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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의 음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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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6. 스페인 음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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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종교적 정체성과 음식

종교, 영성, 금욕주의와 식생활 사이에는 강력한 역사적 연계가 존재한다. 서구사회에서 기독교 윤리의 기저에는 먹기와 단식의 관행이 깔려 있고, 식생활의 통제는 살에 대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열성 적인 신도들이 즐겨 이용한 전형적인 금욕 관행이다(Lupton 2015: 254).

교회법에서는 1주일에 한두 번(원래 수요일과 금요일이었는데 나중에 금요 일로 한정되었다)그리고 1년 중 정해진 기간(특히 부활절 기간) 동안, 모두 1년에 140일 내지 160일에 이르는 기간을 육식 금지 기간으로 정했다.

이것은 원래 은둔자나 수도사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작은 공동체 차원에서 시행하던 규칙이었는데, 교회 당국에 의해 이 모델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다(주경철 2006: 21).

1492년 국토회복운동이 성공을 거둠으로써 스페인은 통일 제국을 이루었고, 이후 무어인들과 유대인들은 추방당하거나 개종을 강요받았다. 비 기독교인들을 색출하기 위한 종교재판소가 재개되었고, 이교도를 색출하는 데에 음식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경전을 감추거나 신앙을 속일 수는 있지만 식습관을 감추는 일은 힘들다는 것을 종교 재판소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 재판소는 금요일 밤에 음식을 만들었다가 먹는 사람-유대인은 안식일인 토요일에는 요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 요리하기 전에 고기의 피를 닦아내는 사람, 교회가 사순절 기간 동안 금지한 치즈와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을 주요 표적으로 삼았다(Civitello, 2008: 159).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도 음식은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로 동원되고 있음을 다음에서 읽을 수 있다. 먼저 작품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음식인 빵과 포도주는 기독교 문화의 영향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의 몸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영적 음식으로 개념화되고 성찬식 의례에서 성체로 찬양된다. 빵은 여성적인 것, 세속적인 것, 지상의 것을 상징하고, 강력한 영적 물질로서의 포도주는 남성적인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의 영원한 몸으로 하나로 결합된다(Lupton 2015: 254-55).

돈키호테는 광기와 르네상스의 이상을 보여주는 인물이지만 작품 내에서 가톨릭 신앙에 위배되는 행위는 결코 하지 않고, 시종일관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그려진다(권미선. 2005: 84).

앞서 언급했듯이 알론소 키하노는 금욕적인 성격의 인물로 “얼굴과 몸이 말랐고, 체형은 꼿꼿한”(66) 외모 또한 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가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점은 앞에서 논의한 검소한 식생활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진정한 신성과 신앙심을 획득하고자하는 기독교인들은 육욕을 초월하고 영혼을 정화하기 위한 노력 속에서 매우 검소하게 먹었다. 기독교 사상에서 대식을 하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Lupton 2015: 255).

그런데 알론소 키하노의 금요일과 토요일의 메뉴는 특히 주목할 만한데, 그 음식들은 종교적 실천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주인공이 금요일이면 먹었던 렌테하는 렌즈콩에 배추나 양배추, 파 등의 야채를 넣은 음식이다(Rodríguez Marín. 1987: 424).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리기 위해 육식을 금하는 금요일, 알론소 키하노는 간소한 음식을 먹는 것으로 성실한 기독교인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가 토요일에 먹는 두엘로스 이 케브란토스 또한 종교적 실천과 관련이 있는 음식이다.

돼지 비곗살과 초리소, 하몽을 볶아 거기에 달걀 프라이를 뒤섞어서 먹는 이 음식의 이름은 유대인들의 금기와 연관이 있다(Villegas Becerril. 2005: 25). 스페인에서는 17세기에도 여전히 종교 재판소가 지속되었고, 종교적⋅인종적 순수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었다.

신 기독교인 이라 불렸던 개종한 유대인, 무어인들은 정통 기독교인들보다 더 깊은 신앙심을 가졌음을 보여주기 위한 일환으로 음식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에서 금기시했던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진정한 기독교인임을 증명해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두엘로스 이 케브란토스’라는 음식명은 개종한 유대인들의 이러한 비애를 담고 있다. ‘슬픔과 깨뜨림’이라는 의미의 이 음식은 돼지 비곗 살, 초리소, 하몽 등 온갖 돼지고기에서 비롯된 재료들로 만든 음식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요리를 먹으며 ‘슬펐고’, 요리 행위가 금지된 토요일에 요리를 하면서 유대교의 교리를 ‘깨뜨린’ 음식이라는 데에서 그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Villegas Becerril. 2005: 25). 그러므로 정통 기독교인 키하노 알론소가 토요일마다 이 음식을 먹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 세르반테스의 소설에서는 육식을 금하는 날과, 교회가 금식기간을 정함으로써 중요한 먹을거리가 된 ‘염장대구(bacalao)’에 대한 언급도 읽을 수 있다. 돈키호테가 그 유명한 기사 서품식을 받게 된 객줏집에 도착하여 뭔가 먹을 것을 요구하는 장면이다.

마침 그날은 육식을 금하는 금요일이라 객줏집에는 카스티야 지방에서 아바데호(abadejo)라 하고 안달루시아에서는 바칼라오(bacalao)라 하며 다른 지역에서는 쿠라디요(curadillo), 또 다른 지역에서는 트루추엘라(Truchuela). 라고 부르는 대구 몇 토막밖에 없었다, 여자들은 그것밖에 줄 것이 없는데 괜찮겠는지 물었다. (1권, p. 80)

육류는 물론 따뜻한 음식 섭취도 금지되었지만 유일하게 허용된 음식이 있었다. 바로 염장대구였다. 물속에 사는 생선을 차가운 음식이라고 여겼던 교회는 염장대구만은 금식 기간에 유일하게 섭취를 허용하였다.

그러니까 고기를 전혀 먹을 수 없었던 기간에 염장대구는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유일한 먹을 거리였던 셈이다. 더욱이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염장시킨 대구는 내륙에서 운반이 가능했고, 불리면 쫄깃한 맛과 질감이 빠른 속도로 되살아나기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Díaz. 2003: 89-90).

이처럼 하나의 종교만을 강요했던 황금세기 스페인 사회에서 개종한 이들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또 정통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증명하는 데 음식이 절대적인 도구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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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중앙대학교 대학원 •홍익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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