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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인문학으로 본 국밥의 유래와 역사

인문학으로 본 국밥의 유래와 역사

착한 가격에 든든하게 속을 채워주는 서민들의 진정한 친구 국밥

요즘처럼 차가운 바람이 싸늘하게 불어오는 계절에는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생각나곤 한다.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주는 착한 가격에 든든하게 속을 채워주는 서민들의 진정한 친구 국밥, 이런 국밥을 우리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즐겨 먹었을까?

♣ 국밥의 기록을 찾아서

국밥이란 국에 만 밥으로 탕반(湯飯), 국말이, 장국밥 등으로 불렸다. 한국인의 전통 상차림은 갱반(羹飯)을 기본으로 한다. 갱반은 국과 밥을 일컫는 말이다. 이 외에도 만드는 재료에 따라 국은 탕(湯)이라고도 불렸다.

갱은 채소와 고기를 끓여서 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장국이고, 탕은 생선과 고기를 강한 불로 끓여서 만든 탕국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따로 먹는 갱과 반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한데 말아 넣어 만든 음식이 바로 국밥이었다.

국밥이 우리나라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승정원일기>이다. 승정원일기의 숙종 대 기록을 살펴보면 숙종에게 의녀가 흰죽, 탕반, 염주 등을 권하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영조가 몸이 불편할 때 국밥은 싫어하므로 물에 만 밥을 먹었다는 기록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 국밥은 일반적으로 흔히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특히 양반가에서는 거의 먹지 않았다. 영조 대 실학자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창자를 채우기로는 국밥이 제일이라고 했지만, 상민들의 음식이라고 표현하였다.

인문학으로 본 국밥의 유래와 역사, 승정원일기

♣ 서민들이 사랑한 국밥

국밥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부터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생산력이 크게 증가하면서 전국적으로 장시와 객주가 발달하였다. 특히 청나라와의 무역이 활발해진 18세기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닷새 간격으로 열리는 오일장이 개설되었다.

19세기 초에 국가 재정을 파악하기 위해 발행된 <만기요람>에 따르면 전국에서 열리는 오일장이 1,061곳에 달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행상하는 보부상들의 수 역시 크게 증가했다. 보부상들은 5일 간격으로 날짜를 달리하여 열리는 장시들을 차례로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팔았다. 이효석의 단편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속에는 이러한 보부상들의 삶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때 보부상들이 팔고 다니는 물자를 연결해주는 중개 역할을 담당한 것이 바로 객주, 즉 주막이었다. 이와 함께 객주는 여관과 밥집의 기능까지 도맡았다. 행상들이 다니는 도로변에는 주막들이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주막촌이 형성되었고, 국밥과 술을 판매하였다. 국밥이 장국밥, 즉 장시에서 파는 국밥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김홍도(金弘道)의 풍속화 <주막酒幕>을 보면 이 시기 주막의 모습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그림 속 주모는 부뚜막에 앉아서 국밥과 술을 팔고 있다. 주모의 옆에서 계산하려고 쌈지 주머니를 열고 있는 남자는 장죽을 물고 봇짐을 지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봇짐장수의 모습이다. 이렇듯 국밥은 장시와 주막을 통해 본격적으로 상품화·외식화 되었다.

이후 19세기 무렵에는 탕반만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탕반가도 나타난다. 특히 장시가 크게 열렸던 서울에서는 수표다리 건너편과 백목다리 건너편에 국밥 전문음식점들이 즐비해 있었다.

수표다리 쪽은 재상들과 양반들이 이용했으며, 백목다리 쪽에는 부유한 상인들과 한량들이 주로 다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무교동의 무교탕반과 경기도 안성의 장국밥이 가장 유명했다. 이외에 충주의 금부 앞 설렁탕집 역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인문학으로 본 국밥의 유래와 역사, 서민들이 사랑한 국밥

♣ 선조들이 먹던 국밥의 모습

당시 먹었던 것은 어떤 종류의 국밥이었을까? 18세기 무렵에 출간된 <규곤요람(연세대본)>에는 우리나라 문헌 최초로 국밥 조리법이 기재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기름진 고기를 장에 졸인 것을 밥 위에 부어 만든다고 한다. 19세기 말엽의 요리서 <시의전서>에는 더욱 자세한 조리법이 나와 있다.

