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요리제법』은 저자가 동경영양학교를 유학하고 다녀온 이후 판본의 구성과 내용이 두드러지게 변화했다. 1931년 이후의 판본은 서양에서 비롯된 영양학과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 재료를 계량하기 시작했으며, 구체적인 계량 단위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초판과 재판은 조선시대 후기 요리책에서도 보이는 이야기형 요리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목차에도 영양학적 지식의 영향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조선요리제법』의 1기인 1917년판과 1918년판이 앞선 책의 영향을 받았다는 가정을 내리고 이를 내용 비교 대상으로 삼아 『부인필지(婦人必知)』와 내용이 유사함을 밝혔다. 내용이 유사한 요리법은 많지 않으나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조선요리제법』은 『부인필지』로부터 탕, 나물, 포, 찜, 장, 국수, 병과, 김치, 차, 장, 초 등의 요리법을 원본을 밝히지 않고 인용하였으며, 대부분이 별법의 형태로 전해졌다. 별법(別法)은 예를 들어 편포 다음에 바로 편포 별법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별법이 추가된 원법(原法)은 문헌의 출처를 찾지 못하였다.
이 경우 별법이 추가된 원법은 저자가 직접 서술한 요리법일 가능성이 높다. 별법이 아닌 원법으로 인용된 요리법도 있으나, 원법으로 인용된 요리법과 별법으로 인용된 요리법 사이에 두드러진 차이는 없다.
<표 11> 『부인필지』 와 내용이 유사한 『조선요리제법』 1기의 요리법
방신영은 1931년 이후의 서문에서 어머니가 하나하나 불러주신 요리법을 기록하였다고 밝혔다.122) 또한 방신영의 제자였던 최이순은 『조선요리제법』을 한 가정의 맛이 문헌으로 체계화된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123)
이를 감안하여 1기 『조선요리제법』은 저자가 구술로 들은 요리법을 최초로 문헌화된 기록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방신영은 2기 『조선요리제법』으로 분류되는 1921년판 서문에서 술 만드는 법은 ‘본시 자신이 작성한 것이 아니므로’ 제외했다고 밝혔다.
이는 저자가 다른 요리책이나 혹은 기타 문헌에서 몇몇 대목을 옮겼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1기 『조선요리제법』에서 약주제조법은 부록에 해당하며 이 술 만드는 법은 다른 요리법과 마찬가지로 이야기형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총 13가지의 술로, 도화주, 연엽주, 와송주, 국화주, 포도주, 두견주, 소국주, 과하주, 감향주, 일일주, 삼일주, 송절주, 구기주이며, 조선시대 고문헌에서 빈번하게 언급되는 술들이다.124)
술 만드는 법이 다른 요리책의 요리법이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1기 『조선요리제법』에만 등장하는 『부록-술 만드는 법』을 대상으로 이름이 같은 요리법을 검색하고 내용을 비교했을 때 14종의 술이 『산림경제』 『치선』편, 『임원경제지』 『정조지』, 『규합총서』, 『부인필지』에 등장하는 내용과 거의 대부분 일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표 12> 『조선요리제법』 도화주(桃花酒) 내용 비교
이는 도화주를 대상으로 유사한 내용이 발견되는 문헌을 나열한 것이다. 도화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복숭아꽃을 첨가하여 만든 술이다. 『산림경제』『치선』 편에 수록된 도화주는 1554년 어숙권이 편찬한 『고사촬요(攷事撮要)』을 원전으로 삼고 있다.
한문이나 『조선요리제법』의 도화주 만드는 법과 백미 두말 닷되, 물 두말 닷되 등의 재료가 동일하며, 만드는 법도 일치한다. 『조선요리제법』에 나오는 ‘대저 백미는~물 한 되는 한 사발이라’의 내용은 『산림경제』에서 찾아볼 수 없다.
『임원경제지』 『정조지』 온배지류 편에 실린 도화주는 출처가 문견방(聞見方)인데, 문견방은 책이 아닌 ‘보고 들은 방법’으로 풀이된다. 『산림경제』 「치선」과 마찬가지로 한문이지만 『조선요리제법』의 내용과 상당히 일치한다.
또한 『산림경제』『치선』의 도화주방과도 한자가 대부분 일치한다. 한자가 일부 생략되거나 ‘並’이 ‘并’으로 기록되어 있는 정도의 차이만이 나타난다. 그리고 ‘본방이 이러하나’라는 부분은 『산림경제』는 ‘本方雖如此’으로, 『임원경제지』는 ‘一云’으로 표기하고 있다.
대략적인 의미는 같다.『규합총서』의 도화주방은 ‘본방은 이러하나’ 전까지는 『산림경제』, 『임원경제지』와 유사하지만 결정적으로 그 이후부터 내용이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찬 데 익히는’ 내용은 동일하다.
