외식 업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조각들을 조합해 짐작해볼 뿐이다. 이에 따르면 미쉐린 가이드 평가단의 조사 과정은 치밀하고 반복적이다.
평가 내용 중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다시 레스토랑을 방문한다. 한 레스토랑을 여러 평가원들이 방문하는 교차 검증도 한다. 신분을 철저하게 숨기기 위해 식사 도중 따로 기록을 하지 않는다. 먹은 음식은 반드시 계산한다. 평가원들은 매달 모여 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거듭 확인한다.
만장일치가 아니면 평가 결과는 확정되지 않는다. 다시 맛보고 다시 평가한다. 미쉐린 가이드의 한 문장에 레스토랑의 명예와 셰프의 인생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평가방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미식의 정수를 담아내는 고집스러운 과정은 오늘날 미쉐린 가이드가 부여하는 별의 영향력과 권위를 만들어 낸 핵심 요소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9’가 발간된 날,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의 행사장에는 눈길을 끄는 손님이 있었다. 한국의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제네시스였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과 제네시스를 한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건 제네시스 역시 자동차 부문에서 기술과 미학의 정수를 담아내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추구하는 정수가 정확하게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과 제네시스가 국내 시장에 등장한 시점도 비슷했다. 미쉐린 가이드는 2016년 평가단들의 조사를 거쳐 첫 서울판인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을 세상에 내놨다. 제네시스도 2015년 11월 브랜드 출범을 공식 선언한 뒤 2016년부터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미식 평가서와 자동차는 완전히 다른 두 분야 같지만 미쉐린이 타이어 제조사라는 점에서, 그리고 제네시스가 신차를 내놓을 때 미쉐린과 손잡고 최적화된 타이어를 개발한다는 점에서 두 브랜드의 인연은 고무처럼 질기다.
미쉐린 가이드는 미식의 정수를 한 데 모아 정리했다. 이 작업을 118년 동안 지속해왔다. 제네시스도 반세기 동안 연마한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세계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명품을 지향하고 명품을 담아내는 작업에서 두 브랜드가 중심에 세운 건 다름아닌 ‘사람’이었다.
브랜드 출범 후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제네시스사업부장(부사장)이 제품 핵심 철학을 설명한 적이 있다. “세심하게 챙기고 디테일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 그게 바로 장인정신이다. 소재를 이해하고, 이루려는 바를 명확히 알고, 모든 고민들을 응축해서 담는다.
이를 통해 우린 고객들이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느끼게끔 해준다.” 이 말을 토시 하나 바꾸지 않아도 미쉐린 가이드가 추구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건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앞으로 미쉐린 가이드 서울과 제네시스의 행보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책 한 권이 주는 기쁨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그건 상대적이다. 하지만 좋은 책이 인간에게 기쁨을 준다는 절대적인 명제는 바뀌지 않는다. 붉은 표지를 입은 이 책은 지난 118년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오감에 행복을 전달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서울도 선택을 받았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소개된 식당을 찾아가 평가원들의 설명을 읽으며 요리를 맛보는 것. 놀라고 감탄하며 마주보고 웃는 것. 미쉐린 가이드가 서울에 선사한 특별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