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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6. 똑똑한 김치가 우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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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김치가 예술이라고?

김치는 여러 가지 재료가 버무려져 새로운 맛을 내는 음식이다. 배추, 무, 고추, 마늘, 파 등 여러 가지 식물성 식품과 새우젓 등 동물성 식품이 어울려 조화로운 맛을 낸다.

김치는 각 음식 재료의 고유한 특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 어울리는 새로운 맛을 내는 건강한 채소발효식품이다. 어울림의 아름다움을 음악에 빗대어 보자. 오케스트라 연주의 경우, 하나의 곡을 함께 연주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악기가 각자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트럼펫, 팀파니 등이 소리와 생김새는 다르지만 하나의 곡을 연주한다. 각 악기는 저마다 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어울리려고 애쓴다. 악기마다 다른 악보가 있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곡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느 하나 튀어서도 안 되지만 자신의 소리를 잃어 서도 안 된다. 바로 김치가 그렇다. 각 재료 본연의 맛은 살리지만 어느 하나가 강해서도 안 된다.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고, 고춧가루, 마늘, 파 등의 재료가 섞여 맛이 어우러진다. 발효가 맛의 어울림을 돕는다.

고춧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마늘의 맛을 가리면 김치의 참맛이 나지 않듯이 김치는 어울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식이다. 서로 어울려서 조화를 이룰 때 예술이 된다. 따라서 김치는 어울림의 예술 작품인 것이다.

김치 담그는 법의 변천

* 김치는 각 음식 재료의 고유한 특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 어울리는 새로운 맛을 내는 건강한 채소발효식품이다.

모나지 않고 둥글게 어울리는 김치의 어울림은 세계 평화 전달자 노릇도 톡톡히 해낼 수 있다. 단일 민족 국가인 우리나라도 점점 미국, 중국, 프랑스 처럼 다 민족 국가,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거리에는 부쩍 한민족과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우리나라 사람들도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쉽게 만 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더는 어느 민족이냐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한민족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데,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음식이다. 외국에서 온 며느리가 한국 시어머니와 김치를 담그면서 맛을 이해하면 서로에 대한 배려도 늘어 나게 된다.

김치는 한데 버무려져 서로 섞이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김치의 특성처럼 여러 민족과 인종이 어우러진다면 세계 평화도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김치가 평화를 널리 퍼뜨리는 전달자가 되어 김치 안에서 화해와 평등을 이룰 날을 기대해 본다.

■ 속이 꽉 찬 김치 이야기

♣ 김장에 대한 조선시대 남성들의 관심

왜 조선시대 남성들이 김장에 관한 시를 많이 남긴 것일까? 여성의 소임으로 해결되는 다른 집안일들과 달리 김장은 집안 차원에서 의미와 비중을 가진 일이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있다.

조선시대의 김장 모습이 비교적 자세히 드러난 글들을 통해 전통시대 김장을 살펴보자. 구체적인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김장문화의 흔적은 단연 이규보(李査報, 1168~1241)의〈가포육영(家圃六詠)〉이 가장 앞선 것으로 보인다.

“장을 곁들이면 여름철 3개월간 먹기 좋고[得醬尤宜三夏食]소금에 절여 9달 겨울을 대비한다[淸監堪備九冬支]”는 내용을 통해 제철 무를 저장하여 먹는 풍속의 존재를 알려줌으로써 김치가 채소저장을 위한 방법이었음을 알려준다.

이보다 구체적인 김장의 모습을 담은 글들이 조선시대 남성 문인들의 기록에서 많이 나온다. 남성 문인들이 김장에 관해 남긴 기록이 적지 않다는 것은 의외이기도 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19세기 기록인《농가월령가(農家처令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등에 김치에 관한 기록이 있지만 이는 풍속의 기록을 목적으로 쓴 글들이기 때문에 당대 10월의 보편적인 세시풍속을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의 소소한 감상들을 담은 시문(詩文)의 주제로 김장을 다룬 것과는 차이가 있다.

