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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1. 르네상스기의 요리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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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의약품으로서의 요리

르네상스기의 요리를 검토해볼 때, 아랍과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영향온 요리책의 표면에만 머친 것이 아니었다. 요리 재료와 방법 등 요리책에 수록된 내용들의 이면에는 그러한 재료들과 방법올 선택하게끔 사람들을 이끌었던 아랍과 고대 그리스 로마의 사상이 존재했다.

아랍의 사상과 고대 그리스 로마의 사상은 정신과 금욕올 강조했던 중세의 기득교 사상파는 달랐다. 이 사상들은 르네상스기의 요리에 육체라는 고려 대상을 가져다 주었다.

르네상스기의 사람들은 아랍의 사상을 통해 건강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건전한 즐거움을 추구하여 육체틀 일깨웠으며, 뒤이어 고대 그리스 로마의 사상을 통해 고대인돌이 누렸던 삶의 방식들을 되살려 육체적 쾌락을 맛보았다.

이러한 아랍과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영향력이 절정을 이룬 시기는 달랐으며, 그러한 차이가 요리책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그렇지만, 이들 사상이 육체를 이야기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주목했던 요소는 바로 맛이었다.

♣ 의약품으로서의 요리 - 건강을 통한 육체의 각성

중세라는 시기에 육체적인 욕망은 신에 대한 영적인 추구의 방해물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기득교인들이 사막에서의 철야기도나 과도한 금식과 같은 육체적인 고행을 경험한 것은 아니었지만,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기득교도들에게 이상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과 음식은 이제 육체적인 욕망으로 치부되었다. 출산이외의 목적으로 성행위틀 하는 것과 배고픔을 만족하는 것 이상으로 음식을 탐하는 것은 모두 죄악으로 간주되었다.182) 중세 기득교 세계에서 육체적 욕망은 걸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슬람교는 이와 달랐다. 이슬람교는 신도들에게 현세와 내세에서의 육체적 즐거움을 보장했는데, 그 중에서도 음식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코란에서는 사람들에게 현세의 삶을 사는 동안 신께서 창조하신 만물 중에서 좋은 음식들만을 골라 아름답고 정결한 방법으로 먹고 마시라고 가르쳤으며,183) 내세에 대해서도 의로운 사람돌은 즐겁게 먹고 마시며 지내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184)

『바그다드 요리책』 의 저자 역시 음식은 신이 인간에게 보장한 6가지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 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음식올 올바르게 섭취할 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며, 건강할 때만이 다른 5가지의 즐거움과 함께 다시금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185)

이러한 상황에서 음식을 올바르게 섭취하는 방법으로서 발전된 요리는 가장 정결한 것이자 가장 중요한 즐거움을 주는 수단이 었다. 12세기 중반 코란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유럽에 퍼지면서 이러한 이슬람의 가르침들이 유럽인들에게 인지되기 시작했다.

몽부아시에의 성 피에르(Pierre le Veliable de Montboissieier)186)는 이슬람 세력을 무찌르기 위헤 이슬람의 신학적 교의를 밝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코란을 번역한 것이었지만, 그의 행동은 오히려 코란에 담긴 이슬람의 감각적인 세계를 기득교 지도자의 손을 통헤 서유럽으로 전파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187)

이후에 『바그다드 요리책』 역시 코란에 실린 이와 같온 이슬람교의 가르침을 유럽으로 충실하게 전달했다. 『바그다드 요리책』 은 유럽인들에게 음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각성시켰다.

새로운 인식이란 음식을 먹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가 시작했다는 것과, 즐거움으로 여기면서부터 음식과 육체와의 연관 관계틀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리는 이러한 즐거움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아랍의 요리들은 근본적으로 육체와 관계된 것이었다. 그것은 음식을 통해 육체에 즐거움을 주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음식을 통한 즐거움은 정결한 즐거옴 이었으며, 어디까지나 건강을 고려하는 절제된 즐거옴이었다.

