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떼루아(terroir)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생산하는 식재료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역 식재료 맛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소비자에게 내 농산물을 소개한다면 우리는 어떤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
식재료 맛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은 매우 다양하다. 산지의 지리적 조건 및 자연환경에 의해 식재료의 맛과 풍미가 달라질 수 있고, 같은 재료라도 품종에 따라 다른 맛과 향을 지닌다. 또한 냉장, 냉동 및 가공기술에 의해 가공하는 과정에서 원재료의 맛과 질감이 달라지기도 한다.
식재료는 조리(요리)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맛과 다른 새로운 맛과 모양으로 재탄생하여 소비자를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식재료는 함께 요리되는 부재료나 사이드 음식.음료에 따라 그 맛과 풍미가 달라질 수도 있으며, 음식을 먹는 분위기나 재료를 생산한 농부 이야기나 음식을 만든 요리사들의 이야기 등도 식재료 맛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렇듯 지역마다 식자원을 둘러싼 다양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정리하는 것은 생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위의 다양한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개념은 바로 떼루아(terroir)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처음 들어보는 낯선 단어일 수 있다.
하지만 ‘향토음식’ 이라는 용어를 사전적으로 풀어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향토음식은 영어로 ‘local food(로컬푸드)’이다. ‘local’의 의미를 다시 찾아보면 ‘지역적인’, ‘현지의’, ‘어떤 지방 특유의~’ 라는 뜻의 형용사로 쓰이고, 주로 ‘장소에 관련된’ 의미로 많이 쓰인다.
즉, local은 지역, 지방, 영토, 땅을 나타내는 테러토리(territory)와 유사한 개념이기도 하며, 흙을 뜻하는 떼르(terre)의 파생어인 떼루아(terroir)와 매우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로컬(local)이나 떼루아(terroir)는 타 지역과 구별되는 지역 농산물의 차별화 원천으로서, 지역명이나 도시명과 같은 지리적 표시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브랜드로 활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보성녹차, 여주/이천쌀, 가평잣, 봉평메밀, 청양고추, 금산인삼, 성주참외, 의성마늘, 고창수박, 고흥유자, 통영굴, 보은대추, 상주곶감 등 지역 농산물 앞에 지역명이 표시되어 지역 농산물의 품질 특성이 그 지역의 독특한 지리적 특성에서 기인함을 표시하고 타 지역과 차별화됨을 나타내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농산물의 명성이나 품질 등이 특정 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 하였음을 인증하는 ‘지리적표시제도’를 도입하여 농산물과 수산물 및 그 가공품의 지적 재산으로 인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로컬(local)과 떼루아(terroir)는 곧 지역 농산물의 ‘브랜드’를 의미하며, 식재료 맛 체험 교육에서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 떼루아(terroir) 개념의 진화 : 유럽지역 사례
떼루아(terroir)는 원래 와인산업에서 주로 사용되어온 단어로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자연환경이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한 포도주의 독특한 향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최근에 와서는 유럽 지역 내 지리적표시보호(Protected Geographical Indication)나 원산지명칭보호(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등의 제도가 도입되면서 떼루아는 단순한 공간적 의미의 ‘지역’ 개념보다 더 크고 복잡한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농산물의 품질이나 맛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적 환경(지리적 위치, 토양, 기후 등) 이외에 인간(people), 역사(history), 기술(know-how), 그리고 명성(reputation) 등 인간적, 사회적 요소까지 포함한 확대된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리적표시보호제도는 생산물에 대한 단순한 품질인증을 넘어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부터 가공, 유통되는 전 과정(process)에 대한 품질 인증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지역 내 여러 관계자들이 품질인증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함께 나누고 이로 부터 발생하는 권리와 부가가치를 지역으로 다시 환원함으로써 ‘함께 잘 살아보자’는 공동체 의식이 바탕에 깔려있다.
이는 세계의 먹거리 정책 방향과 일치하는 것으로 개인 차원의 미각교육이나 식생활교육, 전통식품 인증, 명인 지정 등의 한계를 벗어나, 지역사회 공동체들의 파트너십에 기반한 식생활 교육, 향토음식 고유의 맛 보존 및 전수, 친환경농산물 생산, 로컬푸드 시장 형성(유통), 농업기술 노하우 보존 및 전수, 지리적표시등록 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지역만의 고유한 식(食) 자원의 근원과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공통된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