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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 김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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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김치 그 역사속으로

“김치는 왜 김치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국어학적인 접근으로 그 어원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시대부터「저(菹 : 채소를 소금물에 담근다)」를「딤채」, 「팀채」라 하였는데 이것은「침채(沈菜)」의 발음에서 연유된 것이며, 훗날 구개음화로 인해「짐치」가 되었다가「김치」가 된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나라 김치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삼국지(위지동이전) 고구려조」로 “고구려인은 술빚기, 장담그기, 젓갈 등의 발효음식을 매우 잘한다.”

라고 씌여 있어 이미 저장, 발효식품은 오늘날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통일신라 신문왕3년(AD 683)「삼국사기」에 의하면 왕비를 맞이하면서 내린 폐백품목 가운데 간장, 된장, 젓갈류가 들어 있어 발효식품이 널리 퍼져 있음을 알수 있다.

김치류는 3천년전 중국에서부터 저(菹)라고 불리던 절임채소에서 그 근원을 찾아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고 발전되었다.

삼국시대의 장아찌류는 신라, 고려시대에 와서는 짠지, 장아찌류, 김치류로 다양화되면서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오이지, 나박김치, 동치미, 섞박지, 무김치, 오이소박이, 배추통김치로 발전되어 왔다. 김치를 담글 때에는 생강, 귤껍질 등이 쓰였고, 산갓처럼 향신미의 채소로는 국물김치를 만들었다.

향신료로 천초를 넣다가 고추로 바뀌게 된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며 고추가 쓰이기 전에는 맨드라미꽃을 섞어 붉은색을 내기도 하였다. 최근에도 백김치에 맨드라미꽃을 넣어 아름다운 색과 향을 우려내는 천연향료 활용 방법이 사용 되기도 한다.

또한 젓국에 고추를 넣어 양념하는 방법은 조선시대 중엽 궁중에서부터 발달되 었는데, 주로 젓길로는 조기젓, 육젓, 새우젓으로 썼다고 한다. 이에 비해 민간에서는 멸치젓이나 갈치젓을 주로 썼다고 한다.

증보산림경제

18세기 중엽의 기록인 ‘증보산림경제’에 의하면 여러가지 김치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나복함저」란 ‘무에다 고추를 저며서 넣고 오이, 호박, 도아, 천초, 부추, 미나리 등을 뿌리면서 항아리에 담고, 소금물과 마늘즙을 넣고 봉한다’ 하였으며

「황과담저」란 ‘오이를 주재료로 하여 나복함저와 같은 방법으로 담근다’ 고 하였고, 초숙은 ‘죽순, 부들순, 연뿌리, 무, 부들뿌리 등을 소금과 누룩, 또는 맵쌀과 소금 누룩을 섞어 절인 것’ 이라고 하였다. 일반적인 기록을 보면 무김치보다 배추김치를 담그는 법은 비교적 후기에 발달 하였음을 알수 있다.

김치는 지방에서 지라고 하고, 제사때는 침채라고 하며, 궁중에서는 젓국지, 짠지, 싱건지 등으로 불렀다. 김치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배추, 무를 주재료로 해서 파, 마늘, 생강, 잣, 미나리, 젓갈 등 부재료를 소금으로 절여서 숙성시킨다.

♣ 김치의 종류

오래 저장하지 않고 먹는 김치로는 나박김치,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갓김치, 파김치, 양배추김치, 굴깍두기 등이 있고, 오랫동안 저장해 두고 먹는 김치로는 통배추김치, 보쌈김치, 동치미, 고들빼기김치, 석밖지 등이 있으며, 전통적으로 김장김치는 겨울동안의 채소공급원이 되었다.

그 외 각 지방 풍습과 기호, 계절 등에 따라 봄철에는 나박김치, 봄배추김치, 짠지를 주로 담가 먹었고, 여름에는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가을에는 배추통김치, 겨울에는 김장김치와 동치미를 즐겨 먹었다.

♣ 김치의 숙성

원료성분의 삼투작용과 미생물의 발효작용에 따라 일어나는데, 이때 채소를 소금으로 절일 때 소금물의 농도와 저장온도가 숙성 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김치의 맛과 향기는 주로 김치국물에 들어 있는 향미성분의 삼투작용 때문이다. 소금과 부재료에 의한 용해 성분이 많아 삼투압의 차이가 클수록, 또 온도가 높을수록 김치가 빨리 익는다.

소금의 농도는 겨울 김장용에는 2~3%, 봄철에는 4~5%, 여름철에는 7~10%를 쓰는데, 너무 오래 절이거나 소금의 농도롤 너무 높게 하면 배추나 무의 단맛을 잃게 되며 소금의 농도는 발효작용을 일으키는 미생물의 번식에 영향을 주게된다.

김치를 담그면 초기에는 여러가지 잡균이 많이 붙게되고, 점차 젖산균이 많아져 젖산발효가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생성된 젖산과 소금의 공동작용으로 채소의 방부효과는 더욱 커지고 저장성이 생기게 된다.

