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르반테스가 창조한 불멸의 두 인물 돈키호테와 산초가 함께 식사에 초대받은 일화는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번 장에서는 음식 앞에서 두 사람의 반응과 언급들을 통하여 그것들이 갖는 함의를 논의할 것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열량을 얻어서 육체적 생명 활동을 이어가는 생물학적 의미만 띠는 것은 아니다. 음식 재료의 준비와 조리로부터 식사 예절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인간의 삶이 흘러가는 문화의 ‘결’이다(주경철. 2006: 20).
더 나아가 음식은 특정한 시기, 한 집단에 관한 정보의 완전한 누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풍요와 기근, 욕망과 절제는 한 개인이 사회 현실 속에서 음식을 통하여 경험 할 수 있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인물 돈키호테와 산초 또한 풍요와 기근, 욕망과 절제 사이의 긴장과 대립을 겪는다. 이 두 가지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사람은 그가 먹는 음식 그 자체이다’라는 독일 속담이 정의하듯, 한 사람의 존재론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다음은 『돈키호테』에서 주목할 만한 식사자리 중의 하나인 목동들이 풀밭에 자리를 깔고 돈키호테와 산초를 초대했을 때 벌어진 이야기이다. 산초는 항상 먹는 것에 열광하는 인물이다. 양치기들을 만났을 때에도 산초가 향한 곳은 음식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전원의 소박함은 일종의 의식처럼 보이면서 이 식사는 특별한 중요성을 띠게 된다. 즉 식사 자리는 이내 연설을 하고, 세상을 비판하고, 이상향을 그리는 자리로 탈바꿈한다. 돈키호테는 풀밭 위 양가죽을 깔고 차린 소박한 음식을 대접받고 황금시대에 대한 장광설을 펼친다.
돈키호테는 식사보다 이야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돈키호테는 산초에게 자신의 옆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며 식사 자리에서 두사람은 평등하다고 강조하지만 산초는 이를 거절한다.
이렇게 산초는 예법을 지켜야 하는 식사보다는 소박한 식사를 찬양하며 곡물과 야채, 즉 ‘빵과 양파’로 대표되는 자신의 조촐한 식생활과 육류, 특히 가장 고급스러운 것으로 여겼던 백색 육류, 즉 주로 가금류를 즐겼던 상위층들의식 생활을 비교한다.
라만차의 귀족에게 심각한 연설과 기사도 정신을 발현할 수 있었던 그 순간 이 촌뜨기 산초에게는 귀찮은 의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한 사람에게는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순간이었던 반면 다른 한 사람에게는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이 없었던 황금시대를 기억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사실상 돈키호테에게는 음식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황금시대의 도토리를 언급하며 평등한 세상을 염원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녹색 외투의 기사에게 초대받은 식사 또한 돈키호테의 정신적인 면, 즉 문학 적인 것을 자극한다. 이번에는 침묵이라는 특별한 가치와 연루된 상황이다.
돈 디에고가 내놓은 음식은 이상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돈키호테는 다시 한번 현실과는 거리가 먼 태도를 보이며 온 집안을 지배하는 침묵을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그가 찾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할 수 있는 시로 그 침묵을 깨뜨리고자 한다. 그리고 나흘 동안 멋진 식사를 대접받은 후 돈 디에고의 집을 떠날 때 두 사람의 반응은 엇갈린다.
산초에게 모험은 여전히 결핍과 굶주림의 여정이다. 그의 자루가 비어있을 때는 더욱 더 그렇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나면 산초는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다음 장면의 주인공은 돈키호테가 아니라 산초이다. 바로 카마초의 결혼식 연회가 펼쳐지는 장면이다.
온갖 종류의 음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특별한 연회에서는 당시 스페인 사람들이 선호했던 고기, 빵, 와인, 후식이 제공된다. 미각을 만족시킬만한 음식들로 부자 카마초는 기쁨을 나누어주었고, 산초는 농부의 배고픔을 실컷 달랠 수 있었다.
산초에게 이런 행운은 가난한 바실리오의 집에서 받는 환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공작부부의 장난이 한판 벌어지고 난 후 총독의 자리에 오른 그는 과학의 힘과 위생적인 식생활의 중요성을 발견한다. 그 모든 것이 조롱하려는 의도를 다분히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상황은 산초의 존재론, 특히 그의 음식에 대한 기존의 관념과 강하게 충돌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바라타리아 섬 이야기의 끝에 가서는 의사의 지나친 계략 때문에 대식가 산초의 먹는 즐거움은 중단되어 버린다. 바로 눈앞에 음식이 있지만 먹지 못하는 이런 상황을 산초는 지금까지 겪은 적이 없었다.
허기가 지는데 음식이 없는 상황보다 음식을 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는 상황은 최악이라는 것을 산초는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최악의 배고픔을 겪고 총독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바르셀로나의 돈 안토니오 모레노의 집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식사 초대에서 음식과 식사에 대한 산초의 가치평가는 변화를 보인다.
식사 중 돈 안토니오가 “여기 소문으로는 착한 산초여, 당신은 망하르 블랑 코(Manjar blanco, 아몬드와 우유로 만든 후식)와 고기단자를 좋아하신다고 하던데, 이것들이 남으면 다음을 위해 품에 간직하시지요.”(2권, 768)라고 말하자 산초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산초는 이제 대식가, 식충이가 아닌, 전원의 목가적인 삶에서의 식생활을 추 구하는 인물로 변한 것이다. 단지 먹는 즐거움만 누리며 굶주린 배를 채우기만 을 바랐던 단순한 산초가 이제 청결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음식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음식을 통하여 그는 새로운 자신을 찾은 것이다. 돈키호테 역시 자신의 충실한 동반자의 행동을 인정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본다면, 세르반테스는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로 규정되는 돈키호테와 산초라는 인물의 성격을 음식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늘 배고픔에 시달리는 산초는 식욕의 노예처럼 먹을 것을 좇는 인물로, 돈키호테는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 먹고(1권, p. 153), ‘먹는 건 조금 먹어야 하고, 저녁은 더 적게 먹어야’(2권, 518) 한다고, 즉 생존할 수 있을 만큼이면 족하다면서 절제를 강조한다.
하지만 바라타리아 섬에서 생존을 위한 음식이 권력이 된 식생활을 경험하고 난 후 산초 또한 음식을 생존을 위한 것으로 대하는 인물로 탈바꿈한 것이다.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욕망하던 인간에서 ‘주어진 것을 먹는’(2권, p. 768) 절제하는 인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