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의 곡물로는 쌀, 보리, 조를 중심으로 기장, 수수, 콩, 팥, 메밀, 참깨 등이 확인된다. 그러면 조선 시대에는 어떤 종류의 곡물이 재배되었으며, 그 품종은 얼마나 되었을까?
『농사직설』, 『금양잡록』, 『산림경제』, 『임원경제지』 등 조선 시대에 간행된 농서를 토대로 곡물의 종류와 품종의 수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곡물의 종류는 조선 전기의 농서인 『농사직설』부터 19세기의 『임원경제지』까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즉 각 농서에는 벼과 곡물로 벼, 기장, 조, 수수, 피, 보리, 밀이 소개되었고, 『임원경제지』에만 옥수수와 이맥(耳麥 : 귀리)이 덧붙여 있다.
또 콩과 곡물로는 콩, 팥, 녹두가 공통으로 소개되어 있고, 『금양잡록』과 『산림경제』에는 동부, 광장두, 완두가, 『임원 경제지』에는 여기에 잠두(잠도 : 누에콩), 강두(강도 : 동부), 여두, 노두 등이 덧 붙여 있다.
* 괄호 안은 품종의 수
기타 곡물로는 참깨, 들깨, 메밀이 중심인데, 『농사직설』에는 삼이, 『산림경제』에는 삼과 율무가 소개된 반면, 『금양잡록』에는 기타 곡물이 없다. 이런 추세는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 東國輿地勝覽)』 등의 지리지에서도 확인된다.
즉 『세종실록지리지』의 각 도 부세조와 각읍 토의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토산조에서는 앞의 농서에 기록되지 않은 곡물로 황해도 황주목의 호밀(唐麥), 함길도 부령도호부와 삼수군의 귀리(鬼麥)(이상 『세종실록지리지』), 갑산도호부의 구맥(瞿麥)만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분석은 이 땅에서 주로 재배되는 곡물은 조선 시대 이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여 준다.6) 다음으로 곡물의 품종에 대해서는 살펴보자.
『금양잡록』에서 각 곡물마다 다양한 품종을 소개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인데, 이것은 이후 곡물 품종 소개의 기반이 되었다. 특히 200여년 지나서 편찬된 『산림경제』에는 중간벼(중도) 네 품종과 찰기장 한 품종을 덧붙인 것 말고는 『금양잡록』 의 것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반면 『임원경제지』에는 각 곡물마다 상당한 양의 새 품종을 소개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의 주요 품종까지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19세기에 들어서 조선에서 많은 품종이 개발되었을 뿐 아니라 농학 수준도 한층 발전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