『부인필지』의 도화주방도 『규합총서』와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대져 백미는~’부터 마지막까지의 내용은 『부인필지』에서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부인필지』는 기존의 연구에 따르면 『규합총서』의 이본으로 분류되므로,125) 『규합총서』에 등장하는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부인필지』의 도화주방은『규합총서』의 도화주방과 거의 일치하나 가독성이 높은 한글 문장으로 수정되어 있다. 또한 『부인필지』의 저자는 『규합총서』의 저자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 1759~1824)가 아닌 다른 필사자라고 기존의 연구가 밝히고 있고126), 제작일시가 1912년과 1915년으로 추정되는 필사본도 존재한다.
『부인필지』의 저자가 『규합총서』를 바탕으로 하여 본인의 서술을 덧붙였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부인필지』의 도화주 만드는 법에서 나타나는 ‘여 야 어름 갓치 게 야 조흔누룩 되 엿 말 되 셕거 항아이에 너어두엇다가’ 부분이 『조선요리제법』 도화주에는 생략되어 있다.
따라서 『조선요리제법』 도화주에는 술의 발효과정에 중요한 누룩이 첨가되지 않았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누룩을 생략한 것일 수도 있으나 누룩을 제외한다면 『조선요리제법』의 도화주가 알코올을 생성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이 외에는 내용이 거의 유사하며 특히 마지막 ‘본 방은 이러하나~’ 부분이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화주의 예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조선요리제법』 1917년판의 도화주 만드는 법은『부인필지』의 내용과 가장 흡사하다.
『규합총서』는 판본에 따라 그 내용과 목차가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부인필지』는 내용이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다. 『조선요리제법』의 도화주 만드는 법이 『부인필지』를 참고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도화주의 예시와 같이 술 만드는 법의 내용을 비교해본 결과, 포도주를 제외한 술은 모두 『부인필지』와 내용이 가장 흡사했다.(부록 참조) 각 요리법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차이가 있고, 제외된 문장은 있지만 기존의 요리법을 수정하거나 요리 과정을 추가하지 않았다.
이로 볼 때 『조선요리제법』 1기의 술 부분은 『부인필지』를 참고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한, 술 부분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구기주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확인할 수 있다.
소쥬를 여름에 조곰타고 어름너어 져어 먹으면 쥬독이 업니라 소쥬 고을 을 소쥬밧 그릇밋헤 발나 밧으면 독이업고 양 쥬독이 니리에 드러가고로 잔먹은후 번식 양치질면 치통이업니라
이는 약주(藥酒)/청주(淸酒)에 속하는 구기주가 아니라 증류주인 소주(燒酒)에 대해 첨언한 것이다. 구기주 항목 하단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구기주에 대한 언급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소주에 대해 언급한 별도의 항목으로 보아야 한다.
이 소주에 대한 언급은 『규합총서』에서 술 요리법 뒤 술에 대한 금기사항과 주의사항에서 등장한다. 이효지와 차경희가 영인한 『부인필지』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127) 여러 주의사항 중에서 저 두 문장만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부인필지』의 내용은 술 부분 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요리제법』 1기의 부록에 속하는 광주백당, 용인외지, 연안식혜 만드는 법은 『부인필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이 거의 일치하며, 『조선요리제법』 1기에서 별도의 항목으로 분리시킨 점은 『부인필지』와 다른 특징이다. 『조선요리제법』 1기에서는 광주, 용인, 연안이라고 하는 지방색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부록의 술, 지방 요리가 원문이 존재한다면, 역시 『조선요리제법』 1기의 부록에 해당하는 일본요리, 서양요리, 지나요리(중국요리)가 저자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것일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외국에서 유입된 요리는 그 당시 외국 요리점에서 팔렸으나, 실제로 음식을 맛보는 것과 요리법을 작성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128) 동시대 일본은 외국요리에 대한 요리책을 다수 발간하였으며, 저자는 일본에서 인쇄 발행물로 수입해왔을 특정 문헌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인쇄 발행물이 요리책 단행본, 가사교과서 혹은 잡지의 형태인지 내용 비교를 통한 추후 연구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부록 부분은 『조선요리제법』 1기가 『부인필지』의 원문을 보았다는 명확한 증거가 된다.
따라서 『부인필지』가 『조선요리제법』의 본문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기 위해 『조선요리제법』 1기 전문을 대상으로 『부인필지』를 주된 대상으로, 다른 요리책으로도 확장하여 내용을 비교했다. 그 결과 『부인필지』와 유사한 요리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각 요리법의 문체, 내용, 그리고 구성이 『부인필지』와 흡사하다. (부록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