그러므로 음식은 육체를 위한 일종의 의약품으로 인식되었으며, 요리는 일중의 조제과정과도 같았다. 장밋빛과 금빛 등 갖가지 색깔을 띤 요리와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요리, 그리고 복잡 미묘한 맛과 향기를 띤 요리 등은 육체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의약품으로도 육체에 영향을 미쳤다.188)

설탕과 향신료, 사프란을 비롯한 다양한 요리 재료들은 ‘맛’ 이상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것들은 현재의 건강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여러 질병들을 예방하는 방편이었다.

음식을 즐거움의 수단이자, 동시에 의약품으로 바라봤던 이러한 생각들은 고스란히 유럽으로 전해졌고, 그것은 르네상스가 막 시작할 무렵 기득교가 아닌 새로운 과학적 사고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의약품으로서의 요리에 대한 관심은 아랍의 요리가 유럽에 영향을 미처기 이전인 13세기 말부터 본격화되었다. 아비켄나(Avicenna)률 비롯한 아랍 의학자들의 저작은 중세 말기에 새롭게 불어닥친 의학에 대한 관심을 타고 살레르노(Salemo)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의 의학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요리는 두 가지의 역할을 육체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건강한 사람들에게 음식은 건강을 유지시키는 자양강장제로 작용했으며, 병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치료제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었다.189) 르네상스기에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체액과 관련된 문제였다.

만물이 혈액, 점액, 노란 담즙, 그러고 검은 담즙의 일정한 혼합 비율로 이루어져 었다는 체액 이론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히포크라테스의 산물이었지만, 르네상스기에 영향을 미친 체액 이론은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을 자신의 이론으로 구체화했던 같레노스(Galenos)와 아비켄나의 체액 이론이었다.

특히 르네상스기에 아랍의 요리가 유럽에서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아랍의 의학자인 아비켄나의 공헌이 컸다.190) 아비켄나는 생명이 열과 습기로 구성된다고 믿었다. 그는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열을 발산한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인간은 열을 발산하기 위헤 열의 재료인 습기를 육체에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이어서 그는 인간이 태어날 때에는 습기를 몸에 가지고 태어나지만, 살아가면서 습기를 소모하기 때문에 육체는 점점 차갑고 건조하게 변해간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음식은 바로 ‘열’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즉 음식이 육체에 흡수되어 습기가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요리와 육체와의 관계는 명확하게 되었다.191) 아비켄나에게 있어서 음식은 육체를 구성하는 성분이었다. 그러므로 육체에 흡수되어 습기를 잘 내고, 열에 잘 반응할 수 있는 요리가 만들어져야 했다.

그러한 성질은 4가지의 체액 중에서 혈액의 성질과 같은 것이었다. 음식이 갖고 있는 체액의 성분을 관벌하는 기준으로 아비켄나는 맛을 제시했다. 그는 맛있는 음식이 육체와도 잘 맞는다고 주장했다.

이것온 필연적으로 단맛을 선호하는 현상을 가져 왔고, 단맛의 요리가 만들어지게 되는 배경을 제공했다. 동시에 영양학적으로도 단 맛은 열과 습기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고 간주되었다. 만약 맛에 문제가 있다면 그러한 문제는 양념, 특히 향신료를 통헤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이것은 건강과 즐거옴, 즉 미각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으며, 육체의 위치가 떠오르는 순간이었고, 아울러 요리의 위치가 을라가는 순간이었다. 건강의 유지에 대한 아비켄나의 사상은 이후 아랍의 요리가 유럽으로 진입하는데 든든한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요리는 치료제로도 받아들여졌다. 특정한 향기가 나고, 특정한 색을 띠며, 특정한 맛을 갖고 었는 음식을 먹는 것은 향기와 색, 그리고 맛이 내포하는 그 무언가의 정수를 맛보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에방할 수 있었다.

