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한국 음식문화 속의 유교사상
수저라는 식기 양식을 그대로 지켜온 것은 한국인뿐이다. 유교사상도 한국에서 일단 뿌리를 내리면 오늘날까지 오래 동안 계속 지켜왔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밥을 먹을 때 지켜야 하는 엄격한 예절이 있다.
비록 그것이 중국의 철학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 더욱더 발전되어 오늘까지 계승되었다. 주자학(朱子學)의 도학(遺學) 실천에 투철 한 사대부들이 믿었던 이와 같은 음식에 대한 규범은 음식을 먹고 마시는 일은 마치 수도승처럼 하도록 강요했다.
어른이 귀한 것을 먼저 잡수시게 배려하는 것이 더욱 강조되었다. 벽초 홍명희가 써서 유명해진 소설『임꺽정』에서 백정 집에 장가를 든 이교리가 연산군이 폐위되어 복권한 후 한양으로 떠나기 전 식사룰 하면서 서로 나누는 대화는 아주 한국적이다.
구미 잃은 봉단이(이교리의 부인)가 험한 밥 먹는 것을 사위 나리(이교리)가 딱하게 여기어서 자기의 입쌀밥을 주고 싶으나 여러 사람 보는 곳에 유난스러워서 주삼(봉단의 아버지)의 아내를 보고 “혼자서 좋온 밥을 먹자니 첫째 염치가 없어.
이 밥을 좀 노놔들 자시지”하고 위만 헐다가 만 밥그릇을 내어 주니 주삼의 아내가 “고만두고 더 잡수시오”하고 권하다가 사위 나리가 정히 그만 먹겠다고 하니까 “네가 먹어라"하고 봉단을 내 주었다.
사위 나리 맘에는 봉단이가 “네”하고 받아 먹었으면 좋겠는데 봉단이는 남의 망도 모르고 “아버지 잡수세요”하고 주삼을 주고 주삼은 “나는 조밥이 좋아. 당신 자시오”하고 아내를 주고 주삼의 아내는 “아재 자시요”하고 주괄을 주고 또 주괄은 “나도 조밥이 좋아. 너 먹어라”하고 돌이를 주었다.
입쌀밥 담은 밥그릇이 한 차례 식구 앞에 조리를 돌아 돌이에게 간 뒤에 돌이가 “다 싫다면 내가 먹지”하고 처치하게 되니 사위 나리의 소료와는 틀리었다.18)
이와 같이 밥을 함께 먹는 행위 속에서 한국 조선시대 사람들이 지녔 던 갖가지 생각돌을 읽을 수 있다. 식사를 통해 가족주의적 집단성을 실현하려는 태도와 좋은 쌀밥을 먹을 때 사회적 지위와 혈연적 순위를 따지는 모습은 오늘날도 한국사회에서 익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2.2 중국 음식문화 속의 종교 • 철학 사상
한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먹고 싶은 중국요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바로 중국의 뱀 요리가 떠올라 솔직히 대답하면 한국인들은 예의 없이 다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징그러워, 그걸 어떻게 먹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의 뱀 요리는 아주 보편적인 것으로 각지에서 맛볼 수 있다.
중국사람은 하늘은 날아다니는 두발 달린 것 중에는 비행기 이의에, 땅 위에 있는 네발 달린 것 중에는 의자 이의에 다 먹는다. 곰, 자라, 고양이, 쥐, 벌레에 이르기까지 득톡한 재료를 사용하는 중국요리는 중국 고대 도교의 불로장생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해왔다.
중국인들의 종교관은 천지 우주간에 있어서 사람의 위치와 밀접한 관계가 었다. 중국인에게 천인합일은 최고의 이상이며 인간이 그것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보았다. 그래서 종교에서도 중심은 사람이다. 즉 중국에서의 종교란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에 불과하다.
사람이 사람을 믿고 섬기는 것이다. 중국인의 귀신 관념은 인본주의(人本主義) 라는 데에 었다. 유가의 성현이든 도교의 신선이든, 아니면 불교의 보살이나 귀신 등은 모두가 인격화되어 있다. 도교의 최종 목표는 “장생불로(長生不老)”다.
