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숙 궁중요리전문가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적인 TV쿠킹쇼,
<아이언 셰프(Iron Chef)>에 출연했었던 요리 장인
❞음력 7월 15일인 백중(百中) 전날, LA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의 금강선원(Diamond Zen Center)에서 궁중요리 전문가 이명숙 씨(66세)를 만났다.
사찰에서는 백중을 지옥의 문이 열리는 날이라고 하여 돌아가신 망자의 극락왕생과 천도를 발원한다.
이명숙 궁중요리전문가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적인 TV쿠킹쇼, <아이언 셰프(Iron Chef)>에 출연했었던 요리 장인으로, 양념의 계량화와 표준화를 통해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서 왔다. 그녀는 또한 CIC(캘리포니아 요리학교, Culinary Institute of California)의 문을 열어 후배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 오늘 금강선원 행사에서 요리를 하시게 된 연유는요?
제가 15년 전에 유방암 3기에 걸렸었습니다. 지금은 완치됐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은 사람은 건강에 조심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한식 세계화 행사를 치르고 다녔었어요. 그랬더니 결국 몸이 지탱을 못 하더군요. 그래서 온천이 딸려 있는 팜스프링즈의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쉬기만 하니까 몸은 편한데,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봉사활동이라도 좀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됐죠.
다행히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금강선원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저는 대원사의 사찰 음식 전문 스님으로부터 사찰음식을 사사받기도 했었는데요. 이곳 금강선원에서 방문객에게 사찰음식을 제공하거나 사찰음식 클래스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사태로 못하게 됐잖아요.
다행히 제자인 백수진씨가 이 지역으로 이사오면서 조금씩 활동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 요리와 나눔 등 봉사활동은 누구에게 무엇을 베풀었다기보다 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제가 행복해지거든요. 한식은 나눔의 음식입니다. 한국 음식 가운데 하나인 사찰음식 역시 나눔의 음식이죠. 정성껏 만들어 스님과 불제자들을 공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사월초파일에도 공양 봉사를 했는데 이번에 백중에도 음식을 준비하고 나눌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이 행사를 위해 저도 많은 것을 공부했습니다. 백중이란 추수하고 거둔 결실로 100가지 음식, 즉 많은 음식을 만들어 천도제를 지내고, 그 음식을 또 대중들과 나누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 한인 커뮤니티는 물론 미국 주류사회에서도 한식 궁중요리 전문가로 유명하신데요. 선생님의 요리 인생은 어떻게 시작됐는지요?
어머니가 종가집 11남매의 막내딸이었습니다. 음식을 만들어 베풀기를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한 달에 2-3번씩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곤 하셨습니다.
3남 2녀 중 장녀였던 저는 9살 때부터 밥도 짓고 국도 끓이며 어머니와 함께 요리를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고향이 평양이었고요, 어머니는 전라도였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북음식과 남도음식을 섭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요리학교도 여러 군데 나오신 것으로 아는데, 첫 요리학교는 어디에서 다니셨나요?
1986년, 제가 21세였을 때 오사카에 한일관이라는 힌식당을 열었었어요. 규모는 작았지만 음식 맛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2년만에 오사카 제일의 한식당으로 부상했습니다.
식당이 유명해지자 제대로 요리를 배워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사카의 쯔지(Tsuji) 아카데미에서 일식 국가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가서 궁중요리를 배운 거에요. 한일관은 한국과 중국에까지 지점을 열게 되었습니다.
♣ 궁중요리는 누구에게 전수받으셨는지요?
현재 궁중요리의 계보는 한희순 상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3세(고종 39년) 때 덕수궁 주방의 나인으로 입궁해 1910년까지 주방 상궁으로 일하면서 고종과 순종의 음식을 담당했던 분이죠.
황혜성 선생은 한희순 상궁으로부터 30년간 궁중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으며, 궁중음식을 계량화하고 조리법을 정리하면서 궁중요리 제2대 기능보유자이자 인간문화재 38호가 되었습니다.
황혜성 선생의 장녀인 한복려 선생, 셋째 딸이 한복진 선생도 어머니로부터 궁중요리를 전수받아 제3대 궁중요리 기능보유자가 되셨는데요. 저는 한복진 선생으로부터 궁중요리를 배웠고, 그 공부는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 미국에서도 요리학교에 가셨었죠?
미국에 와서는 나파밸리(Napa Valley)에 있는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요리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당시 외국에서 온 셰프들에게 김치와 쌈밥 강좌를 열었는데 반응이 뜨겁더군요.
♣ 보다 더 대중적으로 미국 주류사회에서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1996년 일본 《후지TV》에서 오사카 한일관을 취재하러 왔었고,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아이언 셰프(Iron Chef)>에 제가 출연하게 됐습니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스타 셰프가 되는 건 따 놓은 당상이었거든요.
