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음식의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 서양 문명의 중요발원지인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 등 연대별 문화적 관계가 중세부터 르네상스 시기까지 서양의 음식문화를 주도한 이태리요리와 절대 왕정 이후 음식을 비롯한 서양문화의 전반을 이끌었던 프랑스요리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Flandrin․ Montanari, 1997).
1) 이집트 식문화 역사
고대 이집트의 요리법은 문서로서 남아 있지 않으나, 상형문자로 그려진 제빵사들의 작업 모습 등이 피리미드와 무덤 등의 점토 평판이나 벽화에서 발견 되고 있다(Pauli, 1979). 고대 이집트에서 요리법은 높은 문화수준으로 발전되었으며, 그들은 거의 모든 병들의 원인이 어떻게 음식물을 섭취하는가에 있다고 믿었다.
또한 이집트인의 축제의 풍습 및 특징은 여성들이 음식의 조리 및 서비스를 담당하고 주관 하였다. 고대 이집트는 기원전 1050년 왕국이 멸망한 후 그 풍속도 중단 되었지만 그러한 수준 높은 문화는 다음 세대의 이집트 남부 및 서부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Flandrin․Montanari, 1997).
2) 그리스․로마 식문화 역사
그리스인들은 고대 페르시아인 들로 부터 조리기술과 식사법을 계승하였다 (Pauli, 1999). 그리스에서는 정식 요리사가 아닌 밀가루반죽을 담당하는 제빵사를 Mageiros라고 불렀으며2), 이때 처음으로 키친이라는 용어가 음식을 준비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Utalii college 1979).
로마시대는 요리의 황금기였었는데, 요리의 수요자인 귀족, 정치인, 군인 등 상류층이 두터웠고,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요리장들의 급증과 거대한 국력에 의한 광범위한 지역에서의 다양한 재료공급 등 요리에서의 필수 3요소인 미식가와 요리사, 풍부한 재료가 갖추어져 있었으므로 많이 발달하였을 것으로 풀이 된다(Flandrin, Montanari, 1997).
3) 프랑스 식문화 역사
중세에 있어 프랑스요리에는 그렇다할 특징이 없었고 프랑스요리는 대부분의 다른 유럽국가와 거의 같은 형태로 조리하고 취식하였다.
그러나 케서린 메디치 (Catherine de Medici)가 1533년에 1547년에 왕이 된 앙리(Henrry) 2세와 결혼하기 위해 프랑스로 오면서 이탈리아요리가 프랑스에 보급되면서 화려한 프랑스요리 문화사 시작되었다(Pauli, 1999).
케서린은 프랑스요리가 성장 할 수 있는 씨를 뿌렸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백년이 지난 1651년에 Francois Pierre de La Varenne는 프랑스요리의 발전의 기초를 다진 Le Cuisinier Francois라는 책을 발간하였다(Pauli, 1999).
태양왕 루이 14세(1643∼1715)는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좋아했으며, 거의 매일 연회를 즐겼으며 식탐에 가까우리만큼 요리를 사랑했고 또한 중상층도 귀족층의 모방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프랑스인의 삶 속에서 요리는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Flandrin, ontanari, 1997).
1789년 8월 4일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신분적 특권이 폐지되었으나, 프랑스요리는 여전히 섬세하고 우아하였으며 요리는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본 따 만들어졌다.
식사는 오늘날과는 조금 다르게 제공되었으며 많은 양의 음식이 제공되었고 모든 음식은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려 졌으며 주문식사(A La Cartre)는 없었다. 또한 프랑스의 망명귀족들은 망명시에 그들의 요리사를 동반하여 요리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 프랑스요리를 해외에 전파시키는데 이바지했다(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2002).
한편, 귀족들이 파산하여 졸지에 실직 당한 귀족의 수석 요리사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독자적으로 레스토랑을 개업하는 바람에, 19세기 프랑스에는 혁명의 산물이기도 한 고급 외식문화가 정착되고 있었다(강다원, 2003).
18세기 말 프랑스 요리사에서 Marie Antonie Careme은 프랑스 소스를 4개 기초소스로 구성되어있다고 하였으며(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2002), 그의 프랑스요리에 대한 분석은 죠지 오구스트 에스코피에(Georges Auguste Escoffier 1847-1935)에 의해 크게 발전되었으며, 그가 고안한 “브리가드 시스템(Brigade System)” 같은 것을 도입하여 기본적인 음식, 주방, 서비스 및 회계의 기틀이 만들어졌다.
에스코피에 사후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프랑스요리는 1960년대 까지 고급요리인 오뜨 뀌진(Haute Cuisine) 으로써 잘 지켜지고 있다(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2002; Pauli, 1999).
4) Nouvelle Cuisine의 등장
오늘날 많은 재능 있는 프랑스 요리사들은 그 전형적인 요리들의 반복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통적 프랑스요리의 기본을 훼손하지 않고 그들의 요리에 자신의 개성과 창의성을 넣기를 원하였다.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 이라는 용어는 1972년 신문기사에 처음 사용되었다.
즉 자연적이며 가벼운 음식으로 페르낭 뽀웽(Fernand Point : 1897-1955)을 시작으로 1970년대 프랑스의 알렝 샤펠(Alain Chapel) 및 폴 보꾸스(Paul Bocuse) 같은 저명한 주방장에 의해 작은 양을 지양하는 일본음식에 자극을 받아 전통적인 고급요리보다 소량이며 버터와 크림의 양을 절제하고 적은 칼로리의 방식에 단순한 레시피 사용과 자연적인 향과 질감을 강조하고 높은 질의 신선한 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Nouvelle 요리는 젊은 요리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나 이 요리가 진정한 프랑스 요리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미식가들의 입맛을 맞추기에는 역부족인 점도 없지 않았고 현대의 성인병 예방 차원에서 요리의 한 장르로 여기고 있다(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