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미와 남아선호와 출산율을 통하여 자녀 가치의 변화를 파악하고 기혼여성의 취업 양상의 변화와 가정 내 역할분담 양상 및 친족관계의 양계화 현상을 통하여 가족생활의 변화를 살펴본다.
1) 자녀가치의 변화
(1) 자녀의 의미
전통가족을 조선시대 중엽부터 자리 잡힌 부계직계가족의 형태로 볼 때, 전통가족에서는 가족에 대한 가치로 가족주의가치가 강조되었다. 가족주의가치란 가족우선성, 부모공경의식, 부계가문의 영속화, 형제자매 및 친척간 사회경제적 유대의식으로 구성되는 개념으로 가족집단이 개인과 사회에 우선한다(옥선화, 1989).
부계직계가족의 기본 형태는 부계혈연 중심의 확대가족 중에서 직계가족을 이루어 부모와 기혼 장남가족이 동거하는 형태이다. 가족은 보다 넓은 범위의 부계친족집단과 상부상조하면서 부계친족집단의 기능화를 이루었다.
부-장자 중심의 가족구조로 인하여 남아선호사상이 특별히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으며, 세대 간, 세대 내 서열의식도 강조되었다. 이러한 가족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결혼의 의미가 자녀출산에 있다고 할 정도로 가족에게 자녀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이래 최근까지 자녀 중에서도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아들을 선호하는 사상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즉, 우리 사회에서는 자녀의 존재를 가문의 영속과 관련지어서 생각했기 때문에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남아, 아들을 선호하였으며 농경사회시대에 다자녀를 선호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무조건적인 가치부여 의식이 변화하여 자녀를 인생과 결혼생활에 보상을 주는 존재로 생각하는 동시에 실제 생활 면에서는 부담을 주고 생활의 리듬을 깨는 존재로 생각하는 이중적인 의식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물론 연령별, 성별, 거주지역 별로 다소 차이를 보이는 부분도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자녀에 대해서 보상적이면서도 비용적이라는 양가적 가치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옥선화 외, 2000)
최근 들어 자녀가 제공하는 물리적·심리적 혜택에 변화가 있게 되어 과거에 비해 자녀의 경제적 기여도는 낮아진 반면 자녀를 위해 투자해야 하는 비용은 크게 늘어났으며 게다가 유교적 규범마저 변화하고 있어 부모의 노후에 대한 자녀의 의무나 물질적 지원 제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오늘날 자녀의 의미는 가계 생산 활동의 계승이라는 투자재의 개념이 아니라 애정의 대상이라는 소비재의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편, 여성취업률의 상승 등이 부담으로 작용하여 가족은 많은 수의 자녀보다는 적은 수의 자녀를 선택하고 있고 또한 한 자녀에 대한 질을 높이려는 행동을 취하게 되어 이것이 저출산으로 연결되고 있다(신윤정 외, 2008).
(2) 남아선호와 출생성비
현대 사회에서 남아선호사상은 도시와 농촌 모두 지각수준에서는 낮은 지지를 보이고(옥선화 외, 2000) 있다. 그러나 부-장자(父-長子) 관계가 가족의 중심 관계선이었던 조선시대 이래로 부계가문의 대를 이어 가족을 영 속화하려는 관습은 쉽게 없어지지 않아서 남자아이를 낳기를 원하는 경우도 여전히 보인다.
특히, 1990년대에는 그러한 현상이 출생성비의 조절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예를 들어, 1990년에 태어난 아이의 성비는 116.5인데 이는 여자가 100명이 태어나는 동안 남자는 116.5명이 태어난 것을 의미한다(그림 8-1).
* 자료 : 통계청. 2007년 출생통계 결과
상당 기간 지속된 우리나라의 남·녀 출생성비 불균형은 해가 갈수록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여자아이 100명당 남자아이 수는 106.1명으로, 1982년 이후 25년 만에 정상 성비(103~107)를 회복했다. 이 정도면 낙태 등 인위적인 조작 없이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수준이다.
