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와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에서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받은 것은 한국의 김장문화가 보존가치를 지니는 인류 보편적 문화라는 점에 대한 국제적 인증을 받은 셈이다.
한국인들의 경우 김장이 겨울철에 공동으로 먹거리를 장만하기 위한 대중적인 문화현상이며, 김치라는 것이 약 3000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화하면서도 지속되는 가운데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생성시켜 왔다는 점에 대해 인정받은 것이다.
김장 문화의 탄생 배경은 일찍이 한반도에 정착하여 농경문화를 형성한 우리 조상들이 혹한기를 대비해 가을까지 농사지은 곡식과 채소류를 저장 하는데서 시작됐다.
특히, 채소조직이 물러지지 않고 발효가 잘 이루어지게 하려면, 공기와 부패세균의 침입을 막고, 발효 중 생기는 탄산가스를 적정량으로 배출하여 김칫국물의 탄산 맛을 알맞게 유지시킬 수 있는 저장용기 제조기술도 뒷받침되어야 했다.
한국의 김치가 다른 문화권의 발효채소들과 달리 상차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점이 한반도에서 김치라는 독특한 형태의 발효음식이 만들어지고 김장이라는 공동체 문화가 형성 . 전개되는 데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한국인의 밥상은 ‘밥과 국, 김치’로 대변된다.
* 김치는 찬거리 걱정 없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반찬이 되어 주었다.
백지(白紙) 성격의 밥은 어떠한 반찬과도 짝을 이룰 수 있지만,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곡물밥의 소화를 돕는데는 염분이 필수적이다. 동물성 식품은 그 자체로 나트륨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육류나 해산물을 주로 섭취하는 문화권에서의 반찬과는 비중이 다르다.
또, 퍽퍽한 밥알을 넘기기 위해서는 소금기나 국물이 필요하다. 김치는 생채소를 그대로 발효시키되 국물의 함량이 높고, 아예 국물 위주로 섭취하는 물김치도 존재한다.
무슨 뜻이냐 하면 복잡하게 불을 쓰는 조리를 하지 않고도 간단하게 상을 차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땔감 걱정, 찬거리 걱정 없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반찬이 되어 주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환상의 짝궁인 김치는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 채소를 수확하여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김장은 11월~12월 사이 약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집약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물자가 풍족하지 못했던 전통시대엔 밥과 김치가 전부였으므로 양식의 절반이란 의미에서 반 양식이라 불렸고, 그러다 보니 4~5개월간 먹어야 할 김장의 양은 어마어마 한 규모가 될 수밖에 없었다.
김장은 가장 큰 가정행사 중 하나로 가장은 가장대로, 주부는 주부대로 걱정과 스트레스가 있었다. 자연스레 노동을 나누어 하는 김장공동체가 형성되면서 김장 후에는 김치를 통해 감사와 정을 나누는 김장문화도 만들어졌던 것이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도시화와 산업화가 가속화되자 전국 단위로 일시에 진행되는 김장은 가정이나 마을 단위를 넘어서 정부당국의 특별관리 대상이 되었다.
배추를 비롯한 김장 재료의 수급대책, 김장쓰레기 처리문제, 김장자금 유통을 위한 보너스 지급, 김장공설시장 개설, 일기예보를 통한 김장기후 예측서비스 등이 월동대책이라는 명목하에 진행되었던 적도 있다.
1990년대 이후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김장인구가 감소하면서 김장풍속은 또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먹거리가 풍부해지고 서구화되면서 김치는 더 이상 밥상 위의 반양식이 아니다.
그런데도 21세기로 접어들어 고도의 산업화 시대를 사는 지금 우리는 여전히 농경문화 전통에서 탄생한 김장과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평소 편하게 김치를 사먹다가도 김장철이 되면 손수 만드는 사람도 있고, 김장철 주말이 되면 때 아닌 귀성차량들로 길이 막히는 현상도 목격된다.
스스로 김장을 하지 않고 가족의 김장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조차 재료비, 수고비를 부담하며 손수 만든 가족표 김장김치를 배달하기 위해 택배회사는 분주해진다. 그 때문에 김장김치를 손수 담아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는 어머니들에게 김장김치 배분이라는 새로운 권력도 등장하게 되었다.
이 모두가 한국인이라면 여전히 김치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며, 아직은 우리의 입맛이 획일화된 상품김치보다 엄마의 사랑과 정을 느낄 수 있는 김장김치에 강한 향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김장 신풍속도 김장김치를 독립적으로 만들 수 있는 현재 평균 50~60대인 가정주부가 가사일에 종사할 수 있는 기간인 향후 10~20 년이 지나고 나면 또 어떤 식으로 변해 갈지 모른다.
♣ 김장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옛날 농경사회 였던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에 신선한 채소를 먹기 어려웠다. 그래서 추운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김장을 했다.
주부들은 배추, 무를 비롯해서 소금, 고춧가루 등 부재료를 정성껏 준비해야 했고 남자들은 김칫독을 땅에 묻거나 김치광을 만들어 많은 양의 김치를 저장할 곳을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요즘 김치 소비량이 줄고 김장을 직접 담가먹는 가정이 줄어들고 있다.
* 김치냉장고가 생기기 전 김치를 보관하던 김치광의 모습이다.
이러다 김장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시화, 서구화, 상업화 시대에도 한국인들은 가정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거나 친척들이 정기적으로 제공해 주는 김치를 먹고 있다. 이는 김장이 현대사회에서도 가족 공동체를 결속 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최근의 김치냉장고는 김칫독과 김치광의 역할을 한다.
김장문화가 사라진다기보다 요즘에 맞는 모습으로 변한다는 쪽이 맞을 것이다. 김치냉장고가 김칫독과 김치광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고, 다양한 부식들 때문에 김치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김치와 김장이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문화가 다양화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옛날 고유함은 덜하지만 대신 세계 모든 사람들이 김치를 맛보며 사는 세상을 살고있다. 더 중요한 한가지는 김치와 김장의 모양새는 변해도 그 집안 고유의 김치 맛은 여전히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