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1) 음식문화사 사료로서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2)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서술 3) 저자 이용기에 관한 기초적인 작업으로 나뉜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조선요리제법』과 마찬가지로 한국 요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사료로 빈번히 이용되었으며, 학계에서는 요리법의 변화와 당대 요리법으로써의 가치에 주목했다.39)
이성우는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영인하였으며,40) 상세 해제를 달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임원경제지』『정조지(鼎俎志)』에서 차용한 요리법이 다수라고 서술했다.41)『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대한 문헌적 접근은 앞서 이성우가 발견한 해제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이는 『조선요리제법』이 음식 관련 문헌 사료로 사용되는 맥락과 유사하다. 특히 이 두 권의 책은 식민지시기 이후 출판되었다는 특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당시 식생활이 반영된 문헌으로 여겨졌다.42)
이 중에서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경우, 이성우에 따르면 『임원경제지』『정조지』의 내용 이외에도 이용기 본인의 서술이 덧붙여져 있기 때문에 그 당시 음식과 요리가 잘 묘사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명백히 어떤 부분과 내용이 직접적으로『임원경제지』『정조지』에서 왔는지 혹은 오지 않았는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그 이유에 대해서 다룬 연구도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저자인 이용기(李用基, 1870~1933년)는 출신과 이력이 명확하지 않아 요리책의 저술 목적에 의문을 더한다.
신경숙은 이용기가『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외에도『악부(樂府)』라는 시조와 가사(歌詞)를 모은 필사본을 집필하고, 조선어학회에서도 활동하는 등의 이력을 발견하였다. 또한 이은상 등의 당대 사람들의 기억과 남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이용기의 생애를 추적하였다.
신경숙은 이용기의 저술활동을 조선과 관련된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평가했다.43) 기존의 연구에서는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저자와 저작권자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언급된 적이 거의 없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판권에서 강의영(姜義永, 1894~1945)이라는 저작권자가 명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이용기라는 저자와 강의영이라는 저작자를 분리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실제 저자와 저작권자가 다르며, 강의영은 영창서관을 운영하는 출판자였기 때문에44),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출판문화의 양상과 연관되어 설명될 필요가 있다.