그러나 남아선호사상이 완전히 뿌리 뽑혔다고 보기는 어렵다. 출생순위별로 보면 첫째 아이 104.4, 둘째 아이는 105.9로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의 출생성비는 정상성비 수준임을 알 수 있다(그림 8-2).
* 자료 : 통계청. 2007년 출생통계 결과
그러나 셋째와 넷 째 자녀로 넘어가면 셋째 아이 115.2, 넷째 아이 이상 119.4로 이는 남자아이가 15.2%, 19.4% 많이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지역별 출생성비는 1990년대에는 지역별 격차가 매우 컸으며 2006년까지만 하더라도 지역별 차이가 두드러졌었으나 2007년은 비교적 전국적으로 고른 출생성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적어도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질문에 긍정적인 응답을 보인 사람은 자녀 출산 의향이 있는 사람 중에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선호사상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신윤정 외, 2008).
(3) 출산율
① 가족계획
인구구조의 변화 역시 한 사회의 가족문화의 변화를 반영시킨다고 볼 수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1945년 일제강점기로부터 벗어난 이래 인구과밀이 가져오는 부담을 감소 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산아제한정책을 펴 왔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가족계획운동은 각자 알아서 알맞은 수의 자녀를 낳자는 식이었다. 그런데 1961년 가족계획협회가 창립되면서 가족계획운동은 강화되었으며, 자녀수를 숫자로 제시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구체적인 가족계획 표어를 보면 ‘3·3·35 운동에 참여합시다’라는 것이 있었다.
이 암호 같은 이 숫자는 ‘3년 터울로 3명만 35세 이전에 낳자’는 의미다. 정부가 나서서 적정 자녀 수가 3명이라고 홍보한 것이다. 숫자 ‘3’으로 대표되던 가족계획운동은 1970년대 들어 ‘2’로 바뀐다.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유명한 표어도 이때 나왔다.
1980년대에는 아예 하나만 낳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1981년 발표된 ‘인구증가 억제대책’은 가족계획운동의 결정판이었다. 가족계획에 참여하는 집에는 혜택을 주고, 불임시술을 받은 가정에는 생계비가 지원되고, 자녀 진료비도 경감됐다.
반면 셋째 부터는 육아휴직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이동 시술반을 만들어 ‘찾아가는 불임시술’을 하기도 했다(스포츠한국, 2008). 이와 같은 산아제한정책으로서의 가족계획사업은 1996년까지 지속되었다.
② 출산율
1960년대에 합계출산율 6.0을 기록했던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983년에 대체출산율 2.1을 하회하더니 1998년에는 1.47로 초저출산율을 보이게 되었으며 2005년에는 1.08 이라는 세계 최저수준의 합계출산율을 보였다.
합계출산율은 2005년 1.08명을 최저점으로 2006년 1.13명, 2007년 1.26명으로 약간 증가하였으나 20대 후반 여성인구의 증가(제3차 베이비붐 효과) 등 인구학적 요인과 쌍춘년 결혼, 황금돼지해 출산 등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작용된 결과로 보인다.
* 자료 : 통계청‘. 2007년 출생통계 결과’ 자료에 최근 자료 추가하여 재구성
이는 2008년에 다시 1.19명으로 낮아진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시 주목 받게 된 자녀가치는 가족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하여 자녀가치가 강조되었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대두되었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가 일정시점의 인구구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인구대체수준인 2.1 이하인 상태에 있는 사회를 저출산 사회라고 말한다. 이는 가임여성(15~49세) 한 명이 2명 이상의 자녀를 낳아야 인구가 줄지도, 늘지도 않는 안정된 정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에서는 2002년 출산율이 1.08로 초저출산율을 보이고서야 비로소 저출산 대책을 검토하기 시작하였으며, 2005년 9월 1일 터 시행되고 있는 저출산 고령사회대책 기본법에 의해 저출산 대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기본적으로 자녀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기본적인 환경을 보다 낫게 해주어야 출산율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 모든 국가에서 그 근본적인 문제를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저출산 문제는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날로 치열해지는 입시경쟁으로 인한 고도한 교육비에 의해 유발된 측면이 크다고 항간에서는 보고 있다. 그러나 1983 2006년 시계열 자료를 이용하여 출산율 저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분석한 결과(신윤정 외, 2008)를 보면 이러한 인식이 증명되지는 않는다.
