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부침개』라고 하는 한 6분짜리 한국단편영화가 있다. 한 소녀가 창 밖으로 비가 오는 걸 보며 부침개 생각을 하게 되고 집에서 감자전을 해 먹으려고 하지만 감자전을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 결국 김치전을 만들어 먹는다.
강원도 사람들은 예부터 간식으로 감자전을 많이 부쳐 먹었다고 한다. 어느 부침개와 달리 강원도식 감자전은 반죽에 밀가루나 부침가루 등 그 어떤 것도 섞지 않고 감자만 갈아서 만든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때 강판에 갈아서 만든 감자 반죽의 변색이 살짝 걱정되면 물이 든 커다란 볼 위에 강판을 올리고 감자를 갈면 갈린 감자가 물속에 잠겨 색이 변하지 않는다.
지금 50대가 넘는 분들은 아마 대부분 가난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했을 것이다. 세끼를 다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았음은 물론이고 이밥이라고 불렸던 쌀은 구경하기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래서 어른께는 “진지 잡수셨습니까”, 친구들에게는 “아침 먹었니”, “밥 먹었니”가 인사로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낭만적인 면도 있었고, 건강식의 의미도 있었으나, 그땐 그런 개념일랑 존재조차 불가능한 시절을 경험했다.
보리밥, 강냉이밥, 찐 옥수수, 찐 감자, 감자전, 감자떡, 메밀국수, 밀가루국수 등이 지금에 와서는 얼마나 시골문화가 물씬 풍기는 건강식들인가. 그러나 불과 반세기전만에도 가난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주식의 대명사였다. 그래서 감자, 보리하면은 가난의 상징처럼 인식되었다.
지금 현재 우리들이 부쳐먹는 감자전은 생감자를 갈아서 부치지만 과거 강원도에서 만드는 토속 감자전은 감자를 썩혀서 만들었다. 여기서 우리 음식의 토속성을 볼 수 있다.
퀴퀴한 냄새가 나고 시커멓게 변질된 감자를 갈아 만드는 감자전이 얼마나 쫄깃하고 맛있는지 모를 것이다. 토속감자전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감자를 깨끗이 닦아서, 충분한 물에 담가 썩힌다 며칠 후. 감자껍질이 둥둥 뜨면 떠있는 껍질은 건져버리고 또 며칠을 둔다. 그러면 감자가 썩어서 풀어지기 시작하고, 풀어지면 체를 이용하여 약간 으깨주면서 걸러주면 덜 썩은 껍질과 찌꺼기들이 체를 통하여 걸러지고, 나머지는 물속에 가라앉아 계속 썩는다.
그 후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갈아주어야 하고 가라앉은 전분을 뒤적여 주며, 다시 가라앉으면 또 위에 썩은 물을 갈아주고 가라앉은 전분을 뒤적이면서 완전히 썩을 때까지 되풀이 해준다.
감자의 찌꺼기는 물을 따라 버릴 때 나가서 바닥에는 전분만이 남는다. 이 전을 부치면 된다. 옛날에도 감자 썩는 냄새가 독하여 개울가에서 몇날 며칠을 작업을 했다고 한다.
오래 묵히고 발효시키고 절여 시간으로 뜸을 들인 음식을 즐겨 먹는 것이 우리의 식생활 문화다. 하지만 어찌 일부러 썩혀 냄새가 나는 것으로 전을 부쳐 먹을 생각을 했을까.
감자를 썩히는 과정은 만드는 사람조차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저걸 어찌 부쳐먹을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그 결과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 끔찍한 냄새를 풍기던 감자는 훌륭한 맛으로 변신해 쫄깃하고 고소한 감자전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 서둘러야 먹을 수 있는 ‘감자전’ 날마다 먹을 수 없다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22회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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