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를 한자어로는 보통 석거(石距)라 하고, 소팔초어(小八梢魚)·장어(章魚)·장거어(章擧魚)·낙제(絡蹄)·낙체(絡締)라고도 하였다. 방언에서는 낙자·낙짜·낙쭈·낙찌·낙치라고 한다. 낙지에 관한 속담은 대체로 낙지의 생태나 낙지를 잡는 행위와 관련된 것이 많다.
일이 매우 쉽다는 뜻으로 ‘묵은낙지 꿰듯’이라는 속담이 있고, 일을 단번에 해치우지 않고 두고두고 조금씩 할 때 ‘묵은낙지 캐듯’이라 한다. 또한 제때가 되어야 제 구실을 한다는 뜻으로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말을 쓴다. 낙지와 관련된 설화는 낙지머리와 남성의 성기를 착각했다는 음담이 전라남도지역에서 채록되었다.
낙지가 정력에 좋은 식품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부터 낙지는 바다생물 가운데 대표적인 스태미나 식품으로 꼽혔다.
우리나라 최고의 어류학서인 자산어보(1814년 정약전 著)는 ‘낙지를 먹으면 사람의 원기가 돋고 말라빠진 소에게 낙지 두세 마리를 먹이면 힘이 강해지며, 낙지는 맛이 달콤하고 회로 먹거나 포를 만들기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다리가 여덟 개인 낙지를 소팔초어라 하며, ‘낙제로 불리는 이 생물은 성질이 온순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많은 한방고서에서도 낙지는 기혈을 순조롭게 하는 식품이라고 전한다. 이처럼 낙지는 오래 전부터 원기를 돋우는 강장식품으로 알려져 왔다.
낙지는 주로 갯벌에서 서식하지만, 숨어 있다가 밤에 주로 활동하는 연체 동물로 대표적인 스테미너식이다. 낙지는 위장을 튼튼히 해주고,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보혈 강장효과가 있고 근육을 강하게 하며 뼈를 튼튼하게 해준다고 전해진다.
한마디로 낙지는 대표적인 고단백, 저지방, 저콜레스테롤, 저 열량의 건강 강장식품이다. 낙지 한 마리가 인삼 한 근과 맞먹는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이런 이유로 낙지요리는 시대를 초월해 끊임없이 우리 국민의 사랑을 받아 왔다.
낙지요리에 관한 기록은 16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의 낙지요리는 낙지를 채소처럼 채로 썰어 나물처럼 무쳐 먹었다. 그 후 19세기에 들어서는 낙지회와 말린 낙지뿐 아니라 궁중에서는 낙지전을 부쳐 먹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서 낙지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낙지숙회와 낙지백숙을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최근 들어 낙지가 저 열량 다이어트식품으로 각광받으며 연포탕, 낙지비빔밥, 낙지콩나물볶음, 낙지전골, 낙지수제비 등 다양한 낙지요리가 개발됐다.
아울러 낙지와 쇠고기를 섞은 불고기(낙불)와 갈비와 낙지를 섞은 갈 낙탕 등 낙지를 이용한 다양한 퓨전 요리도 개발되고 있지만 낙지볶음처럼 모든 사람에게 널리 사랑받는 요리도 드물다.
낙지볶음은 멸치나 바지락 맛국물에 주재료인 낙지와 대파, 양파, 풋고추, 붉은 고추 등의 부재료 및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육수, 설탕, 진간장, 참기름 등으로 만든 양념을 넣고 끓인 요리다. 여기에 기호에 따라 새우나 소의 곱창을 넣으면 소위 말하는 ‘낙새’, ‘낙곱’, ‘낙곱새’가 된다.
낙지는 산뜻하고 담백한 맛으로 낙지 한 마리가 인삼 한 근에 버금간다는 말과 같은 많은 철분이 함유되어 있어 빈혈이 있는 사람에겐 특효 식품이며 타우린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남성 스테미너 증감에 효과가 있으며 허약체질 및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또한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타우린이 피로회복 및 간장기능 강화 및 성인병을 예방한다. 낙지는 영양도 풍부하지만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연체 류 중 가장 좋아 한국인에게 매우 인기 있는 식품이다.
이 낙지볶음은 40년 전 무교동의 뒷골목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로통 대로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신선한 낙지에 산지에서 직접 가져온 태양초 고춧가루 그것도 맵디매운 청양고추를 쓰고 여기에 파, 마늘 등 갖은 양념을 한 낙지볶음은 예부터 유명했다.
