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의 특징은 오래 보관하더라도 변하거나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고 두고 꺼내 먹을 수 있는 맛좋은 음식으로 기나긴 세월동안 한국인의 밥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영광굴비가 그만한 내력을 갖게 된 데는 몇 가지 특별한 비결이 존재한다.
♣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영광지역
먼저, 굴비의 명산지인 전라남도 영광 지역이 갖고 있는 자연환경의 우수성을 들 수 있다. 영광지역은 굴비의 원재료인 조기 어장이 발달한 지리적 조건에다, 잡은 고기를 잘 건조시킬 수 있는 해풍과 염장에 적합한 천일염이 생산되는 천혜의 환경적 여건을 지니고 있다.
최상의 굴비를 만들 수 있는 이러한 자연환경 덕분에 예로부터 맛좋은 굴비를 생산하는데 영광 지역만한 곳이 없다고들 입을 모았다. 현재 영광 법성포 지역에서 굴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 번 살펴보자.
♣ 조기 하역 및 경매
참조기 잡이는 3~5월 사이 제주도와 흑산도를 지나는 조기가 칠산 앞 바다를 지날 때에 절정을 이룬다. 영광굴비는 예전 그대로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알이 딴딴하게 들어찬 굴비만을 잡는다. 매월 음력 15일과 30일 무렵 조기잡이 배가 출항했다가 돌아오면, 좋은 굴비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새벽 시간에 경매가 시작된다. 직판장에 가면 경매 풍경을 직접 볼 수 있다.
♣ 해동
구입한 조기는 냉동 창고에 보관했다가 필요한 때에 작업을 위해 해동시킨다.
♣ 선별
법성포 마을 사람들의 섬세한 손끝은 단 1cm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다. 크기가 큰 조기일수록 상등품이며, 일일이 선별하여 차곡차곡 엄선 된 참조기만 영광굴비가 되는 자격을 누릴 수 있다.
♣ 염장
영광굴비의 염장법은 대대로 전해오는 비법인 ‘섶간’이라는 지역 특유의 방법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섶간은 맛이 좋은 참조기 한 마리씩 아가미와 몸통에 영광 천일염을 뿌려 내장까지 절이는 것을 말한다.
♣ 엮기
굴비 엮기 역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방식으로 한다. 열 마리씩 엮어 걸대에 두세 달씩 말리는데 너무 힘을 주면 조기가 뒤틀리고 헐거우면 빠진다. 적절한 힘 조절과 특별한 매듭이 비결이다.
♣ 세척
엮기가 끝난 조기는 2~3차례 물에 씻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무공해 자연수만을 이용해 소금기와 굴비 겉면의 불순물을 씻어내는 중요한 작업을 하게 된다. 너무 많이 씻으면 조기가 싱거워지고 너무 적게 씻으면 조기가 짜진다.
♣ 건조
영광 법성포는 영양염류가 풍부한 칠산 바다와 인접해 있고, 낮과 밤의 습도 변화가 굴비의 숙성효과를 내는 천연적인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어, 건조과정에서 굴비가 부패되지 않고 맛있는 굴비로 가공된다. 이러한 제조과정에는 오래 두고 먹어도 맛 좋은 영광굴비만의 과학이 숨어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곳 특유의 ‘염장’과 ‘건조’ 기술이다. 이제 그 과학적 비밀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 소금으로 절이는 염장과학, ‘섶간’
고품질 굴비를 만들기 위해선 맛이 좋은 참조기(몸길이 17cm 이상)를 한 마리씩 정성을 들여 천일염으로 절이게 되는데, 영광 지역에선 ‘섶간’이라고 하는 특수한 염장기법을 사용한다. 이때 사용된 영광천일염은 1년이상 묵혔다가 간수를 뺀 것으로, 이 소금이 굴비의 수분은 적당히 빼면서 간이 베어들게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대부분 소금물을 조기에 담가 절이는 ‘물간’ 방식을 사용하여 손이 덜 가고 편하지만, 맛에서는 이 지역의 노하우가 축적된 섶간 만한 맛을 내지는 못한다. 이처럼 영광굴비는 전통과 지혜의 ‘과학’이 만들어낸 음식인 것이다.
