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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3.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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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차(茶), 어떻게 시작됐을까?

♣ 아는 만큼 보이는 전통의 향과 풍미

전 세계인의 기호식품이 된 차(茶)! 그중에서도 녹차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차로서 문화적으로나 식품영양학적으로 많은사람들이 애호하는 차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보성과 강진의 인기 녹차들을 만나보기에 앞서, 일반적인 차의 유래와 기능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아는 만큼 보이는 차의 세계에 눈떠 보자.

1. 차(茶)의 어원을 소개합니다

차(茶)의 사전적 개념은 ‘차나무의 어린잎을 따서 음료로 가공한 제품’을 의미한다(두피디아, www.doopedia.co.kr). 한국어 사전에는 ‘① 차나무의 잎을 따서 만든 음료의 재료 ② 잎, 줄기, 뿌리, 열매 따위를 가공하여 달이거나 우려서 마시는 음료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③ 차나뭇과에 속한 상록 관목’으로 정의하고 있다.

2. 차(茶)의 기원을 찾아서

차나무의 기원은 인도기원설, 중국기원설 등 여러 학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차나무의 원산지를 ‘중국’ 에서 찾고 있다.

중국 서남지방, 운남성(雲南省)과 귀주성(貴州省)에 걸쳐있는 ‘운귀고원(雲貴高原)’에 야생 차나무들이 즐비하게 자라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진원(镇沅) 천가채(千家寨)의 ‘2700년 원시형 야생 차나무’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로는 이곳 주변의 차나무들의 형질변이의 폭이 적은 점을 들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식물유전학에서는 형질변이의 폭이 적을수록 그곳을 원산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진원 천가채의 2700년의 원시형 차나무
<진원 천가채의 2700년의 원시형 차나무>

3. 차엽(차나무 잎, 茶葉)의 세 가지 이용방법

차나무의 잎은 이용방법에 따라 약용, 식용 및 음용의 형태로 시대에 따라 변화 발전하였다.

1) 약으로서의 차_ 약용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의 기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설이 전해진다. 신농본초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물학 전문서적으로서 365종의 약물이 수록되어 있으며 약물마다 성미와 약효, 별명과 산지 등을 자세히 수록해 놓은 생약학 서적이다.

신농은 백가지 풀을 맛보고 어느 날 72가지의 독에 중독되었으나, 차를 씹어 먹고 해독되었다.

神農嘗百草 日遇七十二毒 得荼而解之

신농본초경 외에도 차의 성질과 약리적 효능에 대해 기술하며 차가 감기, 풍한, 설사 등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좋은 양약(良藥)이라고 기록한 의약전적도 있으며, 지금까지도 차는 수십 년 묵은 차에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어 민간약으로 이용되고 있다.

육우『茶經』에는 神農이 지은『食經』을 인용하여 “차를 오래 복용하면 사람이 힘이 나고 기분이 즐거워진다”라고 했고, 『本草』木部에는 “茗은 쓴 차이다.

맛은 달고도 쓰며, 차지만 독은 없다. 부스럼을 다스리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가래, 갈증, 몸의 열을 없애고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적게 한다”라고 차의 효능을 기록하였고, 東漢의 명의 華陀의 『食論』에서도 “쓴 차를 오래 복용하면 생각을 이롭게 한다”라고 전하고 있다.

2) 음식으로서의 차_ 식용

차가 식용으로 이용된 기록을 살펴보면 西晋의 張輯은『廣雅』에서 “荊州와 巴州 사이에서는 차 잎을 따서 떡 모양으로 만든다. 쇤 차 잎은 미음을 쑨 것으로 떡을 빚는다” 라고 기술하였다.

동진의 유명한 학자 곽박(郭璞, 276~324)은『爾雅』의 주석에서 이르기를 “차나무는 작고 치자나무와 흡사하며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찻잎은 국으로 끓여 마실 수 있다. 지금은 일찍 채적한 것을 茶(차)라고 하며 늦게 채적한 것을 茗(명)이라고 하며 혹은 荈(천)이라고도 한다.

蜀(촉) 지역 사람들은 이를 苦荼(고도)라고 부른다(樹小似梔子, 冬生, 葉可煮羹飮. 今呼早取爲茶, 晩取爲茗, 或一曰荈, 蜀人名之苦荼)” 고 했다.

