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유럽의 요리책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 요리의 영향으로 새로운 맛과 새로운 요리 재료돌이 첨가되기 시작했다. 우선, 맛에 있어서는 기존의 권위틀 누리던 단맛과 함께 짠맛이 르네상스기 유럽을 선도하는 맛으로 떠 올랐다.
그러나 짠맛은 맛의 문제이자, 동시에 재료의 문제이기도 하다. 15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일어난 짠맛의 부활은 단지 요리에 소금을 많이 넣기 시작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15세기 중반 이후에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영향을 받아 소금의 사용을 점차 늘렸으며, 동시에 엔초비(anchovy)122) 같은 소금에 절인 생선이나 소금에 절인 고기를 주재료로 선택해 요리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짠맛의 유행은 단맛이나 신맛처럼 양념을 직접 사용해 이루어진 것이자, 동시에 요리의 주재료에 있어서 일어난 변화이기도 했다.
소금기가 가미된 생선이나 고기 말고도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영향을 받아 15세기 중반 이후부터 유럽인들이 다시금 섭취하기 시작한 요리 재료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해산물은 이 시기에 이르러 새롭게 각광을 받은 요리 재료였다.
생선은 중세에도 먹었던 재료였지만, 르네상스기에는 생선과 함께 오정어, 성게, 조개 등 다른 해산물들이 소비되었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굴이 주목을 받았다. 육류의 사용에 었어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이 시기에 이르러 내장을 비롯한 각종 부위의 고기와 다진 고기가 살코기에 버금가는 지위를 획득했다. 채소 역시 이 시기에 새로운 요리 재료로 등장했다. 아티초크(artichoke)123)와 아스파라거스(asparagus)124)를 비롯해 각종 채소들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으며 버섯류가 유행했다.125)
이러한 요리 재료들은 이미 오래 전에 유럽에서 사라졌거나, 명맥만을 근근히 유지했던 것들이었지만, 15세기 중반 이후부터 그것들이 고대에 누렸을 지위로 격상되기 시작했다.126)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15세기 중반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던 짠맛을 내는 각종 요리 재료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 요리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었으며, 아피키우스의 책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1세기 아피키우스의 책에서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소금으로 절일 것을 강조했다.127)
또한 생선 완자요리를 만들 때 소금에 절인 생선을 이용했으며,128) 돼지고기를 삶을 때에도 생고기가 아니라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사용했다.129)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는 고기를 이용한 조림요리의 주재료이기도 했다.130)
이렇게 소금으로 저장한 각종 요리 재료들은 15세기 중반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유럽의 요리책에 등장했다. 풀라티나는 그의 책에서 소금이 음식의 맛을 오랫 동안 유지시키며, 특히 햄과 절임고기를 만들면 고기를 오랫동안 보존하는데 유용 하다고 주장했다.131)
그것은 생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풀라티나는 소금에 절인 생선이 오랫동안 보존되며, 소금에 절인 어란(botargo)132)은 맛에 있어서도 최고의 맛을 선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133) 유럽의 요리책에서 소금으로 저장한 생선과 고기틀 사용헤서 만든 요리률 찾는 것은 걸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부록 2에 수록된 15세기 프랑스의 대구요리법 에서는 소금에 절인 대구를 삶은 뒤 마늘을 넣어 만든 소스를 꺼얹었으며,134) 16세기에 이탈리아인돌은 엔초비를 이용헤 수프를 만들고, 햄을 구웠다.135) 메시스부고는 소금물을 끓이고 거기에 순무와 계란을 넣어 수프를 만돌었다.136)
해산물 역시 소금에 절인 생선과 고기처럼 고대의 맛을 르네상스기의 사람들이 되살려 놓은 것이었다. 르네상스기 사람들은 고대인들이 섭취했던 각종 해산물 중에서도 특히 굴에 열광을 보냈다. 굴에 대한 관심은 이미 아피키우스에게서 드러난다.