♣ 바닷바람으로 말리는 건조과학, ‘해풍 숙성’
영광굴비가 맛있는 또 다른 이유는 남다른 ‘건조’ 여건에 있다. 영광 법성포는 영양염류가 풍부한 칠산 바다와 인접해 있어 건조와 숙성이 유용 하다. 또 봄 평균기온이 섭씨 10.5도로 서해에서 북서풍인 하늬바람이 불어와 조기를 말리기에 안성맞춤이다.
현지의 밤과 낮의 습도를 보면 낮의 습도는 약 45%, 밤에는 95%이상 올라가는 시간이 5~6시간 지속된다. 따라서 습도가 낮은 낮에는 건조가 이루어지고 습도가 높은 밤에는 생선 내부의 수분이 외부로 확산되어 암증효과, 즉 숙성효과를 내는 천연적인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건조과정에 의해 굴비가 부패되지 않고 맛있게 가공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영광지역의 건조기술 속에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과학이 숨어 있다.
♣ 현대식 건조 기술의 발견, ‘저염 굴비’
이렇게 잘 말려서 숙성된 굴비는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주는 식탁의 명약이 된다. 어려서부터 굴비를 맛본 나이 지긋한 이들은 짭짤한 굴비 맛에 향수를 느끼지만 요즘은 과거보다 굴비를 덜 짜고 더 촉촉하게 말리는 추세이다.
그 이유는 냉장·냉동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굴비가 상하지 않도록 짜고 건조하게 말렸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고, 요즘 소비자들은 건강을 위해 짠 음식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에 와서는 저염식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선호에 맞게 ‘저염굴비’ 건조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저염굴비를 제조하기 가장 적합한 온도는 35도로 이는 수분함량과 수분활성도가 가장 낮은 온도이다. 35℃ 에서 열풍건조를 하면 수분활성도(Aw) 0.41~0.54의 중간수분식품이 되는데 이는 식품의 변화를 억제하면서도 유연성을 가지는 중간수분식품의 영역이다.
중간수분식품은 수분활성도가 낮기 때문에 일반 건조식품보다 다량의 수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생물 번식에 저항성이 크고 저장성이 양호 하다.
미생물이 성장하는 수분활성도가 세균은 0.9, 효모는 0.88, 곰팡이는 0.8, 내건성 곰팡이 0.65, 내삼투압성 효모 0.6까지 번식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35도 열풍굴비건조의 수분활성도는 0.41~0.54로 보존가치증진과 품질향상에 적합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저염굴비는 염도를 줄이면서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고 쫀득쫀득한 식감으로 품질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
* [자료]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보고서, 2008
♣ 전통적 저장기술, ‘보리굴비’
굴비의 식감 하면 꼬들꼬들한 맛이 일품인 ‘보리굴비’를 빼놓을 수가 없다. 보리굴비는 전남 영광에서 가져온 참조기를 해풍에 자연 건조시킨 다음 보리를 채운 항아리에 묻어두어 곰팡이가 나지 않고 썩지 않게 보관한 것이 그 시작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마른 굴비를 오래오래 두고 먹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보리의 겉겨가 숙성되면서 굴비의 수분을 조절해줄 뿐 아니라 해충도 막아주고 비린내와 짠맛을 감소시켜서 살이 더 단단하고 꼬들꼬들해진다. 또 굴비의 기름을 잡아줘서 담백한 맛이 나고 보리 향도 은은하게 풍겨난다.
보리항아리에 오랫동안 넣어둔 굴비는 쌀뜨물에 담갔다가 살짝 쪄서 먹으면 잡냄새도 제거되고 보리굴비만의 독특한 식감이 살아난다. 잘 불린 굴비를 10분정도 찐 뒤 2차로 구우면 드디어 기름기가 살에 쫙 밴 갈색의 보리굴비가 완성된다.
오래 숙성시킨 굴비는 뼈까지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워지는데, 그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시원하면서도 약간 쌉싸래한 녹차 물에 밥을 말고, 그 위에 꼬들꼬들 한 굴비 한 점을 올려 감칠맛 뿐 아니라 그 먹는 방법도 이색적이라 할 수 있다.
조기가 금방 잡은 것처럼 탱글탱글하고 신선도가 높은 굴비로 변신하는 과정에는 이처럼 많은 수고가 담겨 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조상들이 즐겨먹던 전통 비법 그대로, 비린내는 잡아주고 맛은 돋워주는 최상의 굴비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