요리가 치료제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배경을 제공한 사람은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였다. 피렌체의 대학에서 제약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점차 철학에 매료되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풀라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매료된 풀라톤의 철학은 신비주의적이고 마법적인 성격을 지닌 철학이었다. 거기엔 그가 공부한 지적 배경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했다.

피치노는 풀라톤의 저작에 대한 주석서를 펴내기에 앞서 고대 이집트의 현자라고 하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가 썼다는 신비주의적 서적을 번역했는데, 그러한 과정 속에서 그는 신의 가르침이 조로아스터(Zoroaster)로부터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에게로, 다시 그것이 풀라톤과 뒤를 이어 교부철학자들에게 전해졌다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풀라톤의 주석서를 피내면서 풀로티노스(Plotinos)와 포르피리우스(Phorphyrius), 그리고 프로클로스(Proclos)률 비롯한 신풀라톤주의자들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193) 피처노가 영향을 받은 신풀라톤주의는 3세기경 폴로티노스에 의해서 확립된 것이었다.

폴로티노스는 구원을 위해 인간은 철학적 명상을 통해 신의 성스러운 빛과 합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폴로티노스를 계승한 사람들은 철학적 명상과 함께 종교적 의식을 함께 시행헤야 한다고 믿었다.

특히 포르피러우스의 제자인 이암블리쿠스(lamblichus)는 제사의식과 주문, 그리고 마법적 방법을 통해 신과 접촉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194) 기득교의 권위가 완전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밀교적인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었다.

그러나 기득교가 안정되면서 신풀라톤주의는 기득교에 대적하는 것으로 간주 되었다. 529년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대제가 아테네에 있는 풀라톤의 아카데미를 폐쇄하면서 마법과 관련된 이러한 철학 분파들은 아리우스(Arius)파, 단성론자, 네스토리우스(Nestorius)파 등 기득교내의 여러 이단 교파와 함께 아랍으로 이동했다.

그둘의 마법 지식은 아랍인들에 의해 계승되었고, 르네상스기에 다시금 유럽으로 전래되기 전까지 그곳에서 점성술과 연금슬 등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아랍과 유럽의 접촉은 르네상스기에 마법, 즉 점성술과 연금술이 폭발하는 도화선이 되었다.195)

피치노는 그러한 가르침들을 『생명의 서(De Vita Libri Tres)』 에서 정리했는데, 여기께서 언급한 치료방법이나 약제 등은 당시 유행한 아랍의 요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피치노는 장미수와 향신료, 그러고 신맛 나는 과일의 껍질을 가능한 최고로 순수한 포도주에 섞어 의약품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약에 대해 그것은 목성과 금성의 영향력을 받아 만들었으며, 신체의 각 부분을 강화하고 영흔에 광채를 더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기록했다.196)

향신료와 장미수, 그리고 신맛을 내는 재료들은 르네상스기의 요리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재료였다. 이러한 요리 재료가 육체에 작용하는 치료제의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음식과 육체를 연관지어 생각하는 사고 방식이 널러 퍼져있었음을 의미한다.

향신료는 특유의 맛과 향기를 통해 효과적인 예방약으로 인정받았다. 피치노는 1/4온스의 몰약197)과 1/2온스의 백단향, 1온스의 계피, 그리고 1/8온스의 사프란을 섞온 가루를 메운 맛을 내는 재료와 섞으면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 일어나는 몸의 부패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I98)

향신료는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요리 과정 중에 첨가된 것이 아니라 상한 음식에서 발생하는 몸의 부패를 막기 위해 첨가된 것이었다. 반면에 소금이나 식초에 절이거나 기름에 요리 재료를 저장하는 것은 음식 자체를 보흐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199)

