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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2. 르네상스기의 요리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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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르네상스기의 경제

르네상스기의 요리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헤 본 논문에서는 르네상스기에 등장했던 요리책을 분석 도구로 선택할 것이다. 사실 요리책은 그것의 등장만으로도 요리라는 주제를 역사적 대상으로 보는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대인들에게 요리책은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지만, 르네상스기의 사람들에게 었어서 요리책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이었다. 중세에 사라졌던 요리책은 14세기에 이르러 다시금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요리책의 재등장은 요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며, 책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요리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기 시작했음을 입증한다. 그러므로 요리분석에 앞서 르네상스기에 어떠한 요리책들이 간행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메우 중요한 작업이다.

♣ 요리책의 재등장

유럽에서 최초로 등장한 요리책은 기원 후 1세기경 로마의 마르쿠스 아피키우스(Marcus G. Apicius)가 피낸 『요리에 관하여(De Re Coquinaria 또는 De Re Culinaria)』 였다.34)

이 책은 요리사가 숙지해야 할 기본적인 지침과 채소, 곡류, 짐승, 해산물 등 요리 재료벌로 요리법들을 수록한 전문적인 요리책이었다. 이러한 항목별 분류는 당시 로마인들의 음식이 얼마나 다양했는지를 알려준다.

특이한 점은 소금에 절인 고기와 다진 고기가 별도의 장으로 수록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소금에 절인 고기와 다진 고기가 상당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요리 재료였음을 보여준다. 아피키우스의 요리책 이후, 유럽에 다시금 요리책이 등장하게 된 것은 14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1375년 타이유방(Taillevent)35)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졌던 프랑스의 기옴 티렐(Guillaume Tirel)이 『타이유방의 요리책(Le Viandier de Taillevent)』 이라는 요리책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종류의 요리책과 요리 관련 서적들이 출관되었다.

노르망디(Normandie) 백작의 주방에서 허드렛일로부터 경력을 쌓은 타이유방은 풀무질 보조, 꼬치에 고기꿰기, 불 지피기, 그리고 라드 정제하기 등의 도제 생활을 거쳐 1370년 국왕인 샤를 5세의 수석 요리사가 되었다.36)

이후 타이유방은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에 서임되었는데, 이것은 아피키우스 이후 최초로 요리를 통해 명성을 얻은 것이었다. 그 이후 ‘타이유방’이라는 이름은 그가 저술하지 않은 요리책의 제목에도 사용될 정도가 되었다. 그의 이름이 곧 권위가 되었던 것이다.

그가 펴낸 『타이유방의 요리책』 에는 230여 가지의 요리가 수록되었다. 필립 하이만(Philip Hyman)과 메리 하이만(Mary Hyman)에 따르면 230여 가지의 요리 중에서 80여 가지는 중세적인 요리이며, 나머지는 타이유방이 새롭게 만든 요리였다.37)

또한 책에서 타이유방은 여러 가지의 요리 기술을 개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소스를 걸죽하게 하기 위해 곡물가루와 구운 빵가루를 첨가하는 방법이었다.38) 새로운 요리들과 요리의 기술, 그리고 국왕의 요리사라는 권위를 통해 타이유방의 책은 이후 등장한 요리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타이유방의 요리책』 의 뒤를 이어 제작된 요리책은 『파리의 가사(Menagier de Parish)』 였다. 이 책은 1400년경 부르주아 계층의 저자가 새로 맞이할 어린 아내에게 집안 살림, 그 중에서도 요리를 중점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만든 책이었다.

이 책에는 300여 가지의 요리법이 수록되었는데, 수록된 요리법들은 타이유방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으나, 동시에 부르주아라는 저자의 계층적인 배경과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39)

한편, 사보이아(Savoia)에서는 공작인 아메데우스(Amedeus) 8세의 명령으로 그의 요리사였던 키콰르트 아미초(Chiquart Amiczo)가 『요리에 대하여(Du Fait de Cuisine)』 라는 이름의 책을 펴냈다. 1420년 간행된 이 책은 무엇보다도 귀족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아미초는 무작위로 요리법을 나열했던 기존의 요리책에서 벗어나 정찬을 구성하도록 요리법을 구성, 배치했다. 뿐만 아니라, 연회에 필요한 각종 식기류와 테이볼 세팅, 그러고 요리의 장식에 대헤서도 설명을 덧붙였다. 귀족의 취향을 위한 아미초의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귀족들이 각 코스의 요리에 만족하지 못할 때를 대비헤 그것을 대체 할 수 있는 단품 요리들을 추가했으며, 단식기간이나 사순절과 같은 금식 기간에 대버해서 육류와 유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귀족들의 입맛을 맞출 수 있는 요리법들을 수록했던 것이다.40)

영국에서도 이 시기에 연회 요리를 중심으로 한 요리책이 출간되었다. 1390년 에 발간된 『요리법(The Forme of Cury)』 은 영국 국왕인 리처드 2세가 그의 신하들을 위헤 베푼 연회 요리들의 요리법을 수록한 책이었다.