서진의 부함(傅咸, 239~294)이 내린 <사예교(司隸敎)>에 의하면 촉 지역 할머니가 洛陽(낙양) 南市(남시)에서 차죽을 팔았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南市에 찻죽을 파는 蜀고장 할머니가 있는데, 염탐꾼이 기구를 깨뜨려버렸다고 하더라(聞南市有以困蜀嫗作茶粥賣, 爲簾事打破其器具)”는 내용이 있다.

사예교에 나타난 차죽은 차를 걸쭉하게 끓인 죽을 말하며 차죽에 관한 기록은 唐代 양화(楊華, 856)의<선부경수록(膳夫經手錄)>에도 나타나는데 오나라 사람들은 차 잎을 채취하여 끓여먹었으며 그것을 명죽(茗粥)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3) 음료로서의 차_ 음용

차를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으나 『화양국지(華陽國志)〈巴志〉에는 주나라 이전을 음차의 기원시기로 보고 “3천여 년 전 이미 파촉인(巴蜀人)이 주나라 왕실에 차를 포함한 여러 가지 물품을 貢品으로 올렸다”고 기록하였으며, 촉지(蜀志)에는 “사천십방현(四川什邡縣) 산에서 좋은 차가 나온다”, “남안(南安)과 무양(武陽)에도 모두 名茶가 난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는 宋나라 王觀國의 《學林》에 “《周禮》에 ‘荼掌’은 차를 모아서 喪禮에 제공하는 일을 맡아 본다”라고 한기록이 있다. 이 내용만으로도 周代왕실의 음다 풍속을 짐작할 수 있으며, 周代에 이미 喪禮에도 차가 이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차가 상품으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으로 기록하고 있다. B.C. 59년 前汉의 王褒가 만든 노비 매매계약서인《僮約》에 “武陽에서 차를 사온다, 다구를 갖춰 놓는다”라고 한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西漢말기에 巴蜀地方에는 이미 차가 藥用이나 食用이 아닌 飮用으로 이용되고 있었다는 기록과 漢代에 이미 사대부들의 애호음료로 시장에서 매매가 이루어졌을 만큼 상품으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 飮茶 관련기록에 의하면 삼황시대를 시작으로 周初, 秦, 漢, 東晋 등으로 학자마다 문헌상의 이견을 보이지만 飮茶기원 시기는 화양국지 파지에 나타난 周代이전 시기로 보인다.

육우는『茶經』<六之飮>에서 “울분을 덮어버리려면 술을 마시고 , 혼미함을 흩어지게 하려면 차를 마셨다”라고 했고, <七之事>에서는 神農· 周公旦· 晏嬰· 丹丘子 등의 飮茶人을 열거하면서 차 역사는 “神農에서 비롯되어 魯周公에게서 널리 알려졌고(茶之爲飮 發乎神農氏 聞於魯周公), B.C 200여년 전 周公旦의《爾雅·釋木篇》에 가장 오래된 차 관련 기록이 있으며, 漢代에 이미 차를 마셨다”고 기록했다.

한대를 이어 위진남북조시대가 되면, 차를 마시는 풍습이 장강의 중류와 하류까지 전해지고, 차는 일상음료서 뿐만 아니라 宴會・接待・祭祀에도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남북조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한 隋의 文帝가 그를 괴롭힌 두통을 차를 마셔 해결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수나라는 역사가 매우 짧았기 때문에 차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당대에는 차가 더욱 보급되어 대도시에서는 집집마다 차를 마실 정도였으며, 송대에는 차가 중국 전역에 보급되고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로 마시게 되어 차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다경 이지구(二之具) 茶具 그림
<다경 이지구(二之具) 茶具 그림>

『다경茶經』은 당대의 문인 육우(陸羽, 733~804)가 차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세계 최초의 차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으로 상, 중, 하 총3권의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 중기 이후 차는 음용으로 자리 잡으면서 육우에 의해 규범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으며, 하나의 차 문화로서의 영역을 굳히게 되었다.

다경 사지기 (四之器) 茶器 그림
<다경 사지기 (四之器) 茶器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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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한국정보화진흥원(NIA) •한국식품연구원(KF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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