아피키우스는 굴을 이용헤서 고기를 양념하는 소스를 만들었으며,137) 굴을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고기 국물과 기름, 포도주를 섞어 만든 소스를 제안했는데, 그것이 부록 2에 수록되어 있다.138)
『바그다드 요리책』에서는 굴을 이용한 요리법을 찾아볼 수 없는데도, 15세기 중반부터 유럽의 요리책에 굴을 이용한 요리법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굴을 고대 요리의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폴라티나는 굴 요리법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겼는데, 굴을 숯불 위에서 구운 뒤 껍질을 벗겨 먹거나, 기름에 튀겨 과즙을 뿌려 먹는다고 기록했다.139) 부록 2에 수록된 15세기 영국의 요리법에서도 굴 요리법을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인들은 굴의 육즙에 갖은 양념을 한 다음, 그것에 다시 굴올 넣고 끓여먹었다.140) 16세기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굴은 껍데기 그대로 구운 뒤 기롬을 살짝 둘러서 먹어야 하며, 그것을 날 것으로 먹는 것은 굴의 맛을 모르는 행위’141)라고 했는데, 이것을 통헤 당시에 이미 굴을 다양한 방법으로 먹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굴은 ‘죽은 자의 열정도 되살릴 수 있는 감미롭고 감각적인 음식’I42)으로 유럽인들의 식탁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육류는 아피키우스의 요리책과 르네상스기 요리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 했다.
물론 『바그다드 요리책』 에서도 고기를 이용한 요리법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르네상스기의 요리책에는 그것이 고대의 아피키우스 요리책의 영향을 받았음을 확신할 수 있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아피키우스의 책에는 잘게 다지고 간 고기 요리들이 상당수 수록되어 있었다.
재료틀 다지고 가는 요리법은 육류에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아피키우스의 책에는 생선을 다지고 같아서 만든 요리들도 존재했다. 아피키우스는 로마인들이 바닷게, 바닷가재, 오정어, 새우와 굴을 다져서 요리를 만든다고 기록했다.143)
또한 그는 오징어를 같아서 만든 크로켓(croquette)144) 의 요리법을 수록했다.145) 그는 육류를 같아서 만든 요리법으로 소시지와 미트볼 요리를 기록했는데,
그것은 돼지고기를 갈아 고기 국물, 견과류, 파슬리, 후추 등을 섞어 돼지 창자에 넣은 다음 훈제한 루카니아(Lucania)146)식 소시지 요리147)와 미트볼을 만든 다옴 그 위에 각종 양념과 고기 국물을 섞어 만든 소스를 얹은 오스티아(Ostia)148)식 미트볼 요리149) 등이었다.
르네상스기의 요리에서도 잘게 다지거나, 갈아서 만드는 고기 요리가 다수 발견된다는 사실은 르네상스기의 요리가 고대의 맛을 되살리려 노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고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르네상스기의 요리들은 부록 2에 수록되어 있다.
15세기에 영국에서는 삶은 생선을 곱게 같아서 양념한 다옴 솔에 끓여 먹었으며,150) 소고기를 이용해서 미트볼을 만들었다.151)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요리 사들은 송아지 고기틀 이용한 파테(pate)152)를 만들어 접대했다.153)
르네상스기의 고기 요리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고대의 영향력은 바로 살코기가 아닌, 내장과 기타 부위들을 이용한 요리의 등장이다. 아피키우스는 자신의 책에 뇌 소시지,154) 돼지 유방 요리,155) 돼지 위 요리156) 등 고기의 여러 부위를 이용해서 만든 요리를 수록했다.
15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는 살코기가 아닌 고기의 다른 부위를 이용해서 다양한 요리를 만들었다. 북유럽에는 사슴의 골수로 페스트리(pastry)157)를 만들어 먹었으며,158) 득일에서는 돼지의 창자를 어용헤서 소시지를 만돌었다.159)
영국에서는 돼지의 창자가 아니라 닭의 목을 이용헤서 소시지를 만돌었다.160) 또한 양의 내장에 빵가루, 계란, 크림, 우유 등의 재료를 넣고 후추와 사프란으로 양념하여 삶아 먹기도 했다.161) 프랑스에서는 소의 혀를 구워 먹었다.162)
이탈리아에서도 다양한 부위를 요리로 만들어 먹었다. 15세기의 요리법 중에서는 돼지의 간을 삶아 곱게 간 다음 그것을 다시 굽는 요리법이 있었다.163) 16세기에도 이러한 취향은 지속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돼지의 귀, 새끼 양의 고환, 그리고 송어의 내장을 이용헤 요리를 만들었다. 이러한 요리법 역시 부록 2에 수록되어 있다. 채소 역시 고대의 요리 재료가 르네상스기에 이르러 되살아난 것이었다.
콩과 당근, 순무, 양상추 등 다양한 채소들이 르네상스기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했다. 그 중에서도 아티초크와 아스파라거스같은 부드러운 새순들이 인기를 끌었다.
