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세기 스페인에서는 귀족과 승려계급을 제외하고, 악자들을 비롯한 사회 주변인 계층의 식생활은 형편없는 것이었다. 당시 돈키호테처럼 가난한 시골 귀족들은 빈약한 식단과 생마늘 냄새로 규정될 정도로 먹을 것이 귀했고, 제대로 된 식사는 하루에 한 끼를 했다(Chamorro 2002: 18).
재산의 4분의 3을 식생활에 소비하는 알론소 키하노의 요일별 식단은 “양고기보다 소고기를 조금 더 넣어 끓인 ‘오야(olla)’2)를 좋아했는데, 밤에는 주로 ‘살피콘(salpicón)’을, 토요일에는 ‘슬픔과 깨뜨림(duelos y quebrantos)’, 금요일에는 ‘렌틸콩(lentejas)’, 일요일에는 새끼비둘기”로 이루어져 있다(1권, p. 65).
주로 서민들이 먹었던 음식이다. 돈키호테가 즐겨 먹었고, 또 작품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오야(olla)’는 유대인들의 스튜 ‘아다피나(adafina)’를 기독교화한 음식이다.
양고기, 병아리콩, 양파 등의 야채와 허브를 넣어 만든 유대인들의 스튜를 기독교인들은 중세시대 부터 유대인들은 먹지 않는 돼지고기를 베이스로 하여 먹었다. 음식의 이름은 스튜를 끓인 질그릇 냄비인 ‘오야’에서 비롯된 것이다.(Martíez Llopis. 1981: 118)
19세기 초까지 농촌과 대부분의 도시에서 가장 흔했던 음식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돼지고기와 함께 양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 다양한 육류가 함께 들어 가기 시작하였다. 요리에 넣는 육류의 종류는 당연히 사회계층에 따라 달라졌다.
부유층들은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넣은 스튜를 즐겼고, 가난한 이들은 육류 보다는 콩류, 야채를 더 넣은 스튜를 먹었다. 돈키호테가 주로 양고기보다는 소고기를 더 넣은 스튜를 즐긴 이유는 세르반테스 시대에 소고기는 양고기나, 돼지고기보다도 더 저렴했기 때문이다(Muñoz Coronel. 2010: 24).
돈키호테에게 소고기는 그의 사회⋅경제적 신분에 맞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저녁식사 메뉴인 살피콘은 오야에 남아있던 고기 조각에 병아리콩, 돼지 비 곗살, 마늘, 양파, 후추, 소금, 식초 등을 가미하여 먹었던 음식으로, 고급 음식은 아니었다(Muñoz Coronel. 2010: 24).
마늘과 양파 냄새가 강하고, 나머지 음식을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돈키호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음식은 빵이다. 당시 서민들의 주식이었다는 의미이다.
빵은 흰 빵과 통밀로 만들어진 검은 빵, 조그맣고 딱딱한 호밀 빵 등이 언급되는데. 흰 빵은 부유층들이나 먹던 귀한 것이었고, 검은 빵은 서민 들을 위한 것이었다(Pérez Samper. 1998: 13). 돈키호테가 처음으로 집을 나서 그 유명한 기사 서품식을 치른 객줏집에서의 한 장면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온갖 감언이설과 허황된 약속으로 순진한 이웃집 농부 산초 판사를 구슬려 떠난 모험의 여정에서도 두 주인공의 주식은 까만 빵과 와인, 양파, 치즈 등이다. 하지만 완벽한 편력기사가 되고 싶은 돈키호테는 산초에게 편력기사들이 지켜야 할 음식에 대한 예의를 일러준다.
이후 산초는 자루에 “거인의 머리도 부술 만큼 단단한 치즈 약간하고 짐승 사료용 콩 마흔여덟 알하고 그 정도의 개암 열매와 호두알만 겨우 가지고 있을뿐”이었다.(2권, p. 189) 그러다가 운 좋게도 살림이 넉넉해 보이는 숲의 기사의 종자가 흰 토끼고기로 속을 채운 ‘엠파나다(empanada, 밀가루 피에 소를 채워 빚은 음식)’를 대접하자 산초는 주인의 생활 형편과 신분에 맞는 식생활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렇게 돈키호테의 소박한 식단과 그의 종자가 먹는 형편없는 음식들은 황금세기 당시 민중들의 궁핍한 삶과 편력기사 돈키호테라는 작품 속 인물의 금욕적인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한편 세르반테스의 소설에서는 넘쳐날 정도로 풍요로운 음식들이 등장하는 부자 카마초와 미인 키테리아의 결혼식과 같은 부자들의 연회 장면도 읽을 수 있다(2권, 19장-22장).
