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건조시킨 어물 魚物을 건어라고 부른다.
❞한반도의 겨울은 매섭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겨울에 포근한 날씨가 이어질 때가 많고 겨울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한반도의 겨울은 차고 건조하며 모든 자라나는 생명을 위축시킨다.
겨울은 우리의 식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이야 다양한 기술의 개발로 겨울에도 먹거리가 풍부하여 별다른 걱정이 없지만, 예전에는 이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중 하나가 바다에서 나는 생선 등을 “말리는” 것이다.
♣ 말린 생선, 건어 乾魚
생선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건조시킨 어물 魚物을 건어라고 부른다. 건어는 냉장이나 냉동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에 수산물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건조법에서 유래한다.
옛 문헌인 <남해악보>에는 “다시마는 신라에서 생산되는데 누르거미한 색에 잎은 잘다.
그곳 사람들은 다시마를 채취하여 새끼로 묶어 그늘에 말려 배에 싣고 중국에 온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를 살펴보면 숭어, 잉어, 문어, 조개, 전복, 대구, 낙지 등 말린 수산물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생선을 말려 먹는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다. 조선시대에 상태가 좋은 건어는 왕에게 진상되거나 특별한 날 신하에게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제사를 지낼 때 빠질 수 없는 제물로 인식되었으며, 중국과의 대외무역에서 중요한 무역품 중 하나였다.
또한 중국 황제에게 바치는 중요한 품목으로 꼽히기도 했다. <성종실록>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조선의 건어물 중 특히 문어, 연어, 대구, 전복, 해삼, 홍합 등을 좋아해서 이들 물목에 대해 끊임없이 조공을 요구했다고 한다.
♣ 생선을 말리는 방법
생선을 말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생선을 손질하여 그대로 말리는 소건법 素乾法 이 있다. 큰 생선들은 건조 과정이 오래 걸려 부패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몸집이 작고 얇은 어패류가 소건법에 적당하다.
주로 문어나 오징어를 말릴 때 이 방법을 사용한다. 동건법 凍乾法 은 얼리고 녹이는 과정을 반복하여 건조시키는, 즉 차가운 바람을 쐬어 말리는 방법을 말한다.
대표적인 동건품으로는 명태를 말린 황태를 꼽을 수 있는데, 태양열로만 건조하는 것보다 육질의 변질이 적어 품질이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소금 간을 적당히 하여 말리는 염건법 鹽乾法 도 있다. 소금으로 절인 후 말리는 것으로 대구, 고등어, 갈치, 조기, 도미 등이 대표적이다.
한 번 데친 뒤 건조시키는 건어도 있다. 이렇게 쪄서 말리는 방식을 자건법 煮乾法 이라고 하는데, 끓는 물에 데쳐 미생물을 죽이고 남은 지방질을 없앤 다음 말리기 때문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다는 장점이 있다. 멸치, 해삼, 전복, 새우, 조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맛에 영양까지 더해지는 건어
건어는 식품이 부패하는 주원인인 수분을 증발시켜 미생물이 살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원리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건어는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맛과 영양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생물 생선은 마르는 과정에서 비린내가 나는 물질이 사라지고 생선 살의 자체 효소가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해 맛이 더 좋아진다. 또한 수분이 빠지면서 살이 더 탄탄해지고 생선의 깊은 맛이 살아나게 된다.
예를 들어 겨울철 별미인 과메기는 말리는 과정에서 핵산이 풍부해져 노화 예방과 체력 저하를 방지하는데 좋다. 또한 굴비는 비타민 A와 D가 풍부해져 피로회복에 효과적이며, 칼슘과 철분이 많아 성장기 아이들에게 좋다.
다만 건어는 건조 과정에서 수분이 20~50% 정도 줄면서 식재료 자체의 무게가 줄어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말리기 전에 비해 영양분 함량이 높다는 점을 염두해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