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만 적용된다는 단어 “문화culture”의 어원은 “경작하다cultiver”1)이다. 결국 문화란 생존하는 문제, 즉 먹고 사는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얘기다.
브리야 사바랭Brillat-Savarin의 “네가 먹는 것을 말하면 네가 누구인 지 말해 줄께”2)라는 유명한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식문화야말로 생명과 닿아 있는 일상생활이며 한 지역이나 집단의 삶의 모습을 판단하는 척도다.
생존을 위한 식사라는 입장에서 보면 인간에게 먹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을 것이며, 먹기 위해 최고의 기술을 발달시켰을 것이 분명하다. 요즘에도 생명공학에서 차지하는 많은 분야가 식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식문화는 최첨단 과학이 숨어있는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음식에 관한 기록들이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감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는 학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식법이란 18세기 말에 프랑스에서 탄생했으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세기 초”3)라고 하지만 최근까지 이 주제는 지식인들에게 가까스로 흥미를 끄는 정도의, 일종의 심심풀이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사실이다.4)
그러나 식문화는 대단히 중요하고 진지한 주제다. 「맛의 모습」 이라는 책을 발간한 브리야 사바랭은 요리사로도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철학 자이자 음악가이며 법률가였다. 그의 책은 단순한 조리법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미식에 관계되는 과학적이면서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5)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문학도가 요리 얘기를 한다는 것이 완벽한 외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기원전 8000년경 인류의 생활방식에 전면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수렵, 채집의 이동생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정착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일정한 장소에서 농사를 짓는 생활은 곡물생산량을 늘리면서 출산률을 높여 노동력이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다.6) 이는 5만 년 전의 불의 발명과 더불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체계의 식문화를 소유하게 된 근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식문화가 인간으로 하여금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종으로 군림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음식의 선택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다. 1800년대까지 아일랜드인의 주식은 보리와 오트밀이었지만, 악천후에서도 잘 자라고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좋은 감자가 유입되면서 점점 많은 농가가 주식 작물을 감자로 교체하였다.
그런데 80% 이상의 농가가 주식 작물을 감자로 택하게 되었을 시기인 1845년에 감자 마름병 등으로 흉년이 계속되면서, 6년 동안 100만 명 이상이 기아, 발진티푸스, 콜레라 등으로 사망하고, 150만 명은 견디다 못해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게 된다.7) 현재 그 당시보다 인구가 적은 나라는 아일랜드가 유일할 것이다.
이와 같이 식문화는 생존권과도 직결되어 있다. 그래서 몰리에르의 희곡 「수전노」에 인용된 문구에서 나타나듯이, 인간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올바른 것도 같다.8)
결국 과거 기독교의 세계관으로 인간은 아이를 잉태할 목적으로만 성행위를 할 수 있었듯이 생존을 위해 서만 먹는다는 것인데, 덴마크 어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 「바베트의 만찬」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파리 최고급 레스토랑 요리사 출신인 주인공이 복권에 당첨 된 돈 전부를 써서 만든 요리로 은혜를 베풀어준 두 자매의 마을 주민 모두를 초대했을 때 검은 옷을 입은 종교적으로 독실한 할머니가 말한다.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음식을 탐하는 것은 삼가야 하며, 쾌락에 대한 절제가 식사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도 맛있는 프랑스 음식을 머금고 짓는 근엄한 할머니의 만족한 표정은 아이러니였다.
이는 “근검절약”을 최대의 덕목으로 삼고 있는 네덜란드의 “금욕주의적 식습관”9)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의 북쪽, 주로 신교를 믿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사실 영국을 포함한 북유럽에서는 먹는 음식에 대해 말하거나 요리의 맛에 대해 품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풍토다.10)
이와는 반대로 프랑스에서는 “식탁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표명하지 않는, 식도락가도 아니며 음식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저속하고 비사교적인 것으로 매우 나쁜 이미지로”11) 받아들여진다.
사실 영국인은 “음식을 즐기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육체를 움직이기 위한 연료”12) 정도로 여긴다지만 동물이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서 양분을 섭취하는 것과는 다르게 인간의 식사는 자연환경과 민족의 역사, 종교, 정치 등의 문화적 행동양식과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자신의 환경에 맞는 것을 섭취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며, 한 그룹에서 혐오스러운 음식이 다른 쪽에서는 환영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인디언은 소고기를 먹지 않으며, 유대인을 포함한 이슬람과 중앙아시아 종교와 관련 있는 주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일부분과 동남아시아에서는 닭고기와 계란을 피하며, 말고기는 옛날에 중앙아시아에서만 소비되었지만 19세기에 서양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프랑스에서는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졌지만 영국과 북미의 경우에는 거부반응을 일으켰다.13)
존 스튜어트 밀의 말대로 “한 개인의 미각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일”이라지만 미각에 있어 각 개인의 “선천적인 직관”14)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화적인 환경에서 오는 학습에 의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각 사회적 그룹은 맛에 있어 일종의 “규범”을 세운다.15) 음식에 관한 모든 것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문화적인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16) 음식 문화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게는 “문화적인”, 피에르 브르디외나 매리 더글 라스에게는 “사회적인” 현상인 것이다.17)
식문화가 각 국가의 사회상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미국에서 중앙집권적이고 표준화된 음식이 유행하는 것은 미국사회의 힘의 논리에 입각한 배금주의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요리의 전범인 프랑스 요리의 형성을 분석하면서 프랑스가 서양요리의 중심이 된 과정을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