그 프로그램에 저는 아시안으로서 최초, 여자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연했습니다. 2006년 미국의 푸드 채널에서 <아이언 셰프>가 몇 차례나 방송이 됐던지라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알아보더라고요. 그리고 현지의 한인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도 많이 소개됐었습니다.
♣ 한식 세계화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요?
CIA에서 요리 강좌를 열고난 후 식품연구원, 한식세계화협회 등에서 연락이 와 자연스럽게 전 세계에 대한 한식 홍보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그 후 한국문화원과도 많은 작업을 했고요. 미 전국의 대학을 다니며 한식 강의도 했었죠. 그때 정말 쉬지도 않고 미 전국을 다녔었어요. 미친 듯 일했던 것 같아요. 뭐든 적당히 해야하는데, 한식 세계화에 너무 미쳐서 일했던 것이 무리가 됐던 것 같습니다.
♣ 한식 세계화에 있어 선생님께서 가장 기여했던 점이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레시피를 계량화한 것입니다. 한식 레시피가 예전에는 주먹구구식이었죠. 레시피를 보고 요리하면 제대로 된 맛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리고 영어 레시피라고 많은 돈을 투자해서 만든 것도 현지의 계량 단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 현지의 셰프들로부터 외면받기 일쑤였습니다. 샘표에서 후원을 받아 한식 교재를 만들면서, 저는 미국의 계량 단위로 바꾼 레시피를 체계화했습니다.
즉 그램, 킬로그램으로 되어 있던 한국형 레시피를 파운드, 온스 등, 현지에서 사용하는 계량으로 바꾼 것이죠. 실제 미국의 셰프 제자들은 이 책을 바이블처럼 사용했고요, 절판이 되자 복사판을 만들어 공부하는 것을 봤습니다.
♣ 제자 양성은 어떤 방식으로 하셨는지요?
‘CIC(캘리포니아 요리학교, Culinary Institute of California)’라는 요리 전문학교를 설립하고 고등학교, 대학교 등을 중심으로 쿠킹클래스를 열었어요.
그렇게 노력한 끝에, 2008년에는 미국 대학교 최초로 UCLA 교내식당에 한식 메뉴가 추가됐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UCLA에서 요리를 하는 요리사들이 200명이 넘는데 그들 모두를 대상으로 가르쳤었죠. 그런 식으로 미 전국의 대학들을 돌았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한식을 배웠을지 가늠을 못 하겠습니다.
제 요리 클래스의 또 다른 공략대상은 현지인 세프들이었어요. 틈만 나면 현지인 셰프들을 상대로 한식 클래스를 열어 조리법을 알렸습니다. 그래야 그들이 또 다른 한식 홍보대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죠.
♣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셨다고요?
네. 미국, 멕시코, 브라질 등 남미지역의 한국대사관 주최 만찬에 자주 초청됐었습니다.
♣ 한식에 대한 남미인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남미인들의 한식 사랑은 유별납니다. 멕시코에서의 푸드 페스티벌 때 700명을 초청한 대사관 행사가 있었는데요. 스탭들이 여유 있게 1,000명분을 준비했었는데 오전에 다 동이 나 버렸습니다. 이튿날에는 더 여유 있게 해야겠다 싶어 2,000명분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시식을 위한 줄이 얼마나 길게 늘어섰던지 감당이 안 될 정도이더군요. 메뉴는 떡볶이와 잡채, 김밥이었는데 3일 내내 정말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브라질 대사관에서의 행사 때도 700명분의 예약을 받았었는데 500명이나 더 많은 손님들이 온 거예요. 결국 스탭들이 먹을 음식이 없어 라면과 밥으로 대충 때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남미인들은 한국 음식을 너무 좋아해요. 남미 음식이 단조로운 경향이 있다 보니 한식의 복잡미묘한 맛에 홀딱 빠지는 것이죠. 김치, 고추장, 된장 등 발효음식의 맛과 사용법을 교육한 것이 참 좋았습니다.
♣ 한식이 진정으로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무엇보다 물류 공급이 잘되어야 합니다. 캘리포니아는 한식 만드는 데 필요한 양념 종류가 거의 모든 지역에 다 공급되지만 시골에는 그렇지 못하죠.
그런데 요즘은 시골 동네에도 온라인 쇼핑으로 공급될 수 있어 너무 좋아요. 아마존 등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한국 기업들이 자리를 잡고 그 물품들을 배송으로 받아볼 수 있다면 그것보다 한식 세계화에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시골 시장에 물건을 입점시키는 것보다 전자상거래에서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즉석에서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의 개발도 필요할 것 같아요.