‘좋은 백미를 깨끗이 씻어서 밥을 잘 짓고, 무를 넣어 잘 끓인 장국에 나물을 갖추어 만들어 국에 만다. 밥을 국에 말아 나물을 갖추어 얹고 약산적을 위에 얹어 후춧가루와 고춧가루를 뿌린다.’

이 두 가지 조리법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국밥에 고기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갑오경장 시기에 양보라는 사람이 운영하던 ‘양보장국밥집’에서는 장국밥을 끓일 때 오로지 양지머리로만 국물을 내었다고도 한다.

이렇게 국밥 재료로 고기가 주로 사용된 이유는 바로 조선 왕조가 제사를 통한 의례를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제사에는 반드시 희생수(犧牲獸)를 이용한 고기 요리가 올라간다. 조선에서 주로 사용하였던 희생수는 돼지와 소였다.

이런 이유로 조선에서는 제사에 사용된 고기뿐만 아니라 부산물인 내장이나 소머리 등도 손쉽게 구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육식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조선에서는 여러 가지 재료로 맛을 낸 국물들 중 고기를 곤 국물을 가장 높게 평가했다.

고기를 곤 국물인 곰탕은 대갱(大羹), 혹은 태갱(太羹)이라고 불렸다. 국물 중에 으뜸이라는 뜻이었다. 나물을 이용한 국물은 형갱(鉶羹)이라 불리며 대갱보다 맛이 떨어진다고 여겼다. 국밥의 재료로 고기를 주로 사용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조선의 음식 문화 때문이었다.

양지머리 외에도 조선인들은 갈비, 도가니, 우족, 소머리, 소꼬리, 소양, 소껍데기 등을 이용해 장국을 끓였고 이는 갈비탕, 우족탕, 설롱탕, 꼬리곰탕, 곰탕 등이 되었다. 1909년에 출간된 <조선만화>를 보면 국밥집 앞에 소머리를 진열해놓은 그림을 실으며 탕반가에 대해 자세히 묘사해 두었다.

‘커다란 솥에 소머리, 뼈, 껍질, 우족을 넣어서 서서히 끓인 것이 국물로서 별도의 작은 솥에 국물을 퍼 담아 간장으로 맛을 내고 고춧가루를 얹는다.’

당시 일본인들이 남긴 기록들에서도 국밥의 맛과 영양을 칭찬하는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국밥이 누구나 접하기 쉽고 인기 있던 서민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문학으로 본 국밥의 유래와 역사, 선조들이 먹던 국밥의 모습

♣ 일상에 스며든 국밥 문화

이후 192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국밥을 배달해주는 가게들까지 생겨난다. 1930년대 설렁탕 배달꾼과 손님 사이에서 주먹다짐이 발생한 일이 있었다. 이때 설렁탕 배달꾼은 경성에 설렁탕 배달꾼이 300명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배달꾼이 말한 숫자가 사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그만큼 서울에 설렁탕 배달꾼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잡지인 <별건곤>에도 요즘 신식 부부는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하지 않고 설렁탕이나 배달해 먹는다는 글이 실려 있다.

이 역시 당시 설렁탕으로 대표되는 국밥이 얼마나 대중적인 배달 음식이었는지를 쉽게 짐작해볼 수 있는 사료이다.

하지만 당시 국밥집들은 아직 도심 깊숙이 진출하지 못하고 여전히 장시 주변에 머물고 있었다. 사람들이 직접 국밥집을 찾아가지 않고 주로 배달을 시켜 먹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러한 국밥집들이 도심으로 진출하게 된 것은 1960~1970년대 도축장의 현대화·기계화 덕분이었다. 이후 고기 소비량이 더욱 증가하고 고기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국밥은 더욱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고, 결국 국밥집들은 장시를 벗어나 도심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후 국밥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를 두며 발전하였다. 그 결과 서울과 경인 지역에서는 곰탕, 설렁탕, 선지국밥, 소머리국밥이 주로 자리를 잡았고 경상도 지역에서는 돼지국밥, 전라도 지역에서는 콩나물국밥 등 지역의 특성을 보여 주는 국밥 문화가 정착하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 발달한 국밥은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풍부한 영양과 저렴한 가격으로 대표적인 외식 음식이자,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인문학으로 본 국밥의 유래와 역사,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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