향신료가 가진 향기는 의약품으로 효과를 발휘한다고 여겨졌다. 중세부터 악취는 역병의 원인으로 간주되었는데,200) 중세인들은 역병에 희생된 사람에게서 발산되는 악취틀 들이마시면 역병에 전염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때 향신료의 향기는 이러한 악취틀 물리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201) 그리하여 『파리의 가사』 에서는 음식의 맛과 풍미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향신료틀 요리 과정 중 제일 마지막에 넣으라고 가르쳤다.202)

이러한 가르침은 다른 요리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5세기 이탈리아와 영국, 그리고 북유럽의 요리책에서도 요리가 다 되었을 때, 또는 요리를 접대하기 직전에 ‘향신료 가루’를 넣으라고 지시했다.203)

이렇게 향신료를 요리의 과정 중 마지막에 넣으라고 했던 것온 향기가 가진 의약품으로서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 였다. 설탕 또한 피치노에게 중요한 의약품이었다.

그는 달이 사자자리나 양자리, 또는 궁수자리의 위치에 들어왔을 때 장미수에 녹인 순수한 백설탕에 금박과 거세한 수닭의 육즙을 섞어 굳힌 것을 복용하라고 가르쳤는데, 그것은 육체에 있는 습기를 유지하는 효과를 지닌 의약품이었다.204)

아울러 그는 노화 방지를 위한 의약품의 제조법에서도 설탕을 이용했다. 그는 설탕과 신맛의 과일을 장미수에 첨가헤 끓인 뒤, 거기에 계피와 사프란을 함께 뿌리거나, 또는 향신료틀 섞은 장미수를 뿌리면 효과가 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20S)

사프란은 점성술과 연관되어 태양의 힘을 육체에 받아들이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했다. 피치노는 태양으로부터 육체와 정신에 힘을 얻기 위헤서는 보석과 식물, 그리고 동물 가운데에서 태양과 가까운 성질을 지닌 것을 골라 그것을 가지고 다니거나 복용하라고 권장했는데, 그 중 하나로 사프란을 지목했다.

사프란이 발산하는 노란 빛이 태양의 성질과 흡사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프란을 비롯하여 태양과 가까운 성질을 지녔다고 여겨진 몰약, 유향, 계피 등을 음식으로 섭취할 것을 권장했는데, 그것은 사프란과 계피 등이 요리에 널리 사용되는 이유가 되었다.

노란 빛을 내는 사프란은 태양, 그리고 금과도 연계되어 중요한 의약품의 재료가 되었다.206) 음식에서 의약품의 효과틀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향신료, 설탕, 사프란 같은 요리 재료와 더불어 중요하게 고려된 요소는 바로 요리법이었다.

생선 국물이나 고기 국물을 굳혀 만든 젤리는 불빛 아래에서 보석처럼 빛이 났는데, 르네상스기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젤리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 재료의 정수가 추출되어 굳은 것 처럼 보였다. 젤리를 먹는 것온 그러한 정수를 흡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207)

빛을 내기 위해 르네상스기의 요리사들은 설탕을 이용하기도 했다. 요리 과정에서 완성된 요리 위에 뿌려진 설탕은 맛을 내려는 목적뿐만이 아니라 빛을 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20S) 르네상스 초기에 사상가들은 아랍의 의학 이론을 통해서 육체를 재발견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음식은 의약품으로 간주될 수 있었고, 육체에 즐거움을 부여하는 중요 수단이 되었다. 아랍의 요리는 아랍의 의약 이론을 배경으로 삼아 유럽으로 진출했다. 음식과 육체는 건강을 메개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점차 음식과 육체를 관련지은 아랍의 의약 이론이외에 요리틀 통해 맛을 즐기면서 육체적 만족을 보다 직접적으로 이루려는 생각들이 등장했다. 그러한 생각돌은 고대 그리스 로마에 대한 관심의 부활과 관련이 있다.

학자들은 고전의 재발견을 통해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의 감각적인 삶을 르네상스기에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그 중에서 요리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이제 요리와 육체의 관계는 맛이라는 즐거움을 통해 새롭게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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