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재배하는 곡물 대부분은 고려 시대에도 있었을 것이지만 실상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기록은 많지 않다. 남아 있는 단편적인 기록을 통하여 고려 시대 곡물의 종류에 대해서 더듬어 보자.
우선 『고려사』 「식화지(녹봉 서)」에 의하면 녹봉곡(祿俸穀)으로 좌창(左倉)에 들어오는 곡식이 미(米 : 쌀), 속(粟 : 조), 맥(麥 : 보리)이었다고 한다. 이는 쌀, 조, 보리가 고려 시대 가장 대표적인 곡식이었음을 말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미 곧 쌀이다. 이것은 고려 말 이색(李穡, 1328∼1396)이 「농상집요후서(農 桑輯要後序)」에서 고려 사람들은 갱도(秔稻)는 중요하게 여긴 반면 서직은 소홀히 여긴다고 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고려사』에 벼(稻)의 용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미는 일반적으로 도정한 쌀을 의미한다. 당시 미는 도정 정도에 따라서 조미(糙米)·갱미(粳米)·백미(白米)로 구분하였으며, 도정을 가장 거칠게 한 조미는 고려 말 과전법(科田法)에서는 수전(논)의 전조(田租)로 정해 졌다.
쌀의 종류에 대해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는 멥쌀(秔)은 있지만 찹쌀(稬)은 없다고 하였는데, 지금 연구자들은 대체로 찹쌀도 재배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고려도경』에서는 고려의 쌀은 알이 아주 크고 맛이 달다고 하였으며, 『송사』 「고려전」에는 멥쌀로 술을 담는다고 하였다. 속은 조인데,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은 『고려도경』에 보이는 한속(寒粟)이 유일하다.
그렇지만 고려 시대에 밭이 논보다 넓었고 조가 녹봉곡으로 좌창에 납입된 것으로 보아 조의 재배는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조선 세조 때 나온 『금양잡록』에 조의 품종이 15개나 소개된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맥은 일반적으로 보리, 혹은 보리(大麥)와 밀(小麥)을 통칭하는데, 고려 시대에는 보리와 밀이 모두 재배된 것으로 확인된다. 즉 『고려도 경』에서는 이맥(二麥),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서는 소맥과 대맥의 명칭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쌀의 재배가 확대되면서 보리 등 맥류 재배의 비중은 이전보다 축소되었겠지만 맥류의 수확기가 초여름으로 쌀이나 조와 다르기 때문에 일반 농민들은 보리와 밀을 헌 곡식과 새 곡식을 이어 주는 곡식(接絶續乏之穀)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이에 따라 맥도 좌창에 조세로 납입될 정도로 중요하였다. 미·속·맥 외에 확인되는 곡물은 벼과로 기장(黍黑黍), 수수(黃粱·粱), 피(稗)가 있고, 콩과로는 대두, 흑두, 연두, 비두와 팥(小豆)이 있으며, 그 밖 에 메밀(蕎麥)과 참깨(胡麻)가 있다.
이 중 피는 1160년(의종 13) 전목사(典牧 司)에서 정한 말먹이 규정(馬料式)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 주로 사료로 재배 된 듯하다. 고려 시대에는 여러 종류의 곡물이 재배되면서 곡물을 되는 양기(量器) 를 곡식에 따라 달리 정하였다.
고려 시대에 곡(斛), 말(斗), 되(升), 평목(平木), 장목(長木) 등 도량형을 공평하게 교정하는 일은 개경과 지방의 경, 목, 도호부 등 대읍에서 하였는데, 1053년(문종 7)에 정해진 쌀 종류를 되는 미곡(米斛)의 규격은 길이·너비·높이가 각각 1척 2촌, 피와 조를 되는 패조곡(稗租斛)은 각 1척 4촌 5분, 콩과 팥을 되는 대·소두곡은 각 1척 9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