교육비, 경제성장률, 여성 임금상승률 등의 경제적인 변수 의 변화율은 출산율에 유의미하지 않았으며 여성 초혼 연령, 이혼율, 여성취업률과 같은 사회 인구학적 변수들이 유의미하였다. 한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교육비로서의 보충교육비는 중산층 이하의 계층에 대해서 유의한 영향력을 가진다고 한다(신윤정 외, 2008).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계층별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며, 자녀가치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제고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1) 가족 역할의 변화
(1) 기혼여성의 취업양상
여성취업의 특징은 앞에서 본 여성노동환경의 변화에서 본 바와 같이 시기별로 그 특징이 다르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여성취업인구의 대다수는 농민이며, 도시공식노동시장에서의 여성취업인구는 대다수 미혼여성이라는 점이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연보의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여성취업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1963년 36.3%에서 1970년 38.5%로 증가했음에도 불구 하고, 1970년 농·임·수산업 중심의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이 57.2%에 달하고 있다.
이는 1967년에서 1968년 사이 남성의 이농으로 인한 농업노동력의 감소를 여성이 대체하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조선일보, 1969). 한편 1972년 YWCA와 노동청 조사에서 도시지역 여성취업인구의 80%가 미혼이며 평균연령은 23.5세로 나타 났다(조선일보, 1972).
197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짐과 동시에 비농업 분야에서의 여성취업이 급증하고 기혼여성이 공식노동시장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1980년 41.6%에서 1985년 40.6%로 소폭 하락하였지만, 이후 꾸준하게 증가하여 1990년 47.0%, 1995년 48.3%까지 급증하였다.
이농이 거의 완결되고 농업 부문 종사자가 급속하게 감소하면서 비농업 여성종사자가 1980년 22.0%에서 1990년 43.7%로 증가하는 등 제조업 부문 여성취업자가 크게 증가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서비스 부문 노동자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취업여성들의 종사상 지위도 무급가족종사자의 비율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제조업 부문을 중심으로 임금 근로자화하여 여성취업자 중 임금 근로자의 비율이 1980년 39.4%에서 1990년 56.6% 로 크게 증가하였다(강이수, 2007).
그리고 기혼여성의 취업 분야도 다양화하여 기혼 여성의 직종별 분포를 살펴보면, 1980년에는 농림직이 65.2%, 판매직이 14.5%, 생산직이 8.3%, 서비스직이 7.9%였으나, 1990년에는 농림직이 26.0%로 급감하고, 대신 생 산직이 28.3%로 급증하였다.
그리고 서비스직은 17.0%, 판매직은 19.8%로 증가하였다(김혜경, 2007). 이러한 직종별 변화(그림 8-4)는 단지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나 최근 들어 여성의 서비스업 참여비율이 남성의 경우보다 더 높음을 알 수 있다.
* 자료 :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04). ‘도표로 보는 여성통계’ 자료에 최근 자료 추가하여 재구성
1990년대 후반에서 현재까지는 여성취업의 보편화와 일·가족 양립의 확산이 일어난 때라고 말할 수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1997년 여성인구의 거의 절반인 49.8%에 이르렀으나 경제위기로 인해 1998년 47.1%로 하락하였고, 이후 완만하게 증가하면서 2005년에는 50.1%, 2006년에는 50.6%에 도달하게 되었다.