결혼식 연회에서는 송아지, 토끼, 닭, 양고기, 새끼 돼지를 비롯한 육류와 온갖 조류, 사냥으로 잡은 짐승들, 고급 포도주, 하얀 빵, 치즈 등이 넘쳐났고, 쉰 명이 넘는 요리사들이 군부대 하나를 다 먹일 만큼의 음식을 만든다(2권, p. 265).
음식을 만드는 냄새에 이끌려온 사람들은 풍성한 음식에 열광한다.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세르반테스 시대 사람들이 정교하고 섬세한 음식보다는 풍성한 음식을 선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음식의 맛과 정교함보다는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양의 음식이 더 필요 했기 때문이다. 양적으로 풍성한 음식은 대접하는 주인의 위신을 세우는 데 중요한 것이고, 그의 부유함의 정도를 드러내주는 척도이기 때문이다(Villegas Becerril. 2005: 24).
이처럼 작가는 음식이 사회계급 사이의 차별화의 기준이었다는 점을 드러내 고, 더 나아가 황금세기의 사회적 불평등과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했던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카마초의 결혼식 연회 장면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미인 키테 리아에게는 바실리오라는 가난한 연인이 있었지만 그녀는 바실리오를 버리고 부자인 카마초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연회에서 펼쳐진 공연에서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풍자하고 있다.
‘사랑의 신’, ‘이익의 신’, 그리고 둘 사이에서 선택의 순간에 놓인 아가씨가 등장하는데, 두 명의 신들은 각각 바실리오, 부자 카마초를 상징한다. 결국 이익의 신이 커다란 금목걸이를 처녀, 즉 키테리아의 목에 걸어주고는 그녀를 붙잡아 항복시킨 후 포로로 잡는다는 내용이다.
이 공연을 본 돈키호테는 작품의 창작자에 대하여 “바실리오보다 카마초의 친구인 게 틀림없다.”(2권, p. 271)고 평한다. 물질이 사랑을 이기고,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 편을 드는 세상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산초 판사이다. 카마초가 제공한 풍성한 음식을 먹고 난 터라 산초 역시 “저는 카마초 편입니다.”(2권, p. 272)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카마초의 솥에서 건진 이 같은 굉장한 찌끼를요, 바실리오의 솥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건진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요. (2권, p. 272)
아무리 솜씨가 좋은들 뭐한대요, 돈이 없는데. 그러니 바실리오가 패배하여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거라고요. 저야 카마초의 닭이나 먹으면 되는 거고요! 인간의 가치는 가진 것에 달렸어요. 가진 게 많으면 그만큼 값이 나갑니다요. 우리 할머니 중 한 분이 말씀하셨는데요, 이 세상엔 두 개의 가문밖에 없답니다요. 있는 가문과 없는 가문요. 할머니는 잇는 가문 편이셨죠. 요즘 세상은요 돈키호테 나리, 아는 것보다 가진 것을 더 중하게 여긴답니다요. (2권, p. 272)
이처럼 산초의 입을 통해 세르반테스는 당시 스페인 사회에 만연했던 극심한 빈부의 차이와 물질이 선의 유일한 척도가 된 세상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런 산초를 돈키호테는 ‘천민’이라고 비난한다(2권, p. 272).
여기서 부자 카마초의 연회와 목동들의 식사초대 장면에서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반응을 얼마나 대조적으로 다루었는가하는 점또한 흥미로운 논의거리가 될 것이다. 산해진미로 넘쳐나는 카마초의 결혼식 연회 장면에서 돈키호테가 어떤 음식을 먹었다거나, 또 어떤 음식에 대하여 언급을 하는 장면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조촐한 식탁을 마련하여 아주 진심 어린 호의로, 자신 들이 가지고 있던 것이니 같이 먹자고 두 사람을 초대한’ 산양치기들과의 식사자리에서는 맛있게 음식을 먹고 난 후 개암을 한 주먹 집어 들며 사회적 불평 등이 없었던 유토피아에 대하여 말한다.
그것은 “행복한 시절”, “황금시대”로 “네 것, 내 것이라는 두 단어를 모르고 살았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으며”, “모두가 평화로웠고, 우애가 넘쳤으며 조화로운 시절”(1권, pp.156-58)이었다고 한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특정 집단 내의 동질감과 결속력을 확대하기도 하지만 사회 구성원 내의 신분, 성, 계급 사이의 차별과 배제의 기능도 함께 수반한다. 음식을 나누어 먹기를 거부하는 것은 적의와 적개심의 표현이자 차이 의 표식이기도 하다.
