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띠에(L’AMITIÉ)는 국내에서 ‘전통’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유일한 프렌치 레스토랑일 것이다.
이제는 단순한 전통을 넘어 셰프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 감자 깎다 발견한 재능
가로수길, 압구정, 홍대, 이태원…. 소위 미식의 메카라는 동네는 쉬이 변한다. 꾸준히 돌아다니며 파악하지 않으면 쉽게 낯설어진다. 한 달이면 옆집이 사라지고, 반년이면 길 하나가 달라지기 일쑤다. 우리나라의 흔한 식문화 트렌드다.
그렇게 서울의 레스토랑이 탄생과 소멸을 반복할 동안 라미띠에는 무려 17년간 한자리에 뿌리내렸다. “조금만 더 하면 하동관 되겠어요.” 셰프의 웃음 가득한 농담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레스토랑 간판에 자신있게 ‘Since’를 붙일 수 있는 국내 프렌치 레스토랑은 라미띠에가 유일무이하니 말이다.
본래 장명식 셰프의 꿈은 셰프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도시계획공학과’처럼 폼 나는 전공과 그에 걸맞은 유명 학교를 꿈꿨다. 하지만 그는 결국 한양대 앞에 사는 재수생이 되었다. “고1까지는 공부 잘했는데….” 셰프는 갑자기 있지도 않은 먼 산을 바라보았다.
대학을 보면 공부하고 싶다가도, 술집을 보면 뛰쳐나가 놀고 싶던 그는 여느 스무 살처럼 방황을 일삼았다. 그렇게 먹고 마시는 돈을 충당하기 위해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공부가 될 턱이 없었다. 그런데 운명은 이 작은 식당에서 바뀌었다.
“쉬는 시간에 주방 아줌마들이 감자를 돌려 깎더라고요. 그게 너무 신기하게 보이는 거야. 그래서 그랬지. 저도 한 번 해보면 안 돼요?” 그렇게 깎아본 감자는 실로 너무 재미있었다. 처음 잡은 칼은 어색하지 않았고, 손을 베일까 두려운 마음도 없었다.
마치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꼭 맞았다.“ 그때 생각했죠. 과연 어느 길이 옳은 길인가 하고요.” 그리고 그는 과감히 재수 생활을 접고 조리학과에 진학했다.
단기간의 강도 높은 학업을 마친 뒤 처음 취직한 곳은 조선호텔이었다. 무려 100명이 넘는 직원들 속에서 그는 이등병이 된 기분이 들었다. 강행군의 연속이었지만 요리는 항상 즐거웠다. “보통 3~5년 사이에 위기가 온다는데, 저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요.
요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고요. 100% 만족한다기보다는…. 이끌리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말예요.”
하지만 거대 조직에서 새로움을 찾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던 그는 슬슬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 1년 선배인 서승호 셰프에게 제안이 들어왔다. “라미띠에를 접으려 하는데 인수하지 않겠느냐고 묻더군요.
이거다 싶었어요.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끌어다 인수했죠. 그런데 여전히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마치 같이 일하다 물려받은 것처럼 말이죠.” 라미띠에의 창업자 서승호 셰프는 그에게 레스토랑의 이름은 유지해주었으면 좋겠노라 부탁했고, 그 역시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전통은 맥을 이었다.
♣ 라미띠에에서의 10년, 그리고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라미띠에는 두 달에 한 번씩 메뉴를 바꾼다. 요즘이야 흔한 콘셉트가 되었지만, 10년 전만 해도 혁신적인 것이었다. “레스토랑 안에서 관리할 수 있는 손님 수는 제한되어 있어요. 그것이 오버되면 음식이 깨지죠.
파인다이닝이라는 콘셉트를 지니고 있는 이상 25석 이상의 자리는 만들지 않을 계획이에요.” 예약제 레스토랑인 라미띠에가 오래전부터 고수하고 있는 철칙이다. 총 6명의 스태프로 구성된 라미띠에는 4인 테이블이 있는 두 개의 룸과 2인 테이블로 구성된 하나의 룸을 관리하고 있다.
이처럼 세심하게 운영되는 덕택에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은 꾸준히 라미띠에를 찾는다.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의 70%가 단골일 정도다. 그만큼 손님들과 얽힌 추억도 많다.
10년 전만 해도 부모를 따라 라미띠에에 오던 손님들이 장성하여 레스토랑을 찾을 때면 셰프 역시 묘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토록 긴 세월, 세대를 이어 까다로운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법은 무엇일까.
“요리 테크닉?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인성이에요. 못된 사람은 요리하지 말라는 말이 아녜요. 적어도 요리할 때만큼은 마음에 화나 걱정이 없어야 하고, 흥분 없이 차분하게 임해야 한다고 봐요. 악의를 갖고 요리하면 넣은 것 없이도 배탈나는 음식을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요리할 때 마음을 담아요. 지난 10년간 컴플레인이 거의 없는 비결이기도 하지요.” 음식에 인성을 담다니, 장 셰프의 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질 좋은 재료와 오랜 세월 쌓인 테크닉은 기본 전제일 거다.
라미띠에는 올해 초 청담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통’이 발목을 붙잡 았지만 과감히 이전을 감행했다. “서승호 셰프가 7년, 제가 10년…. 도 합 17년이에요. 갈등되더라고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해 봤어요.
내 이름을 걸고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면 더욱 책임감도 생기고,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심지어 연내에 상호를 바 꿀 계획도 있다며 셰프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라미띠에라는 이름이 사라지면 그간의 세월도 사라지는 것일까.
다소 복잡한 마음으로 그의 요리를 맛봤다. 하지만 그런 염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스토랑의 전통이란 건, 이름과 장소가 아닌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는 라미띠에라는 보호막을 집어던지고, 좀 더 대범해지려 하고 있다.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의 요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