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남한에 이어 2015년 북한의 김장문화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오랜 기간의 분단되어 사회문화적으로 단절되어 있었음에도 남북한 사람을 정서적으로 통일시켜주는 것이 있다. 바로 김치다.
♣ 남북한 김치 역사
음식이 지닌 속성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에게는 저마다 특별하게 정서적 유대로 연결된 음식들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를 컴포트 푸드(Comfort food)라고 부르는데 개인의 경험과 상황이 모두 다르다 보니 컴포트 푸드의 종류는 개인마다 다르며 꼭 한 가지 음식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한국인에게는 유독 공통적으로 정서적 특별함을 제공하는 하나의 음식이 있으니 바로 ‘김치’이다. 원래 김치는 긴 겨울 동안 채소를 저장해두고 먹기 위해 고안된 음식으로 여러 문화권에 유사한 형태가 존재한다. 그런데 한국의 김치는 좀 유별나다.
식생활에서 김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타 문화권의 유사 음식과 확연히 다르다. 무미(無味)의 곡물인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은 밥, 국, 반찬이 한 상에 차려지는 것이 식사의 기본 구조이다.
이 반찬의 자리는 최소한 김치 하나만 있어도 필요조건이 충족되며, 심지어 국의 자리까지 물김치가 대신해 주기도 했다.
김치를 기본으로 하고 반찬의 수가 추가되는 형태이므로 지위고하,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매 끼니 밥을 먹을 때마다, 심지어 죽, 떡, 국수, 고구마 등 밥을 대신해 다른 음식을 먹더라도 반드시 김치가 동반되었다.
김치가 가장 기본적인 반찬이다 보니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 김장 때는 엄청나게 많은 양을 한꺼번에 만들어야 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김장김치는 한국인에게 반년양식(半年糧食)이었다.
다른 재료에 섞여 부수적으로 양념의 역할을 하는 된장, 간장, 고추장과 달리 하나의 음식으로써 완성된 맛을 지녀야 하고, 여성들만의 힘으로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같은 전통 발효식품이지만 그 성격이 달랐다.
많은 노동과 시간을 들여 가족 전체가 공동으로 김장에 참여하고, 나누고, 먹는 과정에서 공유할 수 있는 기억도 만들어졌다.
한국인이라면 김장 때 심부름하다가 김치 양념소를 잘 바른 노란 배추 고갱이를 얻어먹던 즐거움, 끝나고 가족들이 모여 먹는 수육과 막걸리, 어두컴컴한 겨울밤 손을 호호 불며 땡땡 언 땅속에 묻힌 김칫독에서 김치를 꺼내던 기억, 도시락 반찬으로 싸간 김칫국물이 새는 바람에 겪었던 곤란했던 경험을 누구나 한 가지 쯤 가지고 있다.
김치를 매개로 저마다 삶의 이력에 깃든 특별한 사연과 과거의 파편 속에서 공감대가 존재한다. 어릴 때부터 김치를 먹으며 자라 온 한국인에게 김치는 삶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군내 나는 김장김치가 물릴 때쯤 금방 버무린 봄동겉절이의 상큼함, 한여름 땡볕에서 땀을 흘린 후 먹은 열무김치로 만든 국수의 칼칼함, 한겨울 뜨거운 온돌방에서 군고구마와 함께 먹는 살얼음 낀 동치미의 찡한 맛, 오랜 외국 체류 뒤에 먹은 김치의 개운함 등은 단순한 미각을 넘어 한국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페이소스(Pathos)이다.
김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동일한 음식을 뜻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처럼 김치는 음식을 뛰어넘어 개개인의 기억과 인생은 물론, 한국인 서로 간의 삶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이다.
사실 김치는 지역, 기후조건에 따라 사용하는 재료가 달라지고, 또 집집마다 기호에 따라 재료를 가감하기도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구할 수 있는 갖가지 채소로 만들 수 있는 김치 종류만도 몇 백가지나 되며,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이 넣는 부재료가 달랐기 때문에 한국인이 머릿속에 각자 담고 있는 김치의 구체적 형태는 천차만별이다. 김장 배추김치 하나만 보더라도 조리법이 각양각색이다.
게다가 담그는 사람의 손맛에 따라 익히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유산균의 조성이 달라져 맛이 변화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엄마의 수만큼이나 다른 맛이 난다. 조리법을 그대로 따라 한다 해도 그 맛을 그대로 재현해 내기가 쉽지 않다.
어릴 때부터 먹고 자라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혀에 기록된 제각각의 조리법을 통해 오히려 엄마, 할머니, 가족, 고향, 고국이라는 공통의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집에서 담근 김치는 한국인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경험하며 일생을 함께하는 맛의 원형이 되었고, 한국인의 삶과 정서가 다양한 형태로 그 속에 녹아 있다는 점에서, 김치는 개개인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유사한 기억을 가진 한국인 서로를 결속해 준다.
그래서 김치와 김장문화는 남북한을 아울러 특별한 정서적 연대감과 민족적 동질감을 상기시키는 가장 좋은 소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