반면에 음식을 함께 먹는 행위는 신의와 호감, 동등성의 표현이기도 하다(박재환. 2009: 146).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풍성한 음식으로 부유함을 보여준 카마초의 연회와는 달리 소박한 음식을 진정한 호의로 대접한 산양치기들의 음식을 통하여 작가는 음식이 차별화의 기호가 아닌, 평등한 사회적 공동체의 상징이기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또 민생의 안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소일거리에만 집착하는 안이하고 나태한 스페인 귀족의 모습을 2권에 등장하는 리카르도(Ricardo) 공작 부처의 생활을 통하여 재현해내고 있다.
특히 당시 귀족들의 예법을 강조한 식생활을 비판한 일화가 2권의 47장에서 이야기된다. 산초가 바라타리아 섬의 총독이 된 것은 공작 부처의 장난질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리하여 산초는 그들이 누렸을 법한 식생활을 경험한다.
그런데 섬의 총독이 된 산초의 식사 과정은 일종의 의례처럼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 식탁이 자리한 홀에 들어선 산초는 시동들이 바친 물에 손을 씻고 식탁의 상석에 앉는다.
축복의 기도를 올리고 시동 하나가 턱받이 냅킨을 산초에게 걸어준 후 과일 접시가 올랐지만 회초리를 든 남자가 그 접시를 건드리자 과일이 산초 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회초리를 든 그 남자는 산초의 안녕과 병고를 책임지게 된 페드로 레시오라는 주치의이다.
손을 씻고, 냅킨을 하고, 전채 요리로 시작하는 스페인 황금세기의 귀족들의 전형적인 식사 장면이다. 귀족들은 식생활과 건강을 담당하는 주치의들을 두고 있었고, 메뉴는 세 단계, 즉 야채와 과일 그리고 샐러드, 혹은 거기에 하몽 등이 더해진 전채요리, 스테이크나 스튜, 그리고 치즈와 올리브 열매와 같이 짠 음식과 견과류로 만든 설탕 절임 등의 단 음식으로 이루어진 후식으로 구분되어 있었다(Pérez Samper. 1998: 34).
산초에게 제공된 메뉴 역시 통치자라는 그의 사회적 지위에 어울리는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담은 다양한 요리들”(2권, p. 575)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식이요법의 원칙에 따라 산초 앞에 놓인 화려한 음식들에 대하여 일일이 평가하면서 과일은 “지나치게 수분이 많아서”, 그리고 어떤 음식은 “너무 뜨겁기도 했고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갈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금기시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허기진 산초는 그가 평소에 좋아했던 ‘오야’를 보자 그 음식만은 의사가 허락해줄 것을 은근히 기대한다.
의사는 “그런 요리는 수도승이라든가 학교장들이라든가 농부들의 결혼식을 위해 있는 것일 뿐, 통치자 나리들의 식탁에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치자 나리들의 식탁에는 완전무결하게 깨끗하고 모양새가 지극히 고운 것만 올라가야 한다.”(2권, p. 578)면서 산초의 요청을 거절한다.
결국 섬의 영주가 되려는 산초의 꿈은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예법과 식이요법을 강요하는 한 의사의 끈질긴 집념 앞에서 무너져 버린다. 허기를 더 이상 참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박하고 조촐할지라도 그는 농부의 식단이 오히려 그의 배를 채워주었다.
돈키호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산초는 “전 나리와 함께 숲속이나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을 돌아다닐 때보다 지금 훨씬 더 큰 굶주림을 겪어내고 있답니다요.”(2권, p. 640)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산초는 그의 직책을 포기해버린다.
식전에 손을 씻고, 턱받이를 하고 음식을 먹는 것, 과학적 분석에 따라 음식을 가려 먹는 식이요법 등 먹는 행위에 예법이 끼어들면 음식은 새롭게 규정된다.
요리가 발달하면서 식사예법이 발명되었다. 예법이란 사람들을 일정한 위계질서와 이념의 틀에 순치시키는 문화적 장치이다. 식사예법은 가장 권력이 강한 사람을 정점으로 사람들을 신분계급에 따라 먹을 음식의 종류와 양, 식기의 종류와 크기, 수 등을 차등적으로 정하고 식탁에서의 행위 규범을 제시한다.
먹는 일에 권력이 개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Counihan. 2004: 31). 결국 통치자 산초가 먹으려 했던 것은 음식이 아니라 그에 딸려 있는 권력이요, 예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농부였을 때보다 더 극심한 배고픔에 시달렸던 것이다.
귀족들의 식생활에 관한 이 이야기를 통하여 세르반테스는 음식에 덧씌워진 권력과 인위적 절제를 벗겨내고 음식을 원래 있던 자리-생존을 위 한 것-로 돌려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