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는 무궁무진한 요리라고 이야기하는 임상현 셰프.
그는 스시상현에서 자신의 철학을 담은 요리를 선보이며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2에 새로운 스타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스시’는 형식적으로 엄격히 제한된 카테고리의 요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2에 새로운 스타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올린 스시상현의 임상현 셰프는 스시야말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임상현 셰프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더하고, 한국적인 맛을 접목시킨 스시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그를 만나 미쉐린 스타를 받은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Q. 임상현 셰프에게 스시는…
제게 스시는 “스트레스를 해소” 그 자체에요.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써 제게 음식은 늘 엄청난 숙제이자 스트레스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요리를 정면으로 맞닥뜨리며 풀어 나가는 것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과정이죠.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것 또한 없어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 동네 아는 형님이 운영하는 횟집에서 처음으로 요리를 시작했어요. TV를 보는데 일식 셰프가 나와서 길다란 셰프 모자를 쓰고 호소마끼(ほそ-まき)를 말아 날카로운 칼로 정돈하며 써는 모습이 그렇게 단정하고 멋지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국내의 유명한 김밥 체인점처럼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프랜차이즈 식당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졌죠. 그래서 푸드 트럭처럼 초밥을 판매하는 형태로 차를 개조해 나름의 길을 개척하려고 했지만 예상치 못한 다양한 어려움이 있어 그 꿈은 일단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지금과 같은 스시 오마카세 요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까워요. 서울에 이런 오마카세 레스토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력서를 넣어 배우며 시작했죠. 그리고 손님을 마주보며 요리하는 오마카세의 매력에 빠졌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Q. 임상현 셰프님의 요리 철학은…
글쎄요, 요리 철학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먹기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고급 스시’라는 명분으로 폐쇄적인 무언가를 구축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쉽고 즐겁게 접할 수 있는 스시를 만드는 것이 저의 기본 철학이에요.
항상 일정한 음식을 만드는 것 또한 저의 고민입니다. 늘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것 또한 정말 중요하죠. 저는 스시상현을 방문하신 고객들께서 이곳만의 색을 느끼고, 기억에 담아 가셨으면 좋겠어요. 스시를 드시면서도 그 외의 요리 또한 맛있는 집이라는 생각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저는 식재료 중에서 채소를 좋아하는데요, 채소야말로 알수록 더 어렵고 흥미로운 식재료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해산물만 내는 것이 아니라 문어에도 샐러드를 곁들이고, 배추도 절여서 쓰며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정통 스시와는 조금 결이 다르죠.
스시상현의 시그니처 요리: 가쓰코와 고등어 봉초밥
황돔 치어인 가쓰코 스시는 저만의 담백함이 묻어나는 스시라서 소개하고 싶어요. 일본에서도 많이 쓰는 가쓰코는 식초와 소금에 절여서 맛이 강한 편인데, 저는 오히려 맛을 은은하고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죠. 오히려 단 맛이 느껴질 정도니까요.
지금의 스타일을 만들기까지 저의 개인적인 입맛과 손님들과의 소통이 함께 어우러졌다고 생각해요. 스시상현의 사바보우즈시(고등어 봉초밥)는 등푸른 생선을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해서 보다 대중적으로 만든 요리에요. 등푸른 생선이 비리다는 선입견으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래서 이런 분들도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다시마도 올리고, 대파의 흰 부분을 구워서 고등어와 밥 사이에 넣어 맛의 밸런스를 새롭게 구성했죠. 이런 시도를 통해 고객 분들이 음식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고 확장해 가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 즐거움이에요.
이 외에도 이야기가 있는 음식도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요. 저희 어머니가 담가 주신 김치 묵은지를 마끼로 드린 적이 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아서,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계셔요. 장인어른이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도 호응이 좋았고요. 맛도 중요하지만 식재료에 담긴 이야기, 사람들의 정성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는 것 같아요.
Q. 임상현 셰프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은?
김밥집부터 고급 음식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식당이 영감을 줍니다. 어디서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요. 예전에 제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뒤 회복식으로 게살 죽을 먹었는데 여기서 착안해 게살을 발라 덮밥을 만들어 보았죠. 손님들의 반응도 좋아 정규 메뉴가 되었어요.
Q. 셰프의 삶에 힘든 점이 있다면…
자기만의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힘든 점이죠. 후배 요리사들이 보기엔 제 모습이 부러울 수도 있고 스타를 받은 것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되기까지 괴로운 날도 많았거든요.
쉬는 날이 없어 지금의 아내와 파혼의 위기를 겪기도 했고, 심지어 웨딩촬영도 잠시 교대 근무를 하는 중 짬을 내서 다녀왔을 정도에요.
다행히 신혼여행은 갔지만, 결혼식 전날까지도 일을 하고 있었죠. 돌이켜보면 늘 일에 몰두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쉬는 날은 아빠의 역할에 충실하며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해요. 아이들과 놀고, 쉬거나 쇼핑도 가고, 어머님 가게에도 가고요. 그렇게 휴일을 보냅니다.
Q. 미쉐린 스타를 받게 되었을 때…
대략 10여년 전 미쉐린 가이드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솔직히 한국에서 일본 음식을 만드는 셰프로써 미쉐린 가이드의 스타 레스토랑으로 등재된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일이에요. 기대조차 한 적이 없는 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실감이 나지 않아 너무 얼떨떨하고, 행복했고, 울컥했습니다.
가장 먼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울면서 얘기했어요. 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아내에게 가장 먼저 축하받고 싶었거든요. 일 때문에 결혼하면서도 늘 혼자 많은 감당을 해야 했던 아내니까요.
그리고 저의 딸 아윤이와 아들 이안이한테 인정받은 아빠가 된 것 같아서 정말 뿌듯했어요. 아이들이 아빠의 직업을 좀 더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고요.
그리고 저희 팀에서는 스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배달해서 먹으며 서로 고맙다고 축하했어요. 제가 잘 챙기지도 못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회식도 자주 못해서 미안하지만 저와 오랜 시간 함께 해주는 저희 스텝들이 있어 스시상현에 이런 감사한 날이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미쉐린 스타는 셰프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잘 모르던 손님들도 새롭게 이곳을 찾아 주시고, 관심을 가져 주시죠.
아직도 여전히 신기하고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동안의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미쉐린 스타의 의미는 앞으로 더 발전하라는 동기부여라고 생각해요.
Q. 미쉐린 스타를 받기를 원하는 젊은 셰프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은…
저는 후배들에게 늘 “부모님께 식사를 대접하는 마음으로 요리하라”고 이야기해요. 소중히 아끼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들면 아무래도 거짓보다는 진실함이 나오니까요. 저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감각과 기술이 좋은 요리사도 좋지만 결국 겪어 보면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더군요.
내가 좋아서 만드는 음식과, 단순히 직업이니까 만드는 음식은 사실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기술은 바른 마음가짐을 가진 뒤 연마해도 되는 부분이에요. 기술이 뛰어나도 손님을 기만하는 마음은 고치지 못합니다.
어떻게 스타를 받는 것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자신이 선택한 이 길을 하루하루 뚝심 있게 걸었으면 좋겠어요. 힘들고 모진 길이지만 그만큼 보람 있고 영광스러운 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상상하고, 생각하고,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