책의 목적은 글을 모르는 국왕의 요리사들에게 지시를 해야 하는 주방 책임자를 위해 요리 과정을 기록하고, 동시에 사프란을 비롯한 값비싼 요리 재료들의 반입로를 지속적으로 유지 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요리책들이 처옴 간행되었을 때 미친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 책들은 처음엔 모두 필사본의 형태로 등장했는데, 일일이 손으로 글자를 써야 하는 필사본의 특성상 많은 수의 책이 만들어질 수 없었다.

그러므로 위의 요리책들을 보유했던 사람들은 요리책의 저자를 고용한 군주, 또는 부르주아로 제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15세기 중반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인쇄술은 요리법의 전파에 일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1500년경에 이미 유럽에는 250여 곳 이상의 인쇄소가 존재했으며, 이들 인쇄소에서는 4만여 판의 책을 모두 2천여 만 권이나 찍어 냈다. 책의 생산은 1500년부터 1800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프랑스에서는 16세기에 한 해 최고로 1000여 가지의 새 책을 인쇄했지만, 18세기에는 4000여 가지의 새 책을 인쇄했던 것이다.42) 이러한 도서 수치는 지식의 확산이 상당히 광범위 한 현상어었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요리는 인쇄술을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된 지식 분야 중 하나였다.

프랑스에서는 1480년로터 1800년까지 50여종 이상의 요리 관련서적이 등장했는데, 그 중 20 여 쇄 이상 찍은 책들이 상당수를 차지했고, 50여 년 이상이나 판매된 책들도 존재했다. 1375년에 만들어진 타이유방의 『타이유방의 요리책』 역시 인쇄술의 발전에 힘입어 15세기를 지나면서 널러 퍼졌다.

『타이유방의 요리책』 은 1486년부터 1615년 사이에 13개 출판사룰 통해 23회나 재판되었으며, 파리뿐만이 아니라 리용(Lyon)과 톨루즈(Toulouse)를 비롯한 프랑스 각지로 전파되었다.43)

영국에서도 리차드 핀슨(Rycharde Pynson)이 인쇄한 『요리책(The Bake of Cokery)』 과 잔 반 워드(Jan van Worde)가 인쇄한 『고기요리를 써는 법(The Boke of Keruynage)』 을 비롯한 책들이 1508년부터 1613년까지 지속적으로 출판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44)

인쇄술의 발전과 요리에 대한 관심의 증가에 힘입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요리책은 이탈리아 사람으로서 풀라티나(Platina)45)라는 별칭으로 더욱 유명한 바르톨로메오 사키(Bartolomeo Sacchi)의 건전한 즐거움과 『건강의 유지에 관하여 (De Honesta Voluptate et Valetudine Vulgare)』 였다.

1470년 라틴어로 출간된 이 책은 1487년에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었으며, 1505년에는 프랑스어로, 1530년에는 득일어로 번역되는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46)

풀라티나는 메디치 가문의 그리스어 교사틀 지내기도 했으며, 교황청 도서관을 담당한 곤차가(Gonzaga) 추기경의 개인 비서틀 지내기도 했던 전형적인 르네상스기의 궁정인 중 한 사람이자, 휴머니즘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었다.

로마에 머물고 었던 동안 그는 1460년 줄리오 폼포니오 레토(Giulio Pomponio Leto)가 설립한 아카데미에 참여했는데, 이곳은 예절과 사상, 그러고 역사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에 대해 연구한 곳이었다.47)

『건전한 즐거움과 건강의 유지에 관하여』 는 이렇게 ‘고대’에 대한 학구적인 분위기 속에서 발간된 책이었다. 이 책은 총 열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부터 5권까지는 앙념, 과일과 견과류, 채소, 짐승과 가금류에 대한 각종 지침들과 섭생 이론들을 수록했고, 6권부터 10권까지는 각 요리 재료에 따른 요리법들을 기록했다.

이 책이 고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플라티나가 1권의 서문에서 폴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와 키케로 등 고대의 학자와 저술가들에게서 많은 영향력을 받았음을 인정했고, 요리에 있어서도 아피키우스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는 점을 통해 드러난다.48)

또한 이 책은 당시 이탈리아 남부를 지배하던 에스파냐의 영향을 받은 책이기도 했다. 풀라티나는 카탈루냐(Catalufla)식 닭고기 요리, 그리고 카탈루냐식 볼랑 망주(blancmange)49) 등 에스파냐의 요리법을 책에 수록했는데, 특히 카탈루냐식 볼랑망주에 대해서는 요리법의 마지막에 ‘이 요리를 초청을 통해 맛보았으며, 이보다 더욱 맛있는 것은 먹어보지 못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50)

1485년에 득일에서도 최초의 요리책인 『정통요리법(Kucherunmeisteri)』 이 간행되었다. 뉘른베르크(Nurnberg)에서 출간된 이 책은 고기, 구운 음식과 튀긴 음식, 금식기간의 음식, 소스, 그리고 식초와 포도주에 대한 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순무, 시금치 등을 사용한 채소 요리법과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51)의 요리법을 수록했다.52)

16세기에 이르러 유럽에는 다양한 종류의 요리책들이 나타났다. 먼저, 모든 요리법이 아니라 특정한 요리법만을 수록한 특화된 요리책들이 등장했다.