젖산발효 초기에는 약 산성인 젖산구균이 번식하고, 그 뒤부터는 산을 많이 내는 젖산간균이 순차적으로 번식하여 젖산 등 유기산을 많이 만든다. 김치속의 유기산은 소금 단독의 경우보다 방부력을 높이는 작용이 있고, 알코올과 에스테르를 만들어 방향을 띠게한다.

소금의 농도가 7%를 넘으면 소금의 방부력 때문에 미생물의 번식이 억제되어 김치의 숙성 속도는 매우 느려진다. 특히, 채소에 동물성 식품을 첨가하여 담그는 기술은 한국의 독특한 비법이라고 할수 있으며 고추의 매운맛은 색의 조화로 식욕을 촉진하고,

젓갈의 지방성분이 산패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와 비린 맛을 상쇄하는 과학적인 지혜가 담겨 있다. 고추와 마늘은 김치속의 비타민C의 산화를 막아서 유산균의 활성을 도와주는 훌륭한 저장식품이다.

♣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한반도에사는 BC 3000년경에 원시적인 농경생활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신석기 시대에 들어서 곡물이 주식이 됨에 따라 균형집힌 식생활과 채소가 재배되지 않은 추운 겨울철을 위해 염분에 절인 채소류를 함께 먹게 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 상추, 마, 오이, 미나리, 가지, 아욱, 순무, 무, 동아, 박, 시금치, 쏙, 근대, 토란, 우엉, 배추 등의 다양한 채소들을 재배하여 상용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배추는 오늘날과 같은 결구(結球)배추가 아니라 순무와 교잡된 배추의 원시형태일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이전만 해도 채소를 소금에 절인 장아찌류가 대부분 이었던 반면 통일신라 시대에는 천초, 생강, 귤피 등 향신미가 나는 조미료가 음식에 사용되면서 나박김치, 동치미 등의 국물김치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중국 사서류의 기록에는 고구려는 일찍부터 발효기술을 발명하여 콩발효기술(장)로 그이름이 중국에 까지 알려졌으며, 백제는 채소류가 많아 공기술이 발달, 화식(火食)을 하지 않고 냉식(冷食) 즉, 발효식품을 즐겼다.

♣ 고려시대

식품의 조리.가공방법은 고려시대에 와서 크게 발달되었다. 밥과 국이 기본적인 상차림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이 시기이며, 콩나물과 두부를 만드는 기술도 고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저(菹:채소절임)와 지염(漬鹽:월동용 채소절임)에 대한 최초의 문헌기록이 등장하기 하기 시직한다.

한편 불교문화의 발달로 살생을 금하고 채식을 주로하는 소박한 요리가 존중되었으며, 불교의 공불음식인 유밀과(떡, 다식, 약식 등)가 널리 이용 되면서 물김치와 즙저(汁菹)가 보편화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 조선시대

조선시대 전.후기를 통해 식생활사에 있어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음식의 조리법을 과학화.체계화 했다는 사실이다. 삼국.고려시대를 거치며 독특한 음식문화를 발전시킨 우리 선조들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조리에 관한 내용들을 정리하여 농서(農書) 혹은 조리서(調理書)에 기록으로 남겼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세종실록, 사시찬요, 구급벽온, 수운잡방 등에서 구체적인 김치문화를 엿볼수 있다. 「사직정배위 찬실도(社稷正配位 饌實圖)」에서는 저채류로 순저(筍菹:죽순김치), 청저(靑菹:순무김치), 구저(韭菹:부추김치) 등이 나타나는데 즉 조선 초기에는 오이, 가지, 부추, 미나리, 우엉, 죽순, 갓, 순무 등이 주재료로 그리고 마늘, 생강, 파, 천초 등이 부재료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짐작할수 있다.

일반 재배채소로서의 배추는 선조 2년(1569) 허균의「성소복견고 한정록 치농편」에 백채(白寀)라는 기록이 처음등장 하였으며, 「지봉유설(1614) 」에서는 고추의 도입 경로와 용도가 상세히 설명되었으나, 보편적인 재배는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증보산림경제(1766)」에 이르러 배추와 고추는 함께 본격적인 재배작물에 포함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배추의 경우 여전히 중국에서 종자를 수입하였으며, 고추는 독이 많아 먹고 죽은 사람이 많았다고 전해져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김치는 18세기 후반에서야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1900년대 이후 현대 김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김치는 우리나라 식문화 역사상 중요한 식품으로 인식되어 김치에 관한 다양한 각종 연구가 1930년대부터 이루지기 시작하였으나 단편적 요리서에 불과 했으며, 1960년대 들어 가공, 발효, 미생물, 생화학, 영양성분, 품질.기능성에 관한 연구가 점진적으로 추진되다가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1990년에 들어 김치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김치는 영양적 가치와 우수성에 관한 다양한 연구결과로 일본, 중국 등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으며, 2001년 7월 Codex(국제 식품규격 위원회)총회에서는 배추김치에 대한 국제 통용명을 ‘Kimchi’로 결정하고 “젖산생성을 통해 발효된 제품”이라는 김치의 정의를 내려 국제사회의 공식적인 인증을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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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강원도농업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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