요즘 떡볶이 만드는 패키지, 김치 만드는 패키지 등이 출시됐는데 이런 상품들도 한식 세계화에 일조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이름 석 자를 넣은 건 아니지만 제가 참여하여 식품업체에서 만든 초고추장, 김치 등 여러 상품들이 여러 곳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급성 냉동으로 만든 냉동 쌈밥도 지금 연구 중이라 곧 출시될 거에요. 자연해동 하면 곧바로 먹을 수 있는 쌈밥 제품이죠. 각 나라 현지의 계량법은 어떤 것을 사용하는가를 고려한 한식 레시피를 전파해야 합니다.
미국 현지인을 위한 레시피를 그램 단위로 레시피화한 것은 정말 대단한 예산 낭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식을 예쁘게 차려서 현지인 친구들을 초대하는 정찬 기회가 많아진다면 여러분이 바로 한식 세계화의 홍보대사가 되시는 겁니다.
♣ 최근 한국 식당에 가보면 지나치게 맛이 짜고 달고, 모든 음식에 치즈를 얹는 등 근본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떤지 여쭤보고 싶네요.
한식은 역시 정성이고 마음입니다. 한식에서 가장 중요한 김치와 장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이처럼 우리 음식의 중요한 요소인 슬로우 푸드의 전통을 유지해야 하겠죠. 반찬이 한식을 망하게 한다는 말도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조화로운 반찬이 없다면 그게 어디 한식인가요? 전골이나 찌개를 대동소이하게 만들거나 소갈비도 매운 갈비로 만들어 돼지갈비와 별 차이가 없게 만드는 것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짠맛은 짠맛, 단맛은 단맛 등, 각기 다른 맛을 나름대로 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한국 음식은 어디인지 타이 음식과 비슷해진 것 같아요.
이러다가 우리 음식이 국적 불명의 음식이 될 것 같아요. 또한 한식은 건강에 좋은 음식이죠. 만병의 근원이 모두 음식에서 옵니다. 너무 지나치게 착색시키고 과한 화학조미료를 쓰는 등, 너무 맛에만 천착한다면 바로 그것이 한식의 기본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니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 요즘 미국 식당에 가면 김치를 넣은 데블드 에그(Deviled Eggs), 고추장 소스로 무친 튜나 타르타르(Tuna Tartar) 등, 한식의 요소를 살린 음식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동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테이크 위에 김치 소스를 올릴 수도 있겠죠. 순두부도 맛있게 끓인 후에 이를 차우더 식으로 믹서기에 갈아 핑크색으로 예쁘게 서빙할 수 있을 거에요.
이처럼 모양과 형태를 변형시키는 것을 분자요리라고 합니다. 낙지덥밥이나 김치볶음밥 등도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에서 예쁘게 다듬는다면 뭔가 새로운 퓨전 음식이 탄생할 수 있겠죠.
♣ 고급 한식 코스 요리 전문점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세요?
최근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하면서 톱 10 레스토랑을 들러봤는데 한식당만 없더군요. 한국 요리를 업스케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이고, 투자해서 남지 않는 장사하기 싫다는 얘기겠죠.
코로나 상황 하에서도 라스베이거스의 스테이크하우스는 예약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더라고요. 젊은 세대들 가운데 한식 전문가들이 양성돼 멋진 한식을 연출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저 자신도 여러 음식을 다 해봤지만 역시 한식이 최고입니다.
♣ 미국의 식재료를 가지고 한식으로 요리해봤더니 괜찮았던 식자재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각종 새싹(Sprouts), 작은 싹(Micro Greens)과 식용 꽃은 요리할 필요도 없고, 예쁘게 담아 아보카도와 함게 초고추장을 곁들이면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비빔밥으로 그만입니다.
젊은 한국 셰프들에게 주고 싶은 말씀은요?
젊은 셰프들이 너무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만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면서 한식은 모른다고 말들 합니다. 내 것을 모르면서 어떻게 남의 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려서부터 먹고 자란 우리의 맛이 최고라는 생각이에요. 그런데 내 것을 모르면서 유럽 음식만 좋아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해요.
♣ 선생님의 앞으로의 계획은요?
현지인들과 함께 하는 쿠킹클래스를 계속할 계획입니다.
제자들을 잘 양성하여, 그 제자가 또 제자를 길러내는 요리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치와 발효음식을 기본으로 한 클래스를 몇 차례 열었는데 너무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제자 백수진 씨와 함께 사찰음식, 궁중음식, 발효음식 클래스를 계속해나갈 예정입니다.
♣ 사찰음식이 한식의 세계화에서 차지할 비중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시는 건지요?
그럼요. 앞으로는 먹는 것으로 자기 건강을 지킨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달을 것입니다. 약으로 먹는 요리는 양념이 과하면 안 되거든요. 앞으로는 사찰음식과 같은 미니멀 음식의 비중이 커질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