1584년에 영국에서 인쇄된 『달콤한 속재료가 들어간 요리책(A Book of Cookrye Very Necessary for All Such as Delight Therein)』 은 푸딩53)과 타르트(tart)54)를 주로 다룬 책이었다.

그리고 1585년에는 케이크 요리법을 주요 내용으로 한 『과부의 즐거움(The Widowes Treasure)』 이 간행되었다.56) 특화된 요리책들은 프랑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설탕과 꿀을 이용한 당과류와 잼, 그리고 마멀레이드56)의 요리법을 수록한 『저장 식품에 관한 책(Liures de Confitures)』 이 인기틀 끌었다.57) 달콤한 디저트로만 요리책이 특화된 것은 아니었다.

1494년 이탈리아 사람인 프란체스코 마리오 그라괄디(Francesco Mario Grapaldi)는 『가사에 대하여(De Partibus Aedium)』 에서 가정에서 저장해야 하는 음식과 포도주의 종류에 대해 언급했으며,58)

1540년 영국에서는 가정 요리를 하인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건강을 위해 가사에 유능한 하인들을 만들려는 사람들을 위한 책(A Boke for Leme a Man to Be Wyse in Buyldying of His Howse for the Helth cf His Body)』 이 간행되기도 했다.59)

특화된 요리책들이 등장하고 있었지만, 기존의 방식을 따라 다양한 종류의 요리법을 수록한 요리책들도 간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도 이전 시대의 요리책과 동일한 모습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 요리책들은 책의 구성에 있어서 변화를 보여주었다.

1542년 프랑스에서 전문 요리사인 피에르 세르장(Pierre Sergent)이 펴낸 『모든 요리를 다룬 위대한 요리책(Le Grand Cuisinier de Toute Cuisine)』 은 요리 책의 구성에 있어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책이었다.

이전까지의 요리책들은 크게 두 가지의 방식, 즉 연회에 제공된 요리를 그 순서대로 기록하거나 또는 주재료별로 각각의 요리법을 수록하는 방식을 채택했지만, 세르장은 자신의 책에서 기존의 전통에 맞게 요리를 제공하는 순서대로 요리법을 기록함과 동시에, 기록한 요리법 들을 다시금 알파벳 순서대로 정리하여 기록했던 것이다.

이렇게 요리의 이름에 따라 요리법을 정리하는 방식은 현대의 요리책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 중요한 발전이었다.60)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1570년에 교황 피우스 5세의 개인 요리사였던 바르톨로메오 스카피 (Bartolomeo Scappi)가 『작품(Opera)』 을 간행했다.

궁정의 요리를 대상으로 했다는 것에는 이전 시대의 요리책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어 책에는 일상적인 식사와 환자용 식사를 별도로 기록했으며, 요리 재료의 구매와 그것의 보존, 그리고 주방기구와 포크를 로함한 식사도구의 사용에 대해서도 별도의 장을 마련했다.

특히 식사도구에 대한 스카피의 언급은 요리책이 ‘매너’의 요소를 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549년에 크러스토로로 디 메시스로고(Christoforo di Messisbugo)가 펴낸 『연회(Banchetti)』 에서도 식사틀 둘러싼 매너의 문제가 나타난다.

그는 페라라(Ferrara)를 지배한 에스테(Este)가의 연회에 대헤 기술하면서 요리뿐만이 아니라 식사 중에 오고 가는 대화와 예절의 문제까지도 주의 깊게 살펴보았던 것이다.61) 16세기 유럽의 요리책의 또 다른 변화는 요리책의 간행 지역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득일과 에스파냐에서도 요리책들이 등장했다. 득일에서는 스카피에게서 영향을 받아 1581년 막스 툼폴트(Max Rumpolt)가 『새로운 요리책(Ein Neu Kockbuch)』 을 펴냈다.62)

에스파냐에서는 1520년에 『죽과 스튜요리에 대하여(De Guisades Manjares y Potages)』, 그리고 1609년에는 『요리에 대한 책(Libro del Arte de Cozina』 이 간행되었다.63) 르네상스는 요리에 관한 책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였다.

요리법을 수록한 전통적인 요리책 이외에도, 요리가 빈번하게 등장한 문학 작품과 건강을 주제로 영양과 섭생법을 다룬 의학 서적, 그리고 새로운 요리 재료로 떠오른 동물과 식물을 다룬 박물학 서적과 식사 메너를 다룬 예절서 등이 지속적으로 간행되었다.64)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로네상스기의 사람들은 더욱 많은 요리책과 요리 관련 서적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도 고전으로 평가받았을 『타이유방의 요리책』 에서부터 새로운 것으로 여겨졌을 스카피의 『작품』 에 이르기까지 선택의 폭은 매우 다양했다.

이것은 르네상스기에 수많은 요리들이 만들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며, 요리책을 통해 당시의 요리들이 어떤 모습을 갖고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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