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요리제법』 1기와 2기의 내용을 다른 요리책과 대조해본 결과 『부인필지』의 내용이 『조선요리제법』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었다.
『부인필지』는 『규합총서』의 저자 빙허각 이씨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우문관 발행 『부인필지』에는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129) 교사 이숙(李淑)이 저자로 명시되어 있다.
기존의 연구와 해제 목록에서 『부인필지』는 필사본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이는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과 개인소장본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다. 그러나『부인필지』지의 원본은 우문관에서 연활자본으로 발행한 출판인쇄물이며, 발견되는 『부인필지』 필사본은 이 출판본을 참조하여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부인필지』의 필사본 중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한 판본에는 음식 부분에서 약주 부분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부인필지』는 “대한요리와 재봉의 필요법”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표지에는 ‘융희 2년(1908년) 5월 우문관 신간’이라고 적혀있어 1908년 초판이 출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판권 서지사항을 참고할 때, 발행소와 인쇄소는 우문관, 분매소는 광학서포, 대동서시, 중앙서관, 고금서해관, 회동서관, 박학서포, 광동서국, 신구서림이며, 가격은 20전(錢)이다. 저자는 명신여학교 교사 이숙(李淑, ?~?)이며, 명신여학교는 현재의 숙명여중·고등학교의 전신이다.
이숙은 1906년 순헌황귀비에 의해 개교한 명신여학교의 최초의 한국인 여교사이자 한문 교사였다. 개교 두 달 후인 1906년 7월부터 학교에서 한문을 담당하여 가르치다가 1908년 남자 교사가 부임하자 그 후에는 재봉을 가르쳤다.
생몰연도는 미상이나, 40이 넘어 부임했다고 전해지며, 전주 이씨 임영군파 후손으로 증조부가 참판을 지냈고, 청빈한 양반의 집안에서 무남독녀로 자란 한학에 능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또한 독실한 불교신자로 학교 근처의 각황사(覺皇寺)에 자주 다녔다.
10년 가까이 봉직하면서 1914년 경 사임하였다.130)『부인필지』를 발행한 우문관(右文館)의 경우 다른 출판사와 달리 정보가 부족한 편이며 누가 경영했고, 언제 세웠는지의 여부가 정확하지 않다. 판본을 참조하면 주소는 ‘교동 이십구통가일호’로, 현재 서울의 교동에 있었던 출판사이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근대사연표에는 우문관이 1906년 중앙서관(中央書館)과 함께 설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은경의 연구에 의하면 우문관은 개화기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설립 된 출판사로 황성신문사, 보성사(普成社), 미문관(微文館) 탑인사(塔印社), 박문사(博文社), 보문사(普門社), 보명사(普明社) 등과 성격을 나란히 한다.
현채, 현공렴의 책이 우문관에서 일부 인쇄되었다.131) 황성신문에 『부인필지』의 광고가 실려 있어132) 황성신문과 연관이 있는 출판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순한글로 서술된 『부인필지』는 1권이며, 필사본처럼 상하권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지만 목차가 음식과 의복으로 구성되었다.
『음식』부분은 약주, 장·초, 반죽, 다품, 침채, 어·육, 상극류, 채소류, 병과류, 과·채수장법, 제유수취법의 순서로 이루어져있다. 『의복』부분은 방적, 장상, 도침, 세의, 좀 못 먹는 법, 수놓는 법, 사물로 되어 있으며, 물류의 상감과 동국소산이 의복 부분에 포함되어 있지만 내용상 별도의 항목에 속한다.
음식 부분의 경우 빙허각 이씨가 저술한 『규합총서』의 『주사의(酒食議)』 편에서 내용을 가져온 것이며, 의복 부분은 『봉임측(縫紝則)』에서 내용을 참조해 작성되었다. 『규합총서』의 이본으로 분류되었던 이유도 필사본이 『규합총서』의 내용을 갈무리하여 편집한 것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133)
『규합총서』는 정양완 소장본 등을 포함하여 필사본과 목판본이 남아있다. 『규합총서』의 원본은 1939년 달성 서씨의 후손이 소장한 『빙허각전서(憑虛閣全書)』로 보이나 행방이 묘연해졌다.134)
『규합총서』의 이본들은 김영혜의 연구에 의하면 항목과 표현이 각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본이라고 할 만한 판본이 없다. 김영혜는 그에 따라 계통을 분류하기 위한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하고 계통을 두 가지로 좁혔으나, 원본이 없으므로 정본을 설정하지는 못하였다.
