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올록볼록한 몸매의 미쉐린의 마스코트 ‘비벤덤.’ 2000년,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로고’로 선정되기도 했었던 비벤덤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1894년 리옹에서 개최된 세계 산업 박람회에서 미쉐린 타이어 창립자 에두아르 미쉐린은 한편에 쌓여있는 타이어 더미를 보고 ‘팔 다리만 있으면 사람의 형상이다’고 생각했고, 그가 의뢰한 화가의 손에 거쳐 탄생하게 되었다.
가성비가 훌륭한 식당을 별도로 분류하여 소개하는 미쉐린 가이드의 빕 구르망도 비벤덤의 이름을 따서 만든 부문이다. 미쉐린 브랜드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비벤덤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여덟 가지를 정리해봤다.
1. 그가 처음부터 귀여웠던 건 아니다.
최초의 비벤덤은 이집트의 미라가 연상되는 (지금보다 훨씬 덜 귀엽고) 다소 괴상한 캐릭터였다.
초기의 비벤덤은 한손에 늘 술잔을 들고 있었고 그를 따라다닌 유명한 문구가 있었으니 로마시대 시인 호라티우스 (Horace)의 ‘송가(Odes)’에서 인용한 “Nunc est Bibendum (지금이 마실 때다)”였다. 비벤덤의 술잔은 미쉐린 타이어의 뛰어난 견고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못, 유리조각, 편자같은 뾰족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2. 인간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여러 과도기를 거쳐왔다.
비벤덤은 검투사와 킥복서 출신이다. 한때 이탈리아에서는 맥주와 시가를 즐기는 카사노바 사교 댄서로 이미지화되기도 했었다. 입에 시가를 물고 사교계를 전전하는 비벤덤은 거만한 귀족의 모습이었는데, 시가는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은 상류층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액세서리였다.
1920년대로 진입하면서 비벤덤은 교양 있는 가정맨으로 이미지를 180도 탈바꿈했다. 맥주와 시가를 끊었고, 운동을 즐기기 시작했다. 20년대 광고 속의 비벤덤은 조깅을 하거나 사이클링을 즐기며 타이어를 프리즈비 처럼 날리는 날렵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한 광고 포스터에서 그는 구멍 난 타이어 때문에 도로에서 애를 먹고 있는 가족에게 자신의 복근 중에서도 가장 품질 좋은 타이어를 빼주기도 한다. 비벤덤의 뻥 뚫린 배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3. 비벤덤이 하얀 이유는 초기 타이어가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의 자동차 타이어는 회색빛이 도는 흰색이나 베이지색이었다. 1912년, 타이어의 탄성과 보존력을 높이기 위해 탄소가 첨가되기 시작하면서부터 타이어는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4. 비벤덤의 애완견 역시 하얗고 올록볼록하다.
미국의 한 TV 광고에서 CG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재탄생한 비벤덤은 그와 비슷하게 생긴 애완견 버블스와 함께 등장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날 밤, 말썽꾸러기 강아지는 주인 몰래 도망을 치고 비벤덤은 한밤중에 차를 몰고 버블스를 찾아 숲 속을 헤맨다.
5. 비벤덤은 말이 없다.
비벤덤의 목소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었던 건 1898년 파리에서 개최된 사이클 박람회에서였다. 앙드레 미쉐린은 판지로 만든 비벤덤 모형을 미쉐린 부스 앞에 설치했고 전문 코미디언을 고용했다. 당시 그가 원했던 코미디언은 완벽한 발성법과 교양 있는 재담을 갖춘 전문가였다. 그의 홍보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말하는 비벤덤을 구경하러 너무나도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바람에 대혼란이 일어났고 결국엔 경찰까지 출동했다. 2000년대 초반이 되어 비벤덤은 일약 광고 스타가 되었지만 그는 역시 침묵을 일관했다.
이것은 광고대행사 캠벨 이월드 (Campbell-Ewald) 측에서 의도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이에 대해 광고 제작 감독 존 스튜어트는 이렇게 말했다. “비벤덤의 침묵은 예술적인 선택이다. 그는 외유내강 형으로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다.”
6. 그는 각종 매스컴이 사랑하는 인기 스타다.
1907년, 미쉐린이 출간한 이탈리아판 여행 잡지는 비벤덤의 전용 칼럼을 선보이기도 했다. 각종 여행담에서부터 사교계 이벤트까지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로 풀었는데, 자신의 사회적 유명세를 과시하는 대목이 늘 포함되어 있었다. 무도회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성들에 대해 예찬을 하는 낭만적인 글도 있었던 반면 자신의 경쟁자들을 조롱하는 성격의 글도 있었다.
최근에 비벤덤은 프랑스의 유명 만화책 시리즈 ‘아스테릭스’에 마차 바퀴 판매인으로 깜짝 등장하기도 했었고 2010년 아카데미상을 받았던 프랑스 단편 영화 ‘로고라마(Logorama)’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7. 비벤덤의 외모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가구도 있다.
1900년대,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가 선보인 ‘비벤덤 의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가구 디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8. 런던에는 비벤덤 레스토랑이 있다.
런던 풀럼에 위치한 ‘비벤덤 레스토랑 앤드 오이스터 바’는 1986년, 영국의 저명한 레스토랑 경영자인 테런스 콘란 경과 폴 햄린 경에 의해 공동 설립되었다. 두 사업가는 1911년부터 1985년까지 런던의 미쉐린 본부로 사용되었던 아르 데코 스타일의 미쉐린 하우스의 일부를 매입하여 레스토랑으로 개조하였다.
건물 앞은 본래 지나가던 운전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타이어 교체 공간이었다.
레스토랑 입구로 들어서면 나사와 볼트, 깨진 유리 조각 등이 담긴 술잔을 들고 있는 비벤덤의 모습을 모자이크 바닥 타일로 만나볼 수 있고, 벽 한 면에는 킥복서 비벤덤과 시가를 물고 있는 사이클리스트 비벤덤의 모습이 묘사된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 레스토랑은 2016 미쉐린 가이드 영국 판에 소개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