조선시대 종로는 항상 높은 어른들의 교자나 가마가 지나다니는 큰길이었다. 그 당시 아랫사람이 큰길을 가다가 높은 벼슬아치를 만나면 길가에 엎드려 예의를 표했는데, 그것이 자주 되풀이되면 번거로우므로 아예 큰길 양쪽 뒤편에 말 한 마리 정도 다닐 수 있는 좁다란 길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 길을 따라 목로술집, 모주집, 장국밥집이 이어졌으며, 나름대로 격조가 있었고, 피 맛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 유명한 골목이 세 곳 있었는데 광화문 우체국 옆 무교동의 낙지 골목, 교보빌딩 후문에서 미대사관 쪽으로 난 빈대떡 골목 그리고 청진동의 해장국 골목이었다.
그러나 서울 시내의 재개발 바람을 타고 빈대떡골목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해장국골목은 세 집이 남았으며 종로의 한쪽 편에 있던 무교동 낙지골목도 무교동쪽은 거의 없어지며 종로통의 반대쪽인 청진동으로 이사 가거나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유명했던 무교동 낙지골목은 낙지골목만의 이름으로 청진동쪽에 남아있다.
무교동 낙지골목의 기본 요리는 낙지볶음이다. 낙지볶음은 싱싱한 낙지에서 우러나는 담백함과 태양초 청양 고추의 매콤한 맛 그리고 참기름을 포함해 각종 양념이 들어간 다데기에 있다. 물론 갖은 양념에 정성스런 손맛이 어우러져야 하지만 말이다.
여기에 곁들여 지는 것이 조개탕. 사실 매콤한 낙지볶음을 먹으면 입안이 얼얼해지기에 이를 시원하게 감싸주기 위해 조개탕을 곁들이지만 매콤한 입 속에 뜨거운 조개탕이 들어가면 입안은 불붙는 듯 더욱 얼얼하다.
그래도 싱싱한 모시조개로 끓인 담백하고 시원한 조개탕은 낙지볶음과 함께 해야 제 맛으로 가슴속까지 후련하다. 여름이면 땀을 흘리며 겨울이면 입에 손부채를 해 가며 먹는 낙지볶음과 조개탕. 도시개발로 사라져만 가는 우리의 먹을거리가 아쉽다.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무교동 낙지집이 벌써 그리워진다. 박무순(92) 할머니는 소위 ‘무교동 낙지’로 불리는 낙지볶음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무교동 낙지를 탄생시켰고, 가장 대중적인 음식 가운데 하나로 성장시킨 주인공이다. ‘원조’라고 주장하는 집이 많지만 박 할머니 앞에만 서면 이내 꼬리를 내린다. 대부분 그에게서 손맛을 배우거나 모방했던 탓이다.
무교동 낙지는 1965년 탄생했다. 장소는 서울 서린동 한국수출보험공사 자리다. 한 대폿집을 인수한 박 할머니가 내놓은 신 메뉴가 낙지볶음이다.
“낙지가 쌌고, 흔했던 시절이야. 그런데 이를 당시엔 데치거나 국 끓여 먹는 게 전부였지. 그래서 평소 집에 온 손님에게 술안주로 내놨던 것을 선보이기로 했지.” 박 할머니는 상호를 실비집으로 바꿨다. 메뉴는 매콤한 낙지볶음과 이에 어울리는 담백한 조개탕, 그리고 감자탕과 파전이 전부였다.
손님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대박이 터진 것이다. 낙지볶음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주전자가 전부였던 시절이었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얼마 안 돼 유정·미정 등 유명한 낙지집이 생겨났다. 서린동 일대에 열 곳이 넘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하지 못해 박 할머니는 인근에 낙지 센타(72년)를 열었다. 소위 분점이었다.
무교동에도 낙지골목이 형성됐다. 당시 손님 대부분은 무교동 오피스타운의 넥타이부대였고, 이들이 서린동과 무교동의 낙지볶음을 ‘무교동 낙지’라 부르면서, 이것이 지금까지 고유명사처럼 이어져오고 있다.
♣ 너무 쫄아버린 짜박이ㅠ BUT 파격 서비스 ‘세발낙지’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23회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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