주사의 항목에 대해서도 완전한 정본이 필요하며, 판본에 따라 포함되는 요리법이 차이가 나므로 판본을 주의하여 인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부인필지』의 경우 『주사의』 항목이 음식이라는 항목으로 바뀌고, 내용이 다수 축약되는 등의 정황으로 볼 때『부인필지』를 저술한 이숙이 『규합총서』를 원본으로 삼았다는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다음의 표를 통해 『조선요리제법』이 어떤 방식으로 『부인필지』의 내용을 참조하였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또한 『부인필지』가 참고했을 『규합총서』의 내용과도 비교한다면『규합총서』→『부인필지』→『조선요리제법』의 같은 요리법에서 문체와 내용이 어떤 방식으로 변했는지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
<표 13> 『조선요리제법』 1기 동치미, 동치미국냉면 내용 비교 (㉠: 동치미 ㉡: 생치김치(꿩김치) ㉢: (동치미국)냉면)
<표 13>은 『조선요리제법』 1기의 동치미와 동치미국냉면 요리법을 『규합총서』의 판본과 『부인필지』와 함께 비교한 것이다. 『규합총서』와 『부인필지』에는 ‘동침이’라는 이름의 요리법으로 동치미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그에 동치미로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요리인 생치침채와 냉면을 소개하고 있다.
이 내용을 ㉠: 동치미, ㉡: 생치침채 ,㉢: 냉면으로 나누어 표시하였다.『조선요리제법』 1기에서는 『부인필지』의 동치미를 참조하여, 침채 요리법 대분류로 동치미를 분류하였고 잡종 대분류에서 동치미국 냉면을 작성했다. 생치김치인 ‘생치채’를 만드는 항목까지는 『조선요리제법』의 동치미 요리법에 해당한다.
내용상 거의 큰 변화 없이 『부인필지』의 전문을 가져왔으나, 『부인필지』가 동치미국 냉면을 ‘명월관 냉면’으로 소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조선요리제법』에서는 발견 되지 않는다(밑줄 친 부분 참조).
이는 안순환이 세운 고급 요정 명월관의 냉면 요리법으로 인식되었으나135), 규합총서 1815년 본에서 ‘명왈 냉면이니라’가 『부인필지』에서 명월관으로 적힌 것으로 보인다. 명월관이 1903년 설립되었고, 조선요리옥으로 이름 높았던 곳이므로,136) 저자인 이숙이 그 당시 전해진 요리법을 기록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규합총서』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므로 명월관의 냉면이라고 추정할 수 없으며 오히려 『부인필지』의 저자가 『규합총서』를 오독하고 잘못 표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장서각에서 소장한 『규합총서』와 고려대학교에서 소장한 『규합총서』의 내용은 유사하게 흘러가지만 ‘침채’를 ‘김치’로 표기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판본 동치미의 내용이 훨씬 간소한 편이다. 이렇듯 『규합총서』 『주사의』 간의 내용도 상이하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필사를 누가 했는지에 따라 서술 방식과 문체가 바뀌고, 내용이 추가 되거나 삭제될 수 있는데, 『조선요리제법』 1기에서는 저자가 임의로 동치미와 동치미국냉면을 분리시켜 설명했다.
또한 『부인필지』에서 냉면 부분을 참고하여 내용을 가져왔으나, ‘명월관’이라는 명칭은 지우고 동치미국에 만 국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동치미국 냉면’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조선요리제법』의 저자가 『부인필지』를 읽고 앞에서 언급한 요리법을 가져왔으나, <표 13>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이 저자가 임의로 요리법을 스스로의 체계에 맞게 재구성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표 14> 『조선요리제법』 1기, 2기, 3기의 내용 비교 : 민어국과 잡채
『조선요리제법』 1기에 포함된 요리법은 『조선요리제법』 2기(1921, 1924년 판본)에서도 중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2기에서는 목차가 바뀌고 문장이나 재료가 추가되는 등 내용상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1기의 몇몇 요리법을 수정하여 집필하고, 요리명 뒤에 음식을 먹기 좋은 달을 적어둔 것과도 연관된다.
<표 14>는 1기와 2기에 포함 된 요리법의 내용 차이가 거의 없으며 3기(1931년 이후 판본) 이후 급격히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나열한 것이다.
1기와 2기에 등장하는 민어국 요리법에서 바뀐 부분은 마지막 문장으로, ‘고기를 만이 너어야 조흐니라(고기를 많이 넣어야 좋으니라)’ 부분이 ‘먹다가 국수나 혹 흰(흰떡)을 너허먹니라(넣어먹느니라)’로 변경되었다.
두 문장 모두 요리법의 주된 과정이 아닌 첨언으로 1기는 기존의 재료인 민어를 더 추가하라고 조언하는 반면, 2기는 국에 면과 떡이라는 탄수화물 재료를 추가하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성격이 다르다.
3기에서는 요리법의 성격이 이야기형에서 재료·순서나열형으로 바뀌어 가는 과도기형과 재료·순서나열형이 모두 나타난다.
민어국은 과도기형에, 잡채는 재료·순서나열형에 해당한다. 1기와 2기에서 중복된 요리법의 내용은 3기의 몇몇 요리법에서 다시 중복되는데, 추포탕이나 숙주나물 등이 그에 해당한다. 이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 저자는 3기에서 요리법을 재편하고 다수의 요리법을 추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