중국의 음식이 ‘불로장수(不老長壽)’의 사상과 연결되어 발전해 왔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먹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중국인의 음식섭취 목적은 단순히 맛 있는 음식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장수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렇듯 세상 모든 일을 인간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곰, 자라, 고양이, 쥐, 벌레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재료를 사용하여 불로장생의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해왔다.
음식은 이 세상을 이루는 음양오행으로 해석된다. 음식이라는 말 자체도 음과 양이 함쳐져 만돌어 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사람들은 음식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한다. 육류와 채소를 함께 조리하는 요리가 대부분이다. 음과 양의 화합을 위한 것이다.
3.3 일본 음식문화 속의 신도 • 불교사상
일본의 음식문화가 발전과정에서 여러 가지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 각 단계에서 그 단계 특유의 본토 및 의래종교의 영향을 흔합하면서 받았다. 토착 종교로는 샤머니즘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이는 신도가 있지만 주종교인 불교가 일본의 식문화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서 일본 토착 중교인 신도는 신인공식제례가 끝난 후에 벌이는 “나오라이(直會, 음복잔치)”를 통해 신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실현한다
. 나오라이는 본래 신과의 공식(共食) 의례로서 제신(祭神)에게 바쳤던 제물(신의 영험한 힘이 깃들어 있는)을 제사의 주재자와 참가자가 함께 먹는 데 의의가 었었다. 이것을 특히 “신인공식(神人共食)” 이라고 하며 선물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즉 신에게 바쳤던 제물을 사람돌이 나누어 먹고, 나오라이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준 것이 사람들의 사이의 선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보통의 음식이나 슬이 신에게 바쳐진 후에는 각각 “오고후(護符) 와 "오머키(神酒)”가 되며, 이들에게는 신의 성스러운 힘이 깃들여져 있는 것으로 믿으며, 이것을 먹고 마시면 특별한 “오고리야쿠(利益, 신의 은총이나 가호)” 가 있을 것으로 생각 했다.
나라시대(奈良, 710-784)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살생이 금지되었으며, 소나 말, 닭, 원승이의 식용을 금하고 있었다. 이러한 식생활에 대한 금기는 에도시대(江戶, 1603-1868)까지 이어졌다. 이 때 일본에서는 육식문화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이것이 당시의 일본요리 성격을 규정하는 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가마쿠라시대(鎌倉, 1185-1333)에 들어가면, 중국으로 부터 전래된 불교의 선종(禪宗)이 무가(武家)사회에 수용되어, 수행기간 중에만 먹는 쇼진(精進, 채식)요리가 고안되어 정착하게 된다.
정진(精進)이라는 것은 불교어로 정근(精勤)이라 해석되는데 불도를 닦는 데 있어서 잡념을 버리고 일심(一心) 으로 정신수양을 한다는 뜻이다.
정진 요리는 중국으로 부터 전해진 불교의 사상에 의하여 “동물을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에 따라 육류를 먹지 않기 때문에 수도하는 과정에는 식물성 음식만을 먹도록 하였는데,
야채 이외에 콩으로 가공한 두부, 유부, 낫토(納豆): 폭 삶은 메주콩을 벗짚꾸러미 • 보자기 따위에 싸서 더운 방 에서 띄운 것) 등의 식품이나 해초 등의 재료를 쓰는 일본의 독특한 전통요리의 하나로 발전했다.
가이세키(懷石) 요리도 불교의 선종(禪宗)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발전해 온 일본의 전통음식 중의 하나다. 차석(茶席)에서 먹는 요리로, 당시 차를 마시는 것은 보약 장수한다 하여 아주 귀하게 여겨 약석(藥石)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유혹을 물리치고 정신을 통일하여 진리를 터득할 때, 수행자가 추위와 공복을 참고 견디기 위하여 따뜻하게 한 돌을 품속에 품어 고통을 가볍게 하였는데 이 돌을 가이세꺼(懷石)라고 한다.
선종의 절에서는 야식의 은어로서도 사용되었는데 차도의 식사에도 이용되어 차 그 본래의 맛을 맛보기 위한 가벼운 식사를 하는 데서 생겨난 요리며, 밥, 국, 반찬의 가지 정도를 간단히 쟁반에 차려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