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1592)을 전후해서 고추가 조선에 들어오면서 식문화에 큰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 사람들은 고추를 음식에 넣어 먹지 않았다. 고추는 의료용으로 쓰이던 산초된장과 천초된장 등을 대신할 재료로 여겨져 장을 담갔다.
그런데 약용으로 만든 고추장 맛이 좋아 점점 식용으로 쓰게 되면서 식품으로 발전하게 되 었다.《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1766)》에도 천초를 대신해서 쓸 고추장의 제조법과 고추를 양념으로 사용한 김치 제조법이 소개되어 있다.
처음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는 가난한 하층민들이 굶주림을 면하기 위한 용도로 먹었기 때문에 양반들의 기록에서 고추가 음식의 재료로 사용된 사례는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등장한 것이다.
이미 천초, 산초, 거목, 고수풀 등의 향신초를 김치 양념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에 고추는 처음에 이미 쓰고 있던 향신료를 대신하거나 음식의 멋을 내기 위해 고명으로 사용된 정도로 보인다.
그렇다면 고추가 본격적인 김치의 재료가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고추가 원래 쓰던 향신료보다 김치에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고추를 많이 쓰게 되었다.
*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고추가 조선에 들어오면서 식문화에 큰 변화가 생겼다.
고추로 김치를 담그니 유산균 발효도 더 잘되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소금의 사용량도 자연스럽게 줄게 되었다. 그때부터 김치에 고추를 적극적으로 쓰게 되었다. 지금처럼 빨간 김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한결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았다.
서유구가 쓴《임원십육지(林園十穴志, 1827)》에 보면 “산초와 함께 고추를 넣으니 더 좋고 고추를 넣은 김치를 먹으니 갑자기 살아 있는 봄이 온 듯하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고추가 가져온 김치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고추는 먹는데만 쓰였을까?
조선시대에는 고추를 먹기만 하지 않았다. 추운날 먼 길을 떠날 때 배에 고추를 넣어 만든 복대를 차고, 버선 안에다 고추를 넣어 두면 고추의 매운 기운 때문에 열이 나와 몸의 혈액 순환을 도왔다.
뜨끈뜨끈 열이 나고 몸이 달아올랐다고 하니 고추는 휴대용 손난로 역할을 톡톡히 해냈음을 알수 있다. 또 고추는 무기로도 쓰였다. 조선시대 학자 이수광이 1613년에 지은《지봉유설(芝峰類說)》이라는 책에보면, 다음과 같은말이 나온다.
“남만초(고추)에는 강한 독이 있다. 왜국(일본)에서 처음 들여와서흔히들 ‘왜겨자’라고 부르는데, 최근에는 이것을 재배하는 농가를 자주 보게 되었다. 주막에서는 소주와 함께 이것을 팔았는데, 이것을 먹고 목숨을 잃은자가 적지 않았으니……,”
* 고추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뒤늦게 우리나라에 전해졌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아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이 글로 미루어 짐작컨대, 고추에는 독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이용해 적군을 물리칠 무기를 만들기도 했다. 고추를 태우면 매운 연기가 나기 때문에 적군은 고추연기를 맡고 눈물을 흘려 댔다.
그뿐만 아니라 고춧가루를 적군의 눈에 던지면 적군은 눈이 매워서 서둘러 달아나기 바빴다고 한다. ‘비몽포’라는 독화살 안에는 여러 가지 재료와 함께 고추를 넣어 독을 만들었고, ‘찬열비사신무’라는 무기에는 독이 될 만한 것들은 넣어 뿌렸다고 전해지는데, 고춧가루도 한몫을 했다고 전해진다.
고추의 매운 맛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할 수 있다. 고추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문화적으로도 고추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붉은색이 나쁜 기운을 물리쳐 준다고 믿었다. 고추의 붉은색도 예외는 아니었다.
출산을 한 집에는 숯과 붉은고추를 걸어 아기에게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고추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뒤늦게 우리나라에 전해졌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아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