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퓨전요리

♣ 공공에서 지역과 민간으로 변화

최근 들어 국제 문화 교류를 주도하는 주체가 변하고 있다. 초기에는 수직적 구조로 이루어진 공공 영역에서 일방적인 문화의 전파와 홍보 위주였다.

이제는 지역과 민간이 수평적 네트워크 관계를 바탕으로 상호 존중과 이해, 협력을 중요한 목적으로 하는 교류 확산의 주체가 되었다. 변화된 국제 문화 교류 환경은 세계인들에게 각 나라의 흥미로운 문화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었다.

연구팀은 각 나라의 현지에서 자발적으로 김치문화의 교류 확산이 가능한 지역과 민간을 세계화 네트워크의 거점으로 선정해서 지원하였다. 그동안 지원한 지역과 민간의 성과를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 지역의 공동체 KBCE의 열정

첫 번째 사례는 지역의 공동체가 주체가 되어 김치문화 확산 행사를 직접 운영하는 경우다. KBCE (Korean British Cultural Exchange)는 영국에서 한국 문화를 교류하기 위해 설립된 민간 비영리단체이다.

이곳은 김치 축제, K팝과 전통음악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 문화를 영국에 알리고 있다. 이러한 활동으로 영국인들이 느끼는 두 나라의 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지속적인 교류를 활성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활동이 상호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공동체 정신으로 자리 잡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는 KBCE가 유럽 내 특히 영국에서 김치와 김장문화 확산을 주도적으로 활동하도록 조사·연구, 기획, 자문 등 지원을 통해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KBCE가 있는 뉴몰든(New Malden)은 영국 런던 남서부에 위치한 킹스턴 어폰템스 왕립 구와 머턴 구에 걸쳐있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해소하기 위한 중동 건설 진출과 다수의 주재원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삼으면서 이주가 집중되었다.

이렇게 한인공동체의 기초가 마련되면서 ‘리틀 코리아(작은 한반도)’로 불리게 되었다. 이곳은 약 2만 2천 명이 넘는 한국 동포가 살고 있어 ‘뉴몰동’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고 있다.

뉴몰든의 코리아타운은 이주 배경이 서로 다른 남한 이주민, 북한 난민, 재중 동포 세 집단이 모여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사회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역사적 혼란 속에서 서로 다른 정치, 이데올로기, 사회적 계급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떠나 같은 공간에서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이유는 서로 나누고 공유했던 김치와 김장문화라는 조상부터 이어온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KBCE는 독특한 사회적 공간에서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김치와 김장문화를 주제로 ‘킹스턴 코리아 페스티벌’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후 킹스턴 코리아 페스티벌과 부대행사를 하나로 이어 묶은 ‘김장 프로젝트’는 사회적 공동체의 가치를 인정받아 영국 복권기금(The National Lottery Heritage Fund)이 지원한 최초의 한국 문화 관련 프로젝트가 되었다.

KBCE는 작년에 진행한 김장 프로젝트의 성과를 바탕으로 9만 7천 파운드(한화 약 1억 4천만 원)를 지원받았다. 연구팀은 현장조사 기록과 구술 채록 방법, 조리법 감수 등에 대한 자문을 비롯해서 뉴몰든 지역 조사 결과와 다른 권역의 김치문화를 비교하는 연구에도 공동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KBCE는 뉴몰든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남한, 북한, 재중 동포들을 대상으로 2019년 2월부터 9월까지 배추김치를 비롯해서 유채김치, 수박김치, 고수김치, 오징어백김치, 장밑에김치(중국 연변에서 장아찌 만들 때 채소를 아래 깔고 장을 덮기 때문에 붙은 토속어) 등 21개의 김치 조리법과 그들이 기억하는 김치와 김장문화에 대한 추억을 기록해서 『21 authentic KIMCHI recipes』를 발간하였다.

이렇게 엮어진 그들의 김치문화 이야기는 영국 킹스턴 역사박물관에 기록물로 영구 보관되어 있다. 이 책은 영국 현지 도서관과 공공기관에 배포되어 현지인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