아피키우스는 특별히 아스파라거스를 손질하는 법을 책에 수록했으며,165) 아티초크의 일종인 카르둔(cardoon)166)을 먹기 위해 두 가지의 드레싱을 기록했다.167) 폴라티나률 통해 15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아티초크와 아스파라거스가 유럽의 요리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아티초크에 대해서 식용으로 두 중류의 아티초크가 재배되고 있으며, 대부분 식초나 묽게 희석시킨 꿀에 저장한다고 기록했다.168) 또한 그는 아스파라거스룰 먹는 법에 대헤서도 기록했다.
그에 따르면, 아스파라거스는 살짝 삶아 소금과 기름, 그리고 식초률 뿌려 먹거나 포도주를 뿌려 먹었을 때 가장 맛이 좋은 채소였다.169) 16세기 어탈리아에 서는 아티초크룹 넣은 패스트리를 먹었으며,170)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소금과 기름, 후추로 양념한 아스파라거스를 별미로 접대했다.171)
아티초크와 아스파라거스를 이용한 몇 가지의 요리들이 부록 2에 추가되어 있다. 채소와 함께 버섯 역시 고대인들이 즐겨 먹었던 요리 재료를 르네상스인들이 되살려 놓은 것이었다.
『바그다드 요리책』 에서는 버섯이 사용된 요리법을 찾아 볼 수 없지만, 아피키우스의 요리책에서는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
아랍의 지역적 특색을 감안할 때, 버섯이 요리 재료로 쓰이지 않은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무역이라는 요소를 고려한다면 버섯이 아랍의 요리에서 사용되지 않은 것은 환경의 영향보다는 문화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피키우스는 송로버섯의 손질법과 요리법에 대헤 기록했다. 그는 송로버섯에 대헤서 물에 씻지 말고 마른 톱밥 속에 보관해야 하며, 보관하는 통을 봉한 다옴 서늘한 곳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172) 이것은 이미 고대 로마 시대에 송로버섯의 향기가 요리에서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주는 중거이다.
또한 그는 송로버섯과 곰보버섯을 이용한 요리법도 함께 기록했다. 송로버섯은 살짝 굽거나 튀긴 다음 꿀과 고기 국물, 소금 등을 이용해 만든 소스를 얹어냈고,173) 곰보버섯은 가룸(garum)174)과 후추로 양념하여 빠르게 볶아냈다.175)
15세기 중반부터 사람들은 고대인들이 좋아했던 버섯들을 같망했다. 풀라티나는 송로버섯과 그 밖의 다른 버섯들이 사치스러운 식탁에 자주 오른다고 기록했다.176)
15세기에 이탈리아에서는 야생의 버섯을 이용한 볶음 요리를 만들었으며,177) 16세기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크리스마스에 먹기 위해 만든 생선찜 요리에 송이버섯을 넣었다.178)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닭고기와 에살로트(echalote)179), 계란을 섞어 버섯의 갓에 채운 다옴 구워 먹기도 했으며,180) 밀가루를 입힌 버섯을 튀겨먹기도 했다.191) 부록 2에 수록된 요리법들을 통해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요리책을 통해서 볼 때, 르네상스를 거치며 상당한 요리법의 혁신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양념의 도입과 요리 재료의 변화였다. 아랍 요리의 영향으로 단맛과 신맛, 그리고 향신료의 풍부한 맛이 유럽 요리의 맛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로마 요리의 영향으로 해산물, 내장, 채소 등 새로운 재료들이 요리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복쪽으로는 덴마크와 득일, 그리고 영국에서, 그리고 남쭉으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드러났던 전 유럽적인 현상이었다.
르네상스기의 요리틀 아랍의 영향과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영향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는 위험한 시도일 수도 있다. 분명히 이 두 가지의 영향들이 시간의 벽을 엄격하게 두고서 작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요리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된 15세기 중반 이후에도 아랍 요리의 특정적 요소인 향신료와 설탕 등의 사용이 요리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15세기 중반부터 고대 그리스 로마 요리의 영향력이 점차 중가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르네상스가 끝난 17세기 초에 이르면 더욱 더 분명한 현상이 되었다. 이렇게 요리의 변화를 통해 나타나는 일정한 경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희를 살펴보아야 한다.
요리의 변화는 요리룰 둘러싼 사희의 복합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요리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는 바로 사상과 정치, 그리고 경제적 배경들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