김장蓄菜(축채)

十月風高肅曉霜 시월이라 바람은 거세고 새벽에 서리가 내리니
園中蔬菜盡收藏 울에 가꾼 소채 모두 거두어 들였네
須將旨蓄禦冬乏 맛있게 김장 담가 겨울철 궁핍함을 대비하니
未有珍羞供日甞 진미를 차려 올리지 않지만 매일 맛볼 수 있네

『양촌집』 제10권 <축채蓄菜>, 권근權近(1352~1409)

[겨울나기 김장 김치]

急時爭洗蔓菁菜 때가 다급해지니 씻어둔 순무채로
擬作經冬旨蓄來 겨울 지낼 김장김치 만들어 가지고 오다

『현주집玄洲集』 卷4 <촌계추일즉사村溪秋日卽事>, 조찬한趙纘韓(1572~1631)

조선 초기의 학자인 권근의 시에는 전통적인 김장 기간인 음력 10월 입동(立冬)이 되자 추위를 대비해 채마밭의 소채를 거두어 김장을 하고 이를 매일 반찬으로 먹었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어 조찬한의〈촌계추일즉사〉에서는 더 추워 지기 전 김장김치를 장만해야 하는 다급함이 드러난다. 한편, 다음 글에서는 긴 겨울을 충분히 날 수 있을 정도의 김장 비축 분량 마련에 대한 염려와 소용되는 김장 재료 마련에 관한 걱정을 읽어낼 수 있다.

[김장용 재료 마련]

渚田豐萊葍 밭田에 무우 풍년드니
今冬菹眞廉 올 겨울 김장이 참 싸겠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卷9「 아정유고雅亭遺稿」, 이덕무李德懋(1741~1793)

[김장용 재료 마련]

蓄菹先雪下 눈 오기 전에 김치를 저장해 두고
括葉待霜餘 잎을 동여매어 뒤에 올 서리 대비 한다
『금릉집金陵集』 卷4 <둔촌즉사遁村卽事>, 남공철南公轍(1760~1840)

[김장용 재료 마련]

三冬旨蓄猶堪繼 3개월 겨울은 김장김치로 마땅히 견디어 가야하니
門外菁菘數畒田 문 밖 무배추가 몇 이랑 인고

『존재집存齋集』 卷18 <설후雪後>, 박윤묵朴允默(1771~1849)

박윤묵의 시〈설후〉는 3개월 겨울기간을 나기 위해 원료로 쓸 포전의 무와 배추의 양을 가늠하는 내용이고, 이덕무의〈아정유고〉에는 무 농사가 잘되어 김장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안도의 내용이 나온다.

남공철의 시〈둔촌즉사〉는 눈이 오기 전 서둘러 김장 갈무리를 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 조선시대 김장의 시기가 입동(양력 11월 7일 전후)과 소설(양력 11월 22일 전후) 사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시대 김장은 재료들이 추위에 얼기 전인 음력 10월 입동부터 시작하여 본격적 추위가 닥치기 전인 소설 사이에 이루어 졌으며, 다른 반찬이 있더라도 집집 마다 장만해야 하는 가정 행사였다.

조선시대 김장

* 조선시대 김장은 재료들이 추위에 얼기 전인 음력 10월 입동부터 시작하여 본격적 추위가 닥치기 전인 소설 사이에 이루어졌다.

긴 겨울을 충분히 날 수 있을 정도의 양을 준비해야 하기에 김장에 필요한 재료의 작황도 신경써야 할 숙제였고,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변화로 날짜를 잡는 것에 대한 애로, 짧은 시간에 재료를 손질해야 하는 어려움, 김장 사전계획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조선시대 남성들이 남긴 글이지만 김장거리에 관한 걱정 혹은 김장 후의 안도감을 드러내는 내용을 통해 겨우살이를 버티기 위한 양식을 마련하는 데 기울였던 가장의 관심 정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와 같이 가장인 남성이 안고 있던 김장에 대한 부담감, 김장을 끝냈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마음의 풍요로음은 근현대를 거치며 사회환경의 변화로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까지 지속되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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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농촌진흥청 •농사로 •Rda 인트라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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