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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5. 강진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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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차 나무 재배에 유리한 땅

♣ 갈수록 푸른 향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차(茶) 가는 맷돌을 준 사람에게 사례하다(謝人贈茶磨)」에는 녹차를 ‘갈수록 푸른 향기’ 로 표현하여 녹차 특유의 향긋함을 전해주고 있다.

돌 쪼아 바퀴 하나 이뤘으니 琢石作孤輪

돌리는 덴 한 팔을 쓰누나 廻旋煩一臂

자네도 차를 마시면서 子豈不茗飮

왜 나에게 보내주었나 投向草堂裏

특히 내가 잠 즐기는 걸 알아 知我偏嗜眠

이것을 나에게 부친 거야 所以見寄耳

갈수록 푸른 향기 나오니 硏出綠香塵

그대 뜻 더욱 고맙네 그려 益感吾子意

전라남도 강진군에는 ‘갈수록 푸른 향기’가 되기 위한 차나무가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강진은 전라남도 서남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연평균 기온 13.5도로 차나무 생장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세종실록』의 지리지에 처음 기록되어 있는 오랜 전통의 <강진녹차>, ‘갈수록 푸른 향기’를 향한 여정에 올라보자.

01_ 차 나무 재배에 유리한 땅, ‘강진’

강진군은 원래 백제시대의 도무군 지역인 도강과 동음현 지역인 탐진이 영합된 지역으로 도강(道康)의 “강(康)”자와 탐진(耽津)의 “진(津)”자를 합해 강진(康津)이라 호칭되었다. 강진은 전라남도의 서남부 해안에 위치하며 편상 화강암, 신라층군 등 여러 가지 지질로 복잡 하게 구성 되어 있다.

월출산(809m), 만덕산(409m), 보은산(439m), 덕룡산(433m), 수인산(,561m) 등 풍광이 뛰어난 산들도 많으며, 이러한 산 이 솟아 있는 곳 외에는 대체로 낮은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남해안에 면해 있고 난류의 영향으로 매우 온난한 해양성 기후를 나타내며, 강수량도 많으며 위도 34.9도, 연평균 기온 13.5도로 차나무 생장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차나무는 강진군의 곳곳에서 자생하고 있다.

강진군 행정지도
▲ 강진군 행정지도

02_ 역사 기록에 나타난 <강진녹차>

차의 역사적인 생산지에 대해서는『세종실록』의 지리지에 적힌 것이 처음이자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이는 각도 군현에서 올리는 토산품 중에서 차를 진상한 내역이 있는데 이로써 그 때 당시의 차 재배지를 파악할 수 있다. 지리지에 적힌 산지는 경상도의 8개 군현, 강진현을 포함한 전라도의 27개 군현으로 다음 표와 같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차 생산지
▲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차 생산지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작설차가 강진현의 토산으로 차가 난다고 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차 생산지

土宜五穀,

橘、石榴、桑、楮、莞。

土貢,

狐狸皮、黃毛、芝草、雀舌茶、

全鮑、常藿、蔈膏、石茸、榧子、漆。

藥材,

麥門冬、人蔘、鹿茸。

土産,

銀口魚、簜。

토의(土宜)는 오곡과 귤·석류·뽕나무·닥나무·왕골이다. 토공(土貢)은 여우가죽·삵괭이가죽·족제비털·지초·작설차·전복·상곽(常藿)·표고·석·비자·칠이요, 약재(藥材)는 겨우살이풀뿌리[麥門冬]·인삼·녹용이요, 토산(土産)은 은어·왕대다.

▲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차 생산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토산으로 차가 난다고 하였으며, 조선후기에 강진은 조선 차 문화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것은 아암 혜장 및 유배 온 다산 정약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1481년 초간, 1530년 신중)

【토산】인삼ㆍ지치[紫草]ㆍ석류ㆍ유자ㆍ송이ㆍ표고버섯ㆍ차ㆍ비자ㆍ감태(甘苔)ㆍ김ㆍ매산(苺山)ㆍ황각(黃角)ㆍ은어[銀口魚]ㆍ오징어ㆍ낙지ㆍ조개ㆍ소금ㆍ숭어ㆍ우뭇가사리ㆍ참가사리ㆍ전복ㆍ굴ㆍ홍합ㆍ안식향ㆍ자연동(自然銅)ㆍ꿀ㆍ미역ㆍ대, 죽전(竹箭) 남쪽 바다 가운데 15리에 있는 죽도(竹島)에서 나온다.『신증』 방풍(防風)ㆍ해삼ㆍ황어(黃魚)

▲ 신증동국여지승람(1481년 초간, 1530년 신중)

이외에도 동국여지승람, 고사촬요,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대동지지, 조선팔도기요 등에도 강진에서 차가 생산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후기 19세기 초, 강진에서 생산되는 차에 관한 기록들 중에서는 차 생산지와 생산자를 알 수 있는 기록들이 보이고 있다.

이규경(李圭景)의『오주연문장전 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속「도차변증설(荼茶辨證說)」에 이규경은 19세기 초 조선에서 이름난 삼대명차로 영남의 대밭에서 대숲속 이슬을 받고 자란 죽로차(竹露茶), 밀양 아동산(衙東山)의 밀성차(密城茶)와 함께 강진 만불사의 만불차(萬佛茶)로 꼽았다.

만불사는 강진 만덕산 백련사를 가리킨다. 만불차는 찌고 말려서 덩이를 만드는 제다법을 다산이 가르쳤다고 하고 있다.

만불차란 이름을 통하여 차에 이름을 붙일 때 제조하는 곳의 지정학적 이름을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불교사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작은 떡덩이로 만든다는 ‘작소병자(作小餠子)’에서 차의 형태와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今茶之爲名者。出於嶺南竹田。名以竹露茶。出於密陽府衙後山麓産茶。名密城茶。嶠南康津縣。有萬佛寺出茶。丁茶山鏞謫居時。敎以蒸焙爲團。作小餠子。名萬佛茶而已。

오늘날 차로 이름난 것은 영남의 대밭에서 나는 것을 죽로차(竹露茶)라 하고, 밀양부 관아 뒷산 기슭에서 나는 차를 밀성차(密城茶)라 한다. 교남(嶠南)강진현에는 만불사(萬佛寺)에서 나는 차가 있다. 다산 정약용이 귀양가 있을 때, 쪄서 불에 말려 덩이를 지어 작은 떡으로 만들게 하고, 만불차(萬佛茶)라 이름 지었다.

▲ 오주연문장전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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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한국정보화진흥원(NIA) •한국식품연구원(KF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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