무급가족종사자의 규모도 1990년 24.6%에서 2004년 14.8%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같은 시기 임금 근로자는 56.6%에서 66.6%로 증가하고 있고, 기혼여성의 취업률도 1990년 46.9%에서 2002년 49.4%로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어서 일-가족 양립의 양상이 확산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강이수, 2007).
(2) 가족 내 역할분담
기혼취업여성의 증가로 가족 내 역할분담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하게 되었다. 가사노동의 성별분업을 당연시하던 20세기 중반의 가정 내 성별분업 인식은 기혼취업여성의 역할과중 현상을 초래하였다. 기혼여성의 약 반수가 취업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가사활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림 8-5에서 보는 것과 같이 성별과 혼인여부에 따른 가사활동은 기혼여성이 압도적으로 전담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결혼 후 가사를 전담하는 반면 남성은 결혼 여부에 따른 가사활동 담당 정도의 차이가 미미할 뿐이다. 이러한 양상은 맞벌이부부의 경우에도 큰 차이가 없다.
* 자료 :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04). 도표로 보는 여성통계
(3) 가족유대의 양계화
우리나라 친족관계의 상호관계에서 보이는 양계화에 대한 선행연구 결과를 분석해 보면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성미애, 2006). 첫 번째 입장은 양계화를 한국가족이 보였던 부계일변도의 속성에서 벗어나는 긍정적인 변화로 보는 입장으로 학계보다는 언론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서는 친족 간 상호작용이 부계에 한정되지 않고 모계로까지 확대되면서 사람들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전제 하고 있다.
두 번째 입장은 현 상황에서 보이는 양계화의 허점에 초점을 두는 입장으로 한국가족의 양계화가 비대칭적이며, 혈연 중심의 가족 간 연대를 강조하는 신가족 주의에 다름이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다. 이는 세대 간 미분화 현상을 강화시켜 결국은 세대관계에도 역기능적인 영향을 주는 작용만 하게 된다.
한 일간지 보도에 의하면 ‘아내의 형제·자매들과 모여 살거나 아예 처가살이를 택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광경이 아니다’라고 한다.
‘외가(外家)’와 ‘친가(親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런 현상을 두고 ‘신(新)모계사회’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고 하면서도 이런 모습들을 ‘신모계사회’의 징후라고 보는 건 무리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 ‘신모계사회’ 같은 단어로 마치 여권(女權)이 신장된 듯 표현하지만 결국 친정어머니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라며 “가부장적인 가족문화가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 이지만 여전히 제사, 부모님 모시기 등에서 부계혈통 중심의 가족문화 원칙은 너무나 견고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국민일보, 2007).
또한 가족의 중심이 여성으로 바뀐다는 ‘신모계사회’ 주장에 대해, 여성들은 ‘책임과 부담’의 전가를 미화한 것이라고 반박한다는 보도도 있다(SBS 뉴스, 2007).
한편 1990년대에 들어서 더욱 가시화된 친족관계의 양계화와 관련된 국내 선행 연구들에서는 가족규범은 여전히 부계 중심적 관계를 강조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양계 중심적이거나 모계 중심적으로 변화하고 있어서 서구의 양계적 성격과는 구별되는 양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성미애, 2006).
이는 우리 사회를 더 이상 남성 중심의 친족 관계에 기초한 사회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동시에 아직도 우리 사회가 남성 중심의 친족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가족의 양계화는 실질적 필요에 따른 사회지원망으로서 아내의 친족관계망 활용도가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우리의 양계화는 여성의 필요에 따른 선택적 양계화 모습을 보여 친족과의 상호작용이 부계와 처계를 차별하지 않고 남녀의 원가족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친족관계라는 의미의 진정한 양계화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인다.
이는 친족관계 변화에 대한 초기 연구가 시작된 1970년대부터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비